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 63

태흥리 느티나무

태흥리 느티나무 지 정 번 호: 9-4-23 지 정 일: 2006년 12월 보호수종명: 느티나무 수 령: 500년 위 치: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163 수 고: 15m 나 무 둘 레: 2.1m 나무의 특징: 태인 태흥리에 소재한 태고종 사찰 다천사 내에 위치해 있는 500년 수령의 고목이다. 나무의 연혁 및 전설 본래 다천사는 백제시대 폐사지에 창건된 사찰로 역시 사찰 내부에 위치해 있는 약수터 이름 다천(茶泉)을 따라 다천사로 지어진 태고종 사찰이다. 오랫동안 고시 공부의 요람이 되어 왔다. 최근까지 다천사에서 고시 공부를 한 후 고시에 합격한 고시 합격자는 모두 50여 명에 이른다. .

태서리 배롱나무

태서리 배롱나무 지 정 번 호: 9-4-24 지 정 일: 2008년 4월 10일 보호수종명: 배롱나무 수 령: 190년 위 치: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909 수 고: 7m 나 무 둘 레: 0.4m 나무의 특징: 태인 태서리에 위치해 있는 배롱나무는 태서리 서현사(西峴祠)를 중심으로 사방에 조성된 보호수다. 나무의 연혁 및 전설 서현사(西峴祠)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박문효(1568~1593)와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뒤따라 끊었던 그의 부인 송 씨를 위해 1819년(純祖 19)에 세운 사당이다. 사당을 세울 당시 식수된 백일홍(배롱나무)가 사방에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태서리 하동구 팽나무

태서리 하동구 팽나무 지 정 번 호: 9-4-26 지 정 일: 2009년 6월 4일 보호수종명: 팽나무 수 령: 400년 위 치: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146-21 수 고: 20m 나 무 둘 레: 1.2m 나무의 특징: 태인 태서리 하동구 마을에 위치해 있는 이 팽나무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나무의 연혁 및 전설 하동구 마을의 이 팽나무 수령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500여 년의 수령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구심점이자 신격화된 당산나무(팽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런 연유인지 예전에는 해마다 명절과 백중날에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들이 앞장서서 재를 지냈고, 현재는 매년 백중날에만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당산나무로서 마을 주민의 정..

낙양리 느티나무

낙양리 느티나무 지 정 번 호: 9-4-29 지 정 일: 2010년 11월 22일 보호수종명: 느티나무 수 령: 500년 위 치: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 651 수 고: 20m 나 무 둘 레: 2m 나무의 특징: 동진강 주변의 낙양리 외이 마을에 위치해 있는 이 느티나무는 두 그루로 하나는 한줄기로 우람하게 서 있고 다른 하나는 밑에서부터 두 줄기로 갈라져 있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나무의 연혁 및 전설 낙양마을 주민들은 이 나무를 부부 느티나무로 부르고 있으며 마을의 수호수로서 신성시 해 왔다. 근래 30년 전까지도 2월 초하루에는 당산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주민들이 종교적 이유로 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1. 가산거사 사리탑명(迦山居士 舍利塔銘)

가산거사 사리탑명(迦山居士 舍利塔銘) 가산거사(迦山居士)는 김수곤(金水坤, 1873~1950)의 호이다. 본관 김해(金海), 자는 공욱(共彧), 호는 죽헌(竹軒), 가산(迦山)으로 주로 가산거사로 불린다. 근대의 자선가. 1873년(高宗 10)에 가산(迦山) 인주(麟柱)의 아들로 정읍군 태인면(井邑部 泰仁面)에서 태어났다. 몽연(夢蓮) 김진민(金瑱珉 ) 선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유생(儒生)으로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일찍이 백양사(白羊寺) 청류암(淸流庵)에서 좌선(坐禪)을 하다가 1937년 2월 28일 문득 입속에서 옥치(玉齒)와 같은 이사리(齒舍利)를 얻었음으로 1939년 10월 내장사에 사리탑(舍利塔)을 안치하고 영호선사(映湖禪師)의 기문(記文)과 손재형(孫在馨)의 오체혼합필체(五體混合筆體)의 탑비..

2. 고운 최선생 유상대 유적지비(崔先生 流觴台 遺蹟之碑)

고운 최선생 유상대 유적지비(崔先生 流觴台 遺蹟之碑) 泰仁流觴臺碑記 【趙持謙】 泰仁郡,卽新羅之泰山郡,文昌侯崔公舊所莅也。郡南七里許,巖石盤陀,巖下流水環廻。文昌每觴詠於斯,倣逸少故事,至今父老相傳焉。臺歲久荒廢,余友趙使君子直,視篆之暇,逍遙乎臺上,悠然有曠世之感。累石增築,立小碑以識之,屬余爲記。 頃年余爲吏楓岳下,地稱神仙窟宅,思一修飾,而未暇及。子直其多乎哉!余惟先生生星一周,涉海萬里。未弱冠,擢大唐巍科,踐霜臺,入金門,天下已爭知之。及其從事轅門,磨墨楯頭,使販鹽老賊魄褫膽落,眞所謂賢於百萬師矣。以其高才盛名,捲而東還,推出緖餘,亦足以維持一邦。顧乃沈淪銅墨若梅子眞,終焉浮遊方外,自託於羨門之屬,何也? 噫!公之生世不辰,入中華則亂離瘼矣,歸故國則危亡兆矣,道不可行,身且難容。以此飄然遐擧,蟬蛻棼濁,誦紅流一絶,未嘗不三復歎憐其志焉。想其婆娑徜徉於是地也,感慨繼之者..

3. 김공재일기적비(金公在一紀蹟碑)

김공재일기적비(金公在一紀蹟碑) 김공재일 기적비(金公在一 紀蹟碑, 140cm×70cm) 김재일은 태인 사람으로 부유한 사람이었다. 김재일이 태인 객사 건물을 매입하여 읍원정을 중수한 것을 기리기 위해 기적비를 세웠다. 이 기적비의 글씨는 김진민(金瑱珉)이 10대 때 쓴 것이라고 한다. 1865(고종 2)~1950, 본관은 광산(光山), 자(字)는 상숙(相淑), 호(號)는 양재(陽齋), 한식(漢植)의 아들로 태인면 태흥리에서 출생하였다. 1912년과 1913년 두 해에 걸쳐 흉년이 들자 빈민들에게 돈과 곡식(錢穀)을 제공하고, 호세(戶稅)를 3년간 대납하였다.1) 거금(距今) 24년(1936년 기준) 전(前) 임자(壬子) 겸년(歉年, 흉년)에 정조(正租, 벼) 300여석(餘石)을 희사(喜捨)하여 군내(郡內)..

5.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동초(東樵) 김석곤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1874년 ∼ 1948년)은 1874년(高宗 11) 12월 13일에 태인면(泰仁面) 태흥리(泰興里) 444번지에서 김해 김씨 진사(進士) 연추(演秋)와 여산 송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처안(處按)이고, 말이 어눌하다 하여 눌오(訥吾, 訥語)라 자호(自號)하였고 중년에는 산외 동곡의 초부라는 의미에서 동초(東樵) 또는 표암(瓢庵)을 주로 많이 사용했고 또 말년에는 팔조거사(八糟居士), 소요처사(逍謠處士)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읽고 쓰기를 즐겼으며 본성이 순수하고 검소하여 신분이 다르더라도 남을 하시(下視)하지 않았다 한다. 어려서는 여러 스승을 모셔 학문을 익혔고 성장하면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면..

6. 태인 현감 신잠 선정비(泰仁 縣監 申潛 善政碑)

태인 현감 신잠 선정비(泰仁 縣監 申潛 善政碑)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05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92번지 1549년(명종 4)에 건립된 신잠의 비석이다. 비는 높은 자연석 받침돌 위에 비몸돌을 세웠는데, 비몸돌의 윗변 양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처리하였다. 크기는 가로 81㎝, 세로 189㎝, 두께 19㎝이며, 비의 좌대(座臺)는 가로 150㎝, 세로 92㎝, 높이 90㎝로 되어 있다. 영천심잠이 1543년(중종 38)에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여 동, 서, 남, 북의 사학당을 세우는 등 선정을 베풀고 1549년(명종 4) 간성군수로 이임하자 그 유덕을 추모하여 진사 김완(관 도강), 백삼귀(관 수원) 등 유림들의 발의로, 비문(碑文)은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5)이 해서로 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