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태인의 비지정문화재 8

비지정 교각 - 대각교지(大脚橋址)

대각교지(大脚橋址) 대각교(大脚橋)는 옛날 태인현(泰仁縣)의 남천(현 泰仁川)의 동쪽에 있던 다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태거교(泰居橋), 태인현지(泰仁縣誌)에는 대각교(大角橋)로 쓰여져 있으니 원래의 태거교가 대각교로 개칭된 것이다. 삼남대로(三南大路)는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도 방향으로 가는 길을 말하는데, 전국 각지로 가는 노선이 9개 있었다. 삼남대로(三南大路) 중 제7로(第七路)가 동작진(銅雀津)에서 삼례, 전주(全州) 감영(監營), 금구(金溝) ,태인(泰人), 고부(古阜)를 지나 남도(南道)로 내려가 제주에 이르는 970리 길이었다. 이 노선으로 인해 태인은 교통(交通) 요충지(要衝地)가 되었다. 그래서 이 대각교 앞에는 여행객에게 말이나 숙식을 제공하는 거산역(居山驛),..

비지정 누정 문화재 - 읍원정(挹遠亭)

읍원정(挹遠亭) 항가산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조선 시대에 사림(士林)의 소유지였으며 풍치가 뛰어났다고 전해지는 항가산(恒伽山) 오르막에는 원두막 같은 대원정(大願亭) 정자가 물길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자식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한다 또 그 길로 조금만 가면 중턱에 1855년(철종 6, 丙辰) 태인(泰仁) 현감(縣監) 이승경(李承敬)이 시주(詩酒)로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선비들에게 문학(文學)을 권장하기 위해 유림 49인과 함께 시사(詩社, 詩稧;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하여 만든 모임)를 만들며 태인면 태성리 152번지-2에 세운 건물이다. 이 정자를 읍원정(揖遠亭)이라 부르고, 이는 「遠呑山光(원탄산광) 平挹江瀨(평읍강뢰)」라는 의미이다.(멀리는 산..

비지정 입석 문화재 - 태서리 입석

태서리 입석 소재지: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분동마을 태서리 분동(紛洞)마을 앞에 있으니 원래는 동쪽으로 1km쯤 떨어진 냇가에 있었는데 1960년경 옮겨온 것이다. 분동은 일재 이항(1499~1576)이 살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일재(李一齋)가 보림산(寶林山) 서당(서당)에 있을 때 저녁 늦게 귀가하는 자신을 마중 나오는 김씨부인(金氏夫人)이 매일 같이 내를 건너느라(越川) 신발이 젖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돌다리를 놓았다는 고노(古老)들의 이야기다. 근래에 마을 모정 옆의 유허비가 있는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입석의 크기는 높이 1.60m, 너비 60cm, 두께 28~38cm이다.

비지정 장승 - 태인 청석마을 돌장승

태인 청석(靑石)마을 돌장승 소재지: 정읍시 태인면 오봉리 청석마을 857 청석마을 입구에 남향을 바라보고 서 있는 돌장승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와 입은 뭉툭하면서도 투박하게 표현하였는데, 정감이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친근감이 넘친다. 동네 사람을은 '하나씨'라 부르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 할머니 당산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돌장승의 높이는 122cm, 몸체는 앞면 너비가 45cm, 측면이 36cm이며,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좌측 머리가 상투처럼 돌출되어 있는 얼굴의 모습은 빈대 코에 입을 다물고 있으며 귀는 없고 수염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생겨져 있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입구에 위치한 돌장승은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하며, 동시에 마을의 서쪽 산자락의 기운을 보강하는 이른바 ..

비지정 누정 문화재 - 함벽루

함벽루(涵碧樓) 태인면 태성리 일등(一等) 도로변(1等道路邊) 연방죽 가운데(蓮池中)에 있으니 1918년에 김우섭씨(金禹燮氏)의 발기(發起)로 지역유지(當地有志)들이 협력하여 건축한 것인데 목조2층으로 구조가 정교할 뿐 아니라 주위의 풍경(風景)이 뛰어나게 아름다워(絶佳) 봄의 앵화(櫻花, 앵두나무 꽃)와 여름의 녹음(綠陰)과 가을의 연꽃(蓮花)은 시인묵사(詩人墨士)의 산책에 적당하며 행인과객(行人過客)의 장루(杖屢)를 끄을게 된다 이러므로 음풍명월(吟風明月)의 성(聲)이 항시부절(恒時不絶)하며 현재는 당지인사(當地人士)들의 구락부(俱樂部) 또는 사정(射亭)으로 사용되고 있다.1) 춘추 시대 초 공왕(楚共王)의 장군인 양유기(養由基)가 100보 떨어진 거리에서 버들잎을 활로 쏘아 백발백중시켰다는 고사가 ..

비지정 누정 - 태인 노휴재

태인 노휴재(泰仁 老休齋) 소재지: 태인면 태인로 83 노휴재는 군내(郡內)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유일(唯一)한 전통 노휴재이다. 1857년(철종 8, 丁巳) 1월 창건할 때 최정한(崔正漢)·송기천(宋基天)·김치희(金致熙) 등이 주도하였다. 그 후 1905년 2월 송영진(宋瀅鎭) 외 5인에 의해 중건(重建)되었으며, 1933년 2월 중건할 때는 김재일(金在一)이 이끌었다. 노휴재의 중앙 정면에는 '노휴재(老休齋)'라는 현판(懸板)이 걸려있는데 창건 당시의 쇄예(碎藝)의 글씨로 141년 전의 명필(名筆)이다. 1978년 8월 사업을 개시하면서 회원 일동의 출연금(出捐金)으로 효행자(孝行者) 표창 및 장학금(奬學金) 수여 등을 연례행사로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태인 인근의 유림(儒林) 가운데 교양과 덕망이 ..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一齋 二恒 先生 遺墟碑) 호남지방(湖南地方) 대성리학자(大性理學者)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燕山君 5)~1576년(선조 9)1) 선생은 성주이씨(聖州李氏)로 자(字)는 항지(恒之), 호(號)는 일재(一齋) 또는 수일재(守一齋), 시호(詩號)는 문경(文敬)이다. 성주이씨는 고려 말 백년, 천년, 만년, 억년, 조년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한 명문거족으로 이항은 이조년의 7대손이다. 1499년(燕山君 5)에 서울 신혼동(晨昏洞)에서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인 아버지 이자영(李自英)과 소경전참봉(昭敬殿參奉 최인우(崔仁遇)의 딸로 어머니 전주최씨(全州崔氏)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했다. 영월 신씨(辛氏: 辛伯粹의 女)와 혼인하였다.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를 즐..

전통사찰 - 다천사

다천사( 茶泉寺) 지정종별: 전통사찰 제98호 등록일: 1992년 8월 20일 소재지:정읍시 태인면 태흥1길 59 정읍시 태인면 소재지(井邑郡 泰仁面 所在地) 마을 도로에서 우측 농로(農路)로 약 300m 올라가면 항가산(恒迦山, 한가산(閑伽山) 중턱 노고수림(老古樹林)에 둘러싸인 다천사가 있다. 이 절은 이름 그대로 약수(藥水)가 유명한 사찰이다.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는 다천사는 옛날 절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벽산(碧山)스님이 1930년경 이 절을 창건(創建)했다. 그동안 15평의 대웅전과 요사(寮舍) 종각(鐘閣)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었는데 1990년에 양옥 42평의 요사채를 건립한데 이어 1991년에 대웅전을 목조기와집으로 24평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사천왕문을 다시 세웠다.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