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태인의 정려 2

그외의 태인의 열녀(烈女) -

임씨(林氏) 밤중에 그 집에 불이 났는데, 병든 시어머니가 혼자의 힘으로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임씨가 시어머니를 업고 밖으로 나와 화를 면하였다. 이 일이 나라에 알려져 그가 살던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다. ○ 윤회(尹淮)의 서(序)에, “우리나라의 건국은 도당씨(陶唐氏 요(堯) 임금을 말함)와 나란하고, 주(周) 나라에 미쳐서는 기자(箕子)께서 봉강(封疆)을 받았으니, 인현(仁賢)의 덕화는 오래면 오랠수록 더욱 깊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조정에서는 열성(列聖)이 서로 이으시어 교화를 밝히시고 풍속을 후하게 하셨으니, 가정에서는 절개와 의리를 숭상하고, 사람들은 사랑과 공경을 돈독히 하여 아무리 못난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일지라도 향할 곳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구고 임씨(九皐林氏)..

그외 태인의 효자(孝子)

허중민(許仲民) 어머니는 나이가 75세였는데, 밤중에는 중민의 작은 딸을 안고 잤다. 그러다가 집에 불이 나니 중민이 불을 무릅쓰고 들어가서 어머니를 업고 나와 죽음을 가까스로 어머니의 죽음을 면하였는데, 딸은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일이 나라에 알려져 특별히 제용 직장(濟用直長)을 제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 34 「태인현」, ‘인물’ -------------------------------------- 해동잡록 5 본조(本朝) 허중민(許仲民) 태인(泰仁) 사람이며, 어머니가 75세 때 중민이 어린 아이를 안고 자다가 집에 불이 나자 중민이 불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업고 나와 죽음을 면했다.(그러나 어린아이는 죽었다.) 일이 알려져 관직을 주었다. 許仲民 泰仁縣人。其母年七十五。夜抱幼兒而寢。其家失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