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풍속은 1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되풀이되는 생활행위로서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농경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 더욱 발달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세시풍속이 농경생할 위주로 되어 있는 만큼 전승놀이도 농경생활과 관련되어 왔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여기는 농경생활은 24절기(節氣: 節候)마다 행사가 따르고 명절도 농절(農節)과 관련이 있다. 고대에 제천의식을 5월과 10월에 거행한 것은 농경시기와 관계가 있으며, 정월에는 안택(安宅)을 해서 1년 동안 가내태평(家內太平)을 빌었고, 가을에는 새로운 곡식으로 천신(薦新)하여 고사를 지내 감사의 뜻을 밝혔다.
우리의 세시풍속이나 놀이는 거의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정월에 있으므로 행사가 다양하며 또한 한가해서 쉬고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동제(洞祭)가 대개 정초에 있는 것도 신에게 청하는 계절제이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기쁨이 있고, 이러한 것을 소화하고 행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농촌이 바쁜 여름에는 별로 관습적 행사가 적은 것은 농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에는 점복(占卜)하고 기복(祈福)하고 기풍(祈豐)하는 관습이 많았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태양력(太陽曆)을 채택하고 있다. 태양력이 장점이 있다 해서 세계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태음력은 달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농업과 어업이 있어서 기준이 되었다. 취미나 놀이에 있어서도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보름날에는 남녀노소가 함께 즐겨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므로 음력으로 계절을 산출하였다.
의례력(儀禮曆)
1. 정월 풍속(正月 風俗)
가.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세수를 하고 설날을 위해서 각 가정에서 여러 가지 고운 색깔의 옷감으로 아이들에게 까치옷(때때옷)이란 것을 정성껏 만들어 두었다가 입혔는데 이를 설빔이라고 한다. 요즘에 와서는 그런 일이 드물고 그 전과는 달리 전에 입던 헌옷이라고 깨끗이 하여 입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새 옷을 입게 되면 기분이 좋은 법이지만 이 설빔은 보다 큰 기대감을 우리에게 준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들이 갖는 즐거움은 더욱 크기 때문에 서로 자랑을 하게 된다. 빈부귀천의 집안 형편에 따라서 마련하기 때문에 설빔이 갖는 의미는 같은 것이다.
나이 많은 부인들은 대체로 한복을 입고 있으나 설빔이라고 할 정도는 안 되고 남자들고 한복에 조끼를 입은 경우나 간간히 보일 정도이며, 어린아이들의 경우도 옛날처럼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이 양복식으로 입고 있다.
옛날엔 12월 마지막 장날인 ‘대목장’에 설빔을 장만했다. 명절을 앞둔 대목장에는 ‘눈까진 새도 장보러 간다.’라는 말이 전하여 올 정도로 대목장은 만원을 이루었었다.
또한 아이들은 대목장날 어른들의 장거리에 기대를 걸었다. 남자들은 바지저고리, 두루마기, 버선, 대님 등을 만들되 설빔은 동복이기 때문에 솜을 두둑이 넣고, 여자는 치마, 저고리를 만들되 저고리에만 솜을 넣었다.
아이들은 색동옷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채색이 있는 천으로 무색옷을 만들었는데 저고리는 나이 어린 아리들은 ‘도리띠’라고 하여 고름 한 쪽을 길게 하여 그것으로 가슴을 한 바퀴 돌려서 매게 하고, 나이 좀 든 아이는 도리 띠가 아닌 그냥 고름으로 한다.
아이들 설빔도 어른 것과 같이 버선, 대님도 만들고 채색 천으로 주머니도 만들어 허리띠에 찼다. 이 주머니는 고운 채색 천으로 하되 정성들이는 집에서는 수(繡)까지 놓으며 아이들은 이 주머니에 세뱃돈을 받아 넣는다.
차례나 세배는 다 이 설빔을 입고한다.
나. 원단(元旦)
한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말한다. 이 날은 원일(元日), 원조(元朝)라고도 하고 한 해의 머릿날이라 하여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설’ 또는 ‘설날’이라고도 하는데 설이란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므로 경거망동 하지말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라는 뜻이 있다.
1년의 운수가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은 이날 하루 동안 경건한 정신과 단정한 몸가짐을 흩트리지 말아야 한해가 무사할 것으로 믿었다.
다. 차례(茶禮)
설날 아침은 다른 날과 달리 일찍 일어나 전날에 장만한 음식(歲饌)과 술(歲酒)를 마련하여 사당에다 진설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정조다례(正朝茶禮)라고 한다.
사당은 지손(支孫)은 모시지 않고 모시는 사람은 장손(長孫)인데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의 4대조 신주(神主)를 모셔 두며, 정초차례 때에는 차례대로 제사를 지낸다. 5대 이상의 선조는 집에서 지내지 않고 10월에 있는 시제 때에 함께 제사를 지낸다.
정조차례 때에는 그동안 밖에 나가 살고 있던 친척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며 이때 집안내의 크고 작은 일[大小事]을 의논하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게 된다.
옛날부터의 오랜 관습에 의하여 전해 내려 온 풍습이라서 지금도 역시 계속되고 있는 정조차례는 우리 고유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 세배(歲拜)
차례가 끝나면 다 같이 자리를 정해서 앉아 집안 어른들에게 새해의 첫인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를 세배라고 한다.
어른의 장수와 행복을 바라는 덕담을 올리면 어른 역시 세배 자에게 그 해 소원이 이루어지길 비는 내용을 얘기함으로써 서로의 소원과 복을 이루도록 축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음식(세찬(歲饌)과 떡국)들을 아침으로 먹고는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기 위해 간다.
집에 찾아가서는 사당(祠堂)을 모신 집이 있으면 우선 사당에 절을 하고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게 되는데,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인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세배를 받는 쪽에서는 어른인 경우에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아이들인 경우에는 돈과 과일을 준비하였다가 주고 서로간의 근자(近者)의 소식을 묻고 한 해의 건강과 소원 성취를 비는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
일가친척이 멀리 사는 경우라 할지라도 반드시 찾아가 세배를 드리는 것이 예의이며, 세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배움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마. 입춘일(立春日)
천세력(千歲歷)에 정해져 있는 입춘일은 대개 연초인 경우가 많다. 이때는 시골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가정에서는 대문, 기둥, 천정, 대들보 등에 좋은 뜻이 담긴 글귀를 써서 붙인다.
이를 춘축(春祝)이라고 한다.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인 경우엔 손수 입춘축(立春祝)을 쓰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면 남에게 부탁해서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중(喪中)에 있는 집은 하지 않는다.
가장 널리 쓰이는 입춘축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등이다.
이와 같이 입춘일에 입춘축을 써 붙이는 것은 새 봄을 맞이하여 1년 열두 달 집안이 화평하고 식구들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봄과 함께 복이 들도록 비는 뜻이나 또는 수(水)자 네 개를 써서 방 네 구석에 거꾸로 붙였는데 이는 화재를 예방하자는 뜻이었다.
바. 복(福)조리
섣달 그믐날 자정(子正)이 지나면 어둠속에서 복조리 사라는 소리가 들여온다. 자정이 지나면 벌써 다음 날이다.
조리장수들은 조리를 한 짐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복조리 사라고 외친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소용되는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미처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산다.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고 있어서 서로 남보다 먼저 사려고 한다. 설날 이른 새벽에 조리를 사두면 1년 동안 복을 많이 받는다는 데서 설날에 사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부른다.
사들인 조리가 둘이면 둘, 셋이면 셋을 한데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달아 두었다가 쓰며 조리 속에 성냥, 돈과 엿을 넣어 두어 한해의 복을 기원하기도 하고 삼재(三災)를 쫓기 위해서 세 마리의 매를 그려서 붙이기도 한다.
사. 정월 대보름(上元日)
설날이 해와 관계되는 날이면 보름날은 달과 관계되는 날이다. 이 날의 행사는 근본적으로 설날의 연장이며 설날에 관한 여러 가지 행사가 매듭지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보름행사는 대보름 전날인 14일에 시작된다. 보름날은 새해 농사의 시점이라 하여 농사일과 관계되는 일을 하지만 15일은 보름 명절이고 16일은 귀신날로 일손을 놓게 되어 있으므로 농사의 시벌행사는 14일에 한다. 보름날은 새해가 시작된 다음 처음으로 달이 둥글게 차는 날이니 만큼 달맞이가 가장 주된 행사이다.
달은 해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신(神)으로 추앙되어 왔으며 인간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어졌다. 보름달이 떠오를 때 사람들은 서로 먼저 달을 보려고 산으로 올라간다.
동쪽에서 달이 떠오르면 땅에다 돗자리를 깔고 달을 향해 절을 하며 자기의 소원을 빈다. 농사를 풍년들게 해 달라든지, 시집․장가를 가게 해 달라든지, 아들을 낳게 해 달라든지, 각자 자기가 안고 있는 고민을 말한다. 이날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부락끼리 편을 짜 횃불 싸움을 한다.
보름달이 떠오른 모습을 보고 일 년 농사를 점치기를 하는데 달빛이 희면 비가 많이 오고, 달빛이 붉으면 가뭄이 들겠다고 하고,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연하면 흉년이 들겠다고 한다.
아침에는 부럼이라 해서 단단한 과실을 깨물어 마당에 버린다. 이명주(耳明酒)를 마시고 약식을 먹었다. 또한 구회식(九回食)이라 하여 쌀, 보리, 콩, 조, 팥 등을 섞은 오곡밥을 지어 여름철에 장만해 둔 나물과 함께 아홉 번을 먹어야 좋다고 하였고 각성바지 찰밥을 먹으면 좋다하여 찰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또 오곡밥을 김[海苔]에 싸서 먹기도 하는데 이를 복쌈이라고 했다.
아. 덕담(德談)
정초(正初)에 어른이나 친구들을 만났을 때와 세배할 때에 말로써 새해 인사를 교환하는데 이를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이때에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며 연하의 사람들에게는 ‘새해에는 복 많이 받게.’ 또는 ‘새해에는 소원성취하게.’하는 등으로 처지와 환경에 알맞은 말을 한다.
덕담은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 복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축의(祝意)를 표시하는 것이다.
자. 부럼[腫果]
보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밤, 호도, 잣, 은행 등을 깨무는데 1년 열두 달에 종기나 부스럼을 앓지 말게 하여 달라는 뜻이며 이를 부스럼 먹는다고 한다.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나 노인들은 이가 단단치 못하니 몇 개만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여 일단 깨문 것은 껍질을 볏겨 먹거나 첫 번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
깨물 때에 ‘1년 동안 무사태평(無事泰平)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하기도 한다.
차. 귀밝이술(耳明酒)
정월 보름날 아침에 청주(淸酒)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질 뿐 아니라 1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전하여 부녀자도 마셨다.
타. 더위팔기
정월 보름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더위를 파는데 될 수 있으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아이들은 이웃집 친구네 집을 찾아다니며 더위를 판다.
문 앞에 가서 큰 소리로 친구 이름을 부른다. 부름을 받은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대답하면, 이 때 ‘내 더위 사가세.’, ‘내 더위 니 더위.’, ‘네 더위 내더위 먼디 더위.’라고 말하면 더위를 판 것이 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더위 판 사람은 일 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으나, 멋모르고 대답을 했다가 더위를 산 사람은 그 사람의 더위까지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보름날 아침에는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냉큼 대답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미리 알아차리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세.’, ‘내 더위 니 더위.’라고 응수한다.
이렇게 되면 더위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먹게 된다.
파. 쥐불놀이(上子日)
정월에 들어 첫 번째 자일(子日)을 상자일이라 하여 이날 농부들은 쥐를 없애기 위해 들에 나가 논과 밭에 불을 놓아 태운다. 이렇게 하면 쥐가 없어지고 피해를 막는다고 믿었다. 또한 이날 밤 자시(子時)에 방아를 찧으면 쥐가 없어진다 하여 부녀자들은 밤중에 방아를 찧었으며 곡식이 없으면 빈 방아라도 찧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 놀이
정월달에 민가에서 널리 성해하는 놀이에는 널뛰기, 윳놀이, 연날리기, 줄다리기, 횃불쌈, 지신(地神)밟기, 기세배(旗歲拜) 등이 있다.
2. 이월 풍속(二月 風俗)
가. 콩볶기
2월 1일에는 콩을 볶아 먹는 풍습이 있는데 큰 가마솥에다 콩을 넣고 주걱으로 콩을 저어가면서 콩을 볶는다. 볶은 콩은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데 아이들은 콩을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고 다니면서 먹는다.
콩을 볶을 때 주걱을 저으며 ‘새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 콩 볶아라.’라는 주언(呪言)을 하기도 하는데 콩을 볶으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콩을 볶을 때 콩과 보리를 약간 섞어서 한 되를 볶아서 다시 되었을 때 한 되가 되면 그 해에 풍년이 들어 가을 수확이 많다고 하며 한 되가 되지 못하면 흉년이 들어 수확이 적어진다고 한다.
나. 머슴날[奴婢日]
2월 초하룻날은 머슴날[奴婢日]이라고도 하였다.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오랫동안 쉬던 머슴들이 이제 2월이 되면 농사일을 준비해야 하므로 머슴들에게 한턱내는 풍습이다. 이 날은 송편을 만들어 머슴들에게 나이대로 먹였다. 이는 농사철이 다가오는 2월에 송편은 대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 위에 달아매어 둔 곡식을 내려 만들었는데, 콩과 팥을 삶아 속을 넣고 시루에 솔잎을 깔아 쪄서 물로 씻어내고 참기름을 발랐다. 또한 정월에 만든 떡국을 남겼다가 끓여 먹기도 하였다.
그들로 하여금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여 주인은 술과 음식을 한턱내고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많은 노비들을 거느린 대가(大家)에서는 떡과 많은 음식을 장만한다. 그 해에 스무 살이 된 젊은이는 이날 성인 머슴에게 술을 낸다. 20세 전에는 아이로 취급하여 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지만, 20세가 되어 성인에게 한턱을 낸 다음부터는 어른 취급을 받아 그들과 품앗이를 할 수 있게 된다.
다. 풍신제(風神祭)
하늘에 사는 영등할머니가 2월 1일에 지상에 내려 왔다가 20일에 승천한다는 전설에 따라 1일 아침 일찍 새바가지에 물을 담아 장독대, 광, 부엌 등에 올려놓고 소원을 빈다. 이때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풍년과 가내의 태평을 빌기도 한다. 영등할머니는 바람의 신이기 때문에 바람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라. 청명(淸明)
청명일은 한식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를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일을 기해 봄일을 시작하므로 이 날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대궐에서는 버드나무와 느릅나무에 불을 붙여 각 사(司)에 나눠주었는데 불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유래했다.
마. 곡우(穀雨)
곡우는 24절중 여섯 번째로 이날 봄비가 내려 백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고 믿었다. 이때가 되면 못자리를 마련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볍씨를 담근다. 볍씨를 담아 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 나갔다가 상가(喪家)에 들렀거나 부정(不淨)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惡鬼)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일에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으며 따라서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 한식(寒食)
동지가 지난 후 105일째 되는 날을 한식일이라고 하는데 3월이 되기도 하고 2월이 되기도 한다.
한식날에는 조상의 묘 앞에 과일과 떡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라고 한다. 그리고 한식일에는 조상의 분묘가 헐었을 때에는 잔디를 입혀 주는 개사초(改莎草)를 할 수 있으며 묘 둘레에 식목도 할 수 있는 날이다.
원래 한식날에는 더운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었는데 이는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개자추는 간신에게 몰려 면산(緜山)에 들어가 있었는데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개자추의 충성심을 알고 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 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으니 사람들이 그의 충신 됨을 감동하여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이 날만은 불은 삼가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식날은 중국에서 유래되어 우리의 풍습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한식날에 만약 천둥이 치게 되면 나라에 흉년이 들고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여 이를 매우 꺼려했다.
사. 경칩(驚蟄)
경칩무렵에는 날씨가 따뜻해서 초목의 싹이 돋아나며 월동하던 짐승들도 땅속에서 나온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가서 개구리 알을 건져다 먹는다. 개구리의 정충(情蟲)은 몸에 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경칩일에 흙을 다루는 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는 일을 한다.
중국의 『한서(漢書)』에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후에 한(漢)의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하여 놀랠 경(警)자를 써서 경칩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3. 삼월 풍속(三月 風俗)
가. 삼짇날(三辰日)
3월 3일을 가리켜 삼짇날이라고 한다. 이때가 되면 겨울의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강남에 갔던 제비도 옛집을 찾아오고 제비들은 좋은 집을 찾아가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친다. 또한 날씨가 온화하게 되니 산과 들에는 꽃과 풀들이 피어나고 자라게 된다.
삼짇날에 우리들이 해 먹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다. 산에 만발한 진달래꽃을 뜯어다가 쌀가루를 반죽하여 참기름 을 발라 지져서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 음식은 봄의 감각을 물씬 느끼게 하는 것으로 우리네 조상들의 풍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꿀을 타고 잣을 넣어 먹는 화면(花麵)은 진달래꽃을 따다가 녹두가루와 반죽해서 만들기도 하는데 이 맛 역시 별미라 하겠다.
삼짇날에는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다. 이는 이날 머리 감으면 흐르는 물처럼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아름답게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한다.
봄의 기운이 만발한 삼월, 그 중에서도 삼짇날은 나비를 보고 점을 치는 풍습이 있다. 즉 여러 가지 나비 가운데서 노랑나비와 호랑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길조라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고 흰나비를 먼저 보면 부모의 상(喪)을 당하는 흉조라고 불길해 왔다.
또 개구리를 보면 배가 부르게 되고 개미를 보면 부지런해진다고 믿기도 했다.
4. 사월 풍속(四月 風俗)
가. 초파일
석가모니의 탄신일인 4월 8일에는 단오나 유두와는 달리 불가(佛家)의 명절이다. 이날에는 불교 신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절에 찾아가서 불공을 드리고 전등놀이와 탑돌기 등을 하는 풍습이 있다.
이 연등하기 위해서 각 가정에서나 절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고 상점에서도 만들어 판다. 또한 우리고장에서는 조상의 묘에 시제를 지내는 풍습도 있다.
부잣집에서는 초파일 며칠 전에 집 뜰에 등을 다는 장대를 세워 두고 장대 끝에 꿩의 꼬리털을 꽂고 물들인 비단으로 기(旗)를 만들어 다는데, 이것을 호기(呼旗)라고 한다. 이 호기에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달아맨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는 나뭇가지나 추녀 끝에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다는데 가족 수대로 단다. 이렇게 달아놓은 등에 초파일이 되면 불을 밝히게 되니 그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등의 모양은 형형색색으로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과일 모양을 하거나 꽃모양 , 고기 모양, 동물 모양 등의 수박등, 마늘등, 참외등, 연화등, 목단등, 거북등, 학등, 오리등 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등에는 ‘태평만세(太平萬歲)’, ‘수복(壽福)’ 등의 글을 써 붙이기도 하고 직접 등에 쓰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형형색색의 등들이 바람에 날려 흔들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연등하는 풍속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팔관회에서 유래하여 고려 초에는 정월 보름과 2월 15일에 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4월 초파일에 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
요즈음은 각 가정에서나 사찰뿐 아니라 거리에도 등을 달아매니 불교 신도들의 거국적 행사임을 알 수 있거니와 비록 신도는 아니더라도 연등하는 곳에 참여하고 구경하는 것을 봐서 대대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5. 오월 풍속(五月 風俗)
가. 단오(端午)
단오는 우리의 3대 명절의 하나이며 계절적으로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이기도 하다. 이 날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단오차례(端午茶禮)를 지낸다.
수릿날(戌衣: 쑥을 뜯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 날.) 또는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이라고도 불리는 단옷날이 되면 창포(菖蒲)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이렇게 하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며 잘 빠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창포로 술을 담아 마시기도 한다. 어린이는 창포탕을 만들어 세수를 하게 하며 부녀자들은 창포의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수자(壽字)나 복자(福字)를 새기고 끝에 인주(印朱)나 연지(嚥脂)로 붉게 칠을 해서 머리에 꽂는다. 이것을 단오장(端午粧)이라 하는데 이렇게 붉은 연지를 비녀 끝에 칠하는 이유는 붉은 색이 밝은 색(陽色)으로 귀신을 몰아내는 기능을 가졌다는 데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단오절에 하는 것으로 익모초와 쑥을 뜯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은 약용으로 쓰기 위해서이다. 단오일 오시(午時)에 익모초와 쑥을 뜯어서 말리고 이것을 약용으로 쓰면 다른 때에 뜯는 것보다 약효가 더하다는 것이다. 익모초(益母草)라는 이름 자체도 모체에 이롭다는 의미가 있듯이 여름철에 익모초를 즙으로 해서 마시면 식욕이 왕성해 진다고 한다.
그리고 단옷날 이른 아침에 쑥을 베어다 문 옆에 세워두면 모든 액(厄)을 물리친다고 해서 그렇게 한다.
6. 유월 풍속(六月 風俗)
가. 유두(流頭)
유두일은 6월 15일(보름)이다.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이날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하고 머리를 감아 하루를 즐긴다.
이렇게 하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의 풍속은 신라(新羅) 때에도 있었으며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가서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맑은 곳이며 밝은 기운이 감돌기 때문에 가장 왕성한 곳이기 때문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택한다. 유두일은 문사들이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계곡 등지에 찾아가서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기게 되는데 이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 한다.
또 이 무렵에는 나오는 새로 익은 참외, 수박과 햇밀가루로 국수와 떡을 사당[家廟]에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유두다례(流頭茶禮: 流頭薦新)를 지내는데 이는 조상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해서 새로 과일이 나도 먼저 먹지 않고 조상에게 올리는 것이다.
부녀자들은 머리숱이 많고 소담하기를 바라면서 머리채의 끝을 잘라 삼밭에 묻었다. 또 유두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유두일에 해먹는 음식으론 유두면(流頭麵), 수단(水團), 건단(乾團), 연병(連餠)이 있다. 유두국수를 먹으면 장수하고 더위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먹는다. 옛날에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처럼 만들어 다섯 가지 색으로 세 개씩 포개서 실로 꿰어서 허리에 차거나 대문위에 걸어 놓는데 이는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수단은 쌀이나 밀가루로 경단같이 만들어서 꿀물이나 오미자 국물에 담가 먹는 것을 말하고 건단은 찐 쌀가루를 길게 빚어서 가늘게 썰어 구슬같이 만들어 꿀물에 담가 먹는 것이다. 그리고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판 위에 놓고 방망이로 문질러 넓게 만든 다음에 튀기거나 또는 깨와 콩을 묻혀 꿀을 발라서 먹는 것이다.
나. 삼복(三伏)
삼복이라는 것은 초복, 중복, 말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초복(初伏)은 하지(夏至)가 지난 세 번째 경일(庚日)이고, 중복(中伏)은 네 번째 경일, 말복(末伏)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이 삼복은 일 년 중에서 가장 더운 때로 삼복더위란 말이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복중(伏中)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술과 반찬을 마련하여 산과 하천을 찾아가 하루를 즐긴다.
복중에는 자주 찾는 음식으로는 보신탕을 들 수 있다. 보신탕을 먹게 되면 귀신을 방지한다고 하며, 더위를 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보리밥이 곁들여 진다. 또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 그리고 찹쌀을 넣고 삶은 삼계탕을 먹는데, 이는 여름철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므로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아울러 더위를 잊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7. 칠월 풍속(七月 風俗)
가. 칠석(七夕)
7月 7日을 칠석이라고 하는데 이날이 되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난다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칠석이 되면 처녀들은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에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며 공부하는 소년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하는 시를 짓기를 즐겨했다.
그리고 칠석에는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풍습이 있으니 이를 포의(曝衣), 쇄서(曬書)라 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여름의 장마철에 장롱 안의 의류와 서책(書冊)이 습기가 차서 좀이 슬거나 썩기 쉬우므로 장마가 지난 이때 햇볕에 말려 두며 겨울을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칠석의 전설을 중국의 재해기(齎諧記)에 나타난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먹으며 게으름만 피우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銀河水)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 까마귀와 까치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어 서로 만나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데, 이는 칠석날 하루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헤어져 다시 일 년 동안을 고독하게 지내는데, 칠석날 저녁에 비가 오면 서로의 만남을 기뻐하는 눈물이라고 하고 다음날 새벽에 비가 오면 헤어짐을 슬퍼하는 눈물이라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리고 칠석날이 되면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은하에 다리를 놓아 주러 갔기 때문이라고 하며 간혹 보이는 까마귀와 까치는 병들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나. 백종(百種)
7월 15일을 백종일(百種日)이라 한다. 또는 백중절(百中節)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하여 승려들은 절에서 재(齋)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했으며 민가에서도 ‘백종차례’ 라고 해서 백종날 밤에 주효와 밤, 떡, 과일 등으로 조상의 사당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혼을 불러 햇것으로 제사하는 천신(薦新)도 있었다. 이 무렵에는 햇곡식과 햇과일 새 맛을 돋구는 채소 등 100가지 종류의 제공을 드릴 수 있다는 뜻에서 백송이라 했다.
7월이 되면 농촌에서는 밭매기와 논매기가 거의 끝나고 비교적 한가하여 속신에도 ‘어정칠원 동동팔월’이라 하듯이 어정거리며 지내는 때이다. 그러므로 마을에서 일정한 날을 정하여 ‘호미씻이’라는 것을 한다. 호미씻이를 하는 날은 집집마다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산이나 계곡을 찾아 먹고 마시며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또 백중을 전후해서 서는 장을 백중장(百中場)이라 한다. 백중장이 서면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새 옷 한 벌과 장에 나가 먹고 쓰고 즐길 돈을 주니 이를 백중돈이라 한다. 이렇게 백중은 농부들과 머슴들의 명절이었으므로 이를 머슴날이라고도 한다.
이날 ‘술멕이’라 하지만 특별히 행하는 일은 없다.
8. 팔월 풍속(八月 風俗)
가. 벌초(伐草)
추석 2~3일 전에 선조들의 묘에 찾아가 풀을 베고 봉분을 보살핀다. 이것을 벌초라고 하는데, 이 벌초는 묘가 가깝건 멀건 간에 반드시 가게 된다. 이때는 낫을 잘 들게 갈아서 가지고 가는데, 묘지가 멀면 낫을 갈아 낫 목에서 부터 낫 부분을 새끼로 감은 후 수십 리 길을 찾아가서 벌초를 한다.
이와 같이 벌초를 하는 것은 추석 성묘 때를 대비하기도 하지만 조상들의 묘에 잡초와 풀이 우거진 것은 자손들의 정성이 부족하다 하여 수치로 알기 때문이다.
나. 추석(秋夕)
8월 보름을 우리나라 명절중의 가장 큰 명절이다. 추석이란 말은 8월의 보름달이 가장 월색(月色)이 좋으므로 『예기(禮記)』에 춘조월(春朝月), 추석월(秋夕月)이라 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로 ‘한가위’, 가배일(嘉俳日)이라고 부르니 이는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한가위가 되면 여름에 가꾼 곡식들도 거의 자라게 되니 농사일도 한가하고 햇곡식으로 밥을 지을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감, 대추, 사과, 밤, 배 등의 과일도 풍성하게 되고 달도 또한 일 년 가장 밝은 때이다.
이날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햇곡식으로 밥하고 과일을 차려서 제사를 지내게 된다. 그리고 또 제사가 끝나면 이웃과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제사가 끝나면 성묘를 가게 된다. 이때는 집안의 어른에서부터 아이들까지 같이 가게 되는데, 각 산소마다 재배를 함과 아울러 조상들의 업적이나 유업을 이야기함으로써 조상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공경하게 된다.
이날 처녀들은 달밤에 모여 강강술래 놀이를 한다.
9. 구월 풍속(九月 風俗)
가. 중양절(重陽節)
9월 9일을 중양절 또는 중구일(重九日)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구(九)자가 두 번 겹쳤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기수(寄數)가 겹친 날은 명절로 생각하였으니 9월 9일 역시 명절인 샘이다.
이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 국화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단자를 만들어 먹는데 이것이 국화전이고 술에 국화를 넣어서 향기를 내는데 이것은 국화주이다.
이와 같이 음식과 술로써 계절을 맛보는 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서 단풍이 든 산과 계곡을 찾아서 시식(時食)을 배불리 먹고 하루를 술에 취해 산수(山水)를 구경하고 시(詩)를 지어 부르는 풍류도 즐기게 되어 이는 선조들의 멋을 알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10. 시월 풍속(十月 風俗)
가. 시제(時祭)
10월 15일을 전후하여 시제를 지낸다. 집안의 사당에서는 5대까지만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그 윗대의 선조들을 함께 모아서 제사를 지내니 이것을 시제라고 한다.
5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제사이기 때문에 자손의 수가 많은데, 그 자손들의 대부분은 이 시제에 참석한다. 시제에 드는 비용은 문중에 있는 전답에서 수확되는 것을 사용하며 음식 장만은 재실(齋室)에 따른 관리인이나 산소를 지키는 산지기들이 장만을 하게 된다.
많은 자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야 만이 자손으로서 도리라고 여기며 집안이 융성 한다고 믿기 때문에 시제를 지내는 날짜를 잡게 되면 이 날만은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참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제 때에는 원근의 후손들이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며 묘자리가 명당일수록 후손들에게 복이 많다고 한다.
나. 마일(馬日)
10월 들어 첫 오일(午日)을 말날이라 하여 이날 팥떡을 해서 마구간 앞에 놓고 고사를 지냈다. 말이 병들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비는 것이다.
다. 성주제(城主祭)
오일(午日) 또는 길일(吉日)을 택하여 신곡(新穀)으로 술을 빚고 시루떡과 과일 등을 장만하여 성주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성주신은 집안의 안녕을 담당하는 신이므로 대개 일가의 편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11. 십일월(十一月)
가. 동지(冬至)
동지는 11월에 든다. 그래서 11월을 동짓달이라고 부른다. 동지는 하루의 해가 하지(夏至)로부터 차츰 짧아지기 시작하여 극한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긴 날이기도 하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작은설이라고 부르는데 이날 어느 가정에서나 팥죽을 끓여 먹는다. 민간에서는 이 팥죽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광 같은 곳에 한 그릇씩 떠다 놓으며 대문이나 벽에다가는 수저로 뿌린 다음에 먹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안에 액(厄)을 막고 잡귀를 없애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팥은 그 색이 붉은 곡식이기 때문에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예부터 붉은 색은 축귀의 기능이 있다고 믿어왔던 것에서 팥죽을 끓여 먹었겠지만 이것은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공공씨(共工氏)는 불초자(不肖子)를 두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귀는 팥을 무서워하므로, 그리고 동짓날 죽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12. 십이월(十二月)
가. 납향(臘享)
12월은 납월(臘月)이라고 하여 보통 섣달이라고 부른다. 이달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향이라고 하였으며 이 날에는 묘(廟)와 사(社)에 큰 향사(享祀)를 지냈기 때문이다.
납향날 밤이면 농촌에서는 새잡기를 하며 이날 내린 눈은 약이 된다고 하여 독에 가득히 받아 두었다. 이 눈이 녹은 물을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으며 옷가지와 서책(書冊)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물을 두었다가 한약을 만드는데 쓰기도 하고 눈을 씻으면 안질에 걸이지 않는다고 믿기도 했다.
나. 제석(除夕)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을 섣달그믐, 제석, 제야(除夜)라고 한다. 1년 중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청산한다는 뜻이 있었다.
속칭 ‘작은 설’이라고 하여 묵은세배를 하니 옛날 조정에서는 조신이품(朝臣二品) 이상과 시종신(侍從臣)들은 대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묵은해의 문안을 올렸으며 민간인들도 연소자들이 친척 어른들을 찾아 묵은세배를 하느라고 이날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길거리에 등불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한편 옛날 제석에는 상사나 친척 또는 친지들에게 세찬으로 쓰는 전복, 육포, 곶감, 대추 등을 선물하였으나 지금은 주로 고기, 생선, 과일, 술 등을 보내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날 밤에는 닭이 울 때 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제야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센다.”라고 하면 아이들은 대개 속아서 잠을 자지 않는다.
간혹 자는 아리가 있으면 다른 아이가 분(粉)이나 쌀가루를 개어 자는 아이의 눈썹에 바르고 깨워서 거울을 보게 하면서 놀리는 풍습도 있다.
13. 윤달(閏月)
윤달은 음력 1년 12달 이외로 한 달이 더 불어난 1년 중의 어느 달을 말한다. 이렇게 윤년이 들어있는 해를 윤년이라고도 한다. 윤달은 태양력(太陽曆)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돌아오며 그 차이는 2월 29일로 하루가 더 많아지는 것이지만 우리 조상들의 민속생활과 밀착되어 온 달력을 기준으로 삼는 태음력을 사용해 왔는데 태음력에서는 윤달이 든 윤년이란 1년 12달에서 한 달이 더 많은 1년 13달이 되는 것이다.
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니기 때문에 이 달에는 무슨 일을 해도 부작용이나 해가 없다고 하는데 혼례를 올리거나 수의(壽衣)를 만드는 일을 이 달에 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래서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안 난다.”라는 속감이 있을 정도로 이 윤달에는 꺼릴 일이나 피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닌 가외로 있는 달을 말한다. 그래서 이 달은 무슨 일을 해도 부작용이나 해가 없다고 하는데, 혼례를 올리거나 수의(壽衣)를 만드는 일을 이 달에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리고 아무런 탈이 없는 달이라 하여 부정을 타거나 액이 있을 일을 할 때는 윤달에 그 날짜를 정하며 행하고 있다.
가옥을 수리하거나, 이사를 간다거나, 이장을 한다거나 할 때는 윤달에 하는 것이 아무런 해도 없이 좋다고 생각하여 대개 윤달에 많이 하고 있다.
윤달에 행하는 특별한 풍습으로는 성(城)돌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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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 全北의 뿌리』 (전라북도 문화공보 담당관실, 1984. 2. 10.), 302~308.『내 고장 傳統文化』 (정읍군청 공보실, 1983. 11. 9.), 30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