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태인의 우물

태인의 우물

증보 태인지 2018. 4. 24. 11:14

물, 그 생명의 근원

   한국인에 있어 물은 산과 더불어 생활환경의 양대 기반이 된다. 배산임수()란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그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물과 산, 이 양대 기반은 모두 풍요로운 생산성, 또는 영원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들 중 산은 성스러운 종교적 성역으로 추앙받는 대신, 물은 여성과 관련되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모태()로 인식된다.
   물 중에서도 땅에서 솟는 샘물은 생명의 원초적 잉태를 뜻한다. 정천신앙()이 우리의 건국신화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나정()가의 알에서 태어나 샘〔〕에서 몸을 씻었다. 그의 비() 알영도 알영정()에 나타난 계룡()의 왼쪽 갈빗대에서 출생하였다. 이처럼 샘이 시조의 탄생과 연관되는 것은 샘물의 근원적 생명력과 함께 고대사회가 농경시대로 전환되었음을 알려 준다. 이는 단군과 수로왕의 신화가 산이나 봉우리를 무대로 하고 있는 점과 비교된다고 하겠다. 농경사회에서 마르지 않는 샘은 바로 생명과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강의 신 하백()의 딸로 등장한다.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가 그녀를 유혹하여 압록강변에서 관계를 맺어 주몽을 낳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탄생신화는 천신()과 수신()의 결합으로 시조의 권위나 지위를 한껏 높여 준다. 비단 통치자뿐만은 아니다. 대관령의 서낭신으로 추앙받는 범일()국사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강원도 명주 땅 학산리의 한 처녀가 굴산사란 절 앞의 돌샘에 비친 아침 해를 떠먹고 그를 낳았다고 한다.

   샘, 또는 강과 함께 바다 역시 물의 이같은 신화적 속성엔 변함이 없다. 고려의 시조 왕건의 할머니를 용녀()라 하고, 그 출생지를 서해 용궁이라 일컫는 것도 장차 뻗어 나갈 왕조의 번영을 물의 생명력에서 찾은 것이다. 바다는 또한 하늘과 짝을 이루는 또 다른 피안(), 즉 신들의 세계이며 이들의 영토로 인식된다. 신라의 탈해왕과 가야국의 허왕후가 모두 먼 바다 저편에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다. 효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심청전〉에서도 바다는 죽음의 자리이자 아울러 재생의 자리로서 그 상징성은 물 위에 떠오른 연꽃으로 선명하게 묘사된다.
   샘이나 우물 또는 연못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두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연결통로로 작용한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오르는 출입구라고 할까. 그래서 이곳에는 흰 수염을 가진 백발노인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고, 때로 가장 깨끗한 하늘의 여인 곧 선녀들의 출현 장소이기도 하다. 한라산 ‘백록담 전설’이나 ‘금강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못이 선녀의 목욕장소가 된 경우이며, 경주 서출지() 전설이나 ‘은도끼·금도끼 전설’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백발노인이 나타나 인간을 시험하거나 도움을 주는 경우이다. 1)

   샘은 새암, 시암 또는 샵이라고 전라도에서는 방언으로 부르고 있다. 샘이란 원어로 사이에서 끼어 나오는 물을 말한다. 즉 자연발생적으로 땅속에서 용출되는 깨끗한 물을 말한다.

   또한 우물이란 물을 얻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땅을 파고 물이 고이게 만든 시설로서 고대로부터 인간이 정착생활 수단으로 우물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물이란 움푹하다 또는 움집 아래 즉 시설물에서 나오는 물이란 뜻으로 움물이 우물로 변하여 부르는 이름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이러한 우물이 우리 고장에도 있음을 알아보려 한다.

  

   1. 태인면 우물 및 샘

 

  

   고천리 관동 마을 2

   고천리 원고천 마을 2

   고천리 왕리 마을 1

   궁사리 원궁 마을 1

   궁사리 감상 마을 1

   낙양리 원낙양 마을 2(샘1, 우물1)

   낙양리 외이 마을 2

   매계리 상삼 마을 1

   매계리 하산 마을 1

   박산리 박서 마을 1

   박산리 여속 마을 2

   오류리 과학 마을 1

   오봉리 원오봉 마을 3

   오봉리 천오 마을 2

   오봉리 청석 마을 2

   오봉리 청학 마을 5

   증산리 점촌 마을 1

   증산리 하증 마을 1

   태남리 장재 마을 3

   태서리 서재 마을 1

   태성리 칠리 마을 1

   태성리 옥하 마을 3

   태창리 기지내 마을 2

   태창리 육리 마을 1

   태흥리 독양 마을 1

   태흥리 사리 마을 1

   태흥리 오리 마을 1

 

   2. 태인면 태서리 분동 마을 우물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분동 마을 내

      형태 - 사각 콘크리트 구조

      규격 - 너비 150cm, 폭 150m, 깊이 200m, 수심 200m

 

 

   태인 태서리 분동 마을은 호남의 큰 학자 일재 이항이 머물던 곳으로 이곳의 우물은 위쪽과 아래쪽 2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현재는 위쪽 우물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고 아래쪽에 위치해 있던 우물은 메워져 없어진 상태다. 일재 선생은 칠보산(분동 동쪽)의 약 10 리)의 중턱에 자그마한 서재를 세워 강학소로 사용하였는데 현재의 태서리 서재 마을의 지명 또한 그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3. 태인면 태서리 서재(행단) 마을 우물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서재 마을 내

      형태 - 원형 석축 구조

      규격 - 너비 300cm, 폭 600m, 깊이 200m, 수심 200m

 

 

 

   예전 서재 마을과 학동 마을 주민들 100여 가구가 마셨다는 이 우물은 매년 7월 7석이 되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우물 청소를 하고 시암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시암제를 지냈던 이유에 대한 전설도 전해져 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이 마을에서 풍수지리 일을 하던 사림이 "내가 죽거든 빈 상여로 장례를 치르고 자정에 내 시신을 우물에 넣으면 삼 년 후에 내가 검은 암소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안 좋을지언전 우리 가문은 그로인해 번창할 것"이라고 유언하고 사망함으로써 가족들이 풍수쟁이의 시신을 우물에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사실은 후에 자족들 간의 불협화음으로 미망인이 동네 사람들을 향해 "우리 자식들은 지 애비 말만 듣고 아비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우물속에 쳐 넣은 놈들이다."고 말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다음날 새벽부터 우물물을 퍼내려 하자 검은 암소가 우물로부터 떠올라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년 7월 7석이 되면 우물물은 모두 퍼내고 우물을 청소한 다음 새롭게 차오르는 새 물을 정화수로 떠놓고 시암제를 지냈다고 한다.

 

   4. 태인면 태서리 분동 마을 우물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다천사 내

      형태 - 사각 석축 구조

      규격 - 너비 10cm, 폭 10m, 깊이 3m, 수심 20m

 

 

    태인면 태흥1길 59 에 소재한 다천사는 태인 고을의 안산(案山) 항가산(恒迦山) 아래에 위치한 약수(藥水) 영천(靈泉)의 다천(茶泉)에서 이름을 땄을 만킄 유명한 약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래의 샘은 본당 대웅전을 옮기는 과정에서 그 원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모터를 설치하고 상수도 형태로 물을 끌어올려 여전히 그 본래의 약수로 이용하고 있다.

 

   5. 태인면 박산리 유천(乳泉) 샘[]

 

   

    태인면 박산리에 있고 물맛이 맑고 시원하다.(水味淸爽)

    젖이 모자라는 여인이 이 물을 마시면 즉시 효험을 받고 모든 병을 치료하는 신기한 약효가 있는 샘이다.

    (貧乳貧飮此郞效治百病之靈泉)3)

 

   그외 태인 분동마을의 일재 이항 선생이 머물며 마셨다는 '암샘' 과 태인 다천사의 명천 '다천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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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소영, 물의 전설 (도서출판 창해, 2000. 10. 30.)

2) 『전북지방의 우물(샘) 이야기 (전라북도문화원연합회, 2014. 11. 26.), 753~708.

3) 梁昌成...[等編], 泰仁誌(1965),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