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傳承)놀이
1. 일반적인 놀이
1) 줄다리기
정월이나 7월에 있는 놀이인데 한 부락에서 할 때에는 마을의 중앙을 뚫는 도로 또 내[川]를 분계(分界)로 하여 부락을 상하로 나누어 승부를 내고 진 쪽에서 주식(酒食)을 내어 즐겁게 논다.
부락끼리 대항할 때에는 시장 같은데서 하고 마을에 따라서는 남녀가 조로 나누어 하기도 한다. 이 때 미성년자는 여자 편에 낀다.
줄[綱]은 자강(雌綱: 암줄)과 웅강(雄綱: 수줄)을 가져와서 두 개를 이을 때는 농악을 치며 고함을 지른다. 이 줄다리기로 마을이 떠들썩하게 되면 연중 액운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암줄은 머리 부분을 둥글게 만들고 수줄은 머리 부분을 둥그런 막대같이 만든다.
2) 다리 밟기(踏橋)
정월 대보름날 태인 대각교(大覺橋)의 다리를 건너고 돌아오기를 그 해 자기의 나이만큼 한다. 부인들은 음식을 물에 던져서 그 해의 복을 빌기도 한다. 부락의 남자들은 소년을 어깨위에 얹어 춤을 추며 농악을 앞세우고 행진하여 다리 위나 그 부근에 술좌석을 베풀어 모두들 술을 마시면서 밤을 새우며 놀기도 한다.
3) 농악놀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농기(農旗)를 선두로 나팔, 징, 꽹과리, 북, 소고 따위를 불며 치는 것을 말하는데 손짓, 발짓, 고갯짓 등 온몸을 움직이며 멋진 춤으로 행진을 한다.
작업장에서는 기를 선두에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춤을 추며 명절 때에는 마을을 순회하며 즐긴다.
4) 널뛰기
정월이나 단오 때 부녀자들이 길고 두꺼운 판자의 한 가운데에 가마니 같은 것을 접어 베개로 만들어 놓고 판자의 양쪽에 둘이 서서 교대로 뛰어오르고 내리며 논다.
5) 쌍육(雙六)
상대와 내가 각각 15개씩의 말을 갖고 주사위를 던져 그 점수를 계산해서 말을 나가게 하여 승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당나라의 궁녀들의 놀이였던 것을 사신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배워 가지고와 민간에게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6) 천렵(川獵)
남정네들이 여름에 끼리끼리 모여 그물, 냄비, 장, 술 등을 마련해서 냇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 잡은 고기를 즉석에서 요리하여 먹으며 논다.
7) 광대놀이(廣大-)
정월 상순경 농악대가 5개의 큰 가면을 쓰고 부락의 액(厄)막이를 하는 것으로 음악에 맞추어 재미있는 춤을 추어 부락민들을 웃기는 것이 특징이다.
8) 관왕묘(關王廟) 참배
관왕묘는 관성묘(關聖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부른다. 옛날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였던 관운장(關雲長)을 받들어 숭상하고 그의 상을 모셔 놓은 묘당(廟堂)이다.
사람들이 매년 정월 초순에 이곳을 찾아 참례하는 풍속이 있었다. 관왕묘를 참례할 때에는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갖고 묘당을 찾아 참례해야 소원 성취할 수 있다 하니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고운 옷을 입고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 동안의 행복을 빌었다.
지금은 이 관왕묘 참례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까지만 해도 정월 초하룻날만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례행력이 그치지를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들, 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고 아들, 딸들은 부모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또 아내는 남편의 장원급제와 그리고 아들, 딸 많이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총각들은 아름다운 색시를 아내로 맞게 해 달라고 빌었고 처녀들은 미남 도력을 낭군으로 맞게 해 달라고 빌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명나라의 장수였던 진인(陳寅)이 일본인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교 이곳 묘당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장수가 전장에서 상처를 입고 누웠으니 명나라 군사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이때 이곳엔 관운장(關雲長)의 혼령이 자꾸 나타나 실의에 빠진 군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진인(陳寅) 장군의 상처도 낫고 명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관운장의 혼령이 자주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해서 이곳에 관왕묘를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2. 어린이 놀이
1) 각시놀이
따뜻한 봄날 마른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잎이 피고 산과 들에 푸르고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면 대대 대여섯 살 되는 어린 계집아이들이 노는 놀이이다.
나무쪽 끝에 다가 풀끝머리를 실로 매고 머리를 땋아 가느다란 나무로 쪽을 지고 헝겊조각으로 나뭇조각에다가 노랑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만들어 입혀서 새각시 모양으로 하고 요나 이불, 베개, 병풍을 차려서 혼례식 등의 흉내를 내면서 장난을 하고 노는 것이다.
2) 공기놀이
보통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일 경우에는 편을 갈라서 하게 된다. 어린 계집아이들이 늦은 봄 처마 밑이나 여름날 나무 그늘 밑에서 둥그스름한 바둑돌이나 또는 기와조각을 깨트려 둥그스름하고 조그맣게 만들어 한사람 앞에 열 개씩 갖는다.
두 사람이 제각기 열 개씩 가지고 우선 누구든지 손등에 얹힌 것을 많이 받으면 ‘먼저’가 된다. 먼저가 정해지면 두 사람일 경우에는 공기 20개를 가지고 두 손으로 쥐어서 공중에 치뜨리고 한 손을 엎어서 떨어지는 공기를 손등에 받은 후에 그것이 몇 개가 얹히든지 다시 돌을 공중으로 던지는 동시에 손을 제쳐 한 개만 받는다. 받은 그 한 개로서 땅에 떨어져 있는 공기 세 개를 주움과 동시에 던졌던 공기를 받는다. 그리고 공기 셋을 가지고 공중에 던져서 손등에 받아 가지고 다시 공중에 던져 돌을 땅으로 뿌리고 셋 중에 한 개만 손을 제쳐 받는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것을 자주 반복한다. 그런데 셋을 주울 경우에 옆에 있는 돌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그리하여 열 개 이상을 따면 이긴다. 그러므로 누구나 먼저 되기를 다투는 것이다. 대개 이기면 딴 공기수대로 진 사람의 팔뚝을 때리는 것이 상례이다. 이것을 ‘양국’이라 한다. 여러 사람이 할 경우에는 편을 짜서 둘 혹은 셋씩 한편이 되는 것이다.
이 공기받기에는 그 노는 법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한 개씩 취하는 것을 ‘한 알 잡기’ 또는 ‘첫 집기’라고 하고 두 개씩 취하는 것을 ‘두알 잡기’ 혹은 ‘두 집게’, 세 개씩은 ‘세알 잡기’ 혹은 ‘세 집게’, 네 개씩은 ‘모두 집기’ 혹은 ‘네 집게’라고 한다.
이외에도 ‘알 낳기’, ‘가마(솥)걸기’, ‘두알 낳기’, ‘세알 낳기’, ‘쌀 낳기’, ‘닭 가둡기’, ‘외양치기’, ‘밥 먹기’, ‘물먹기’, ‘뙤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 공기받기를 지방에 따라서는 ‘살구 받기’, ‘조개질’, ‘조아질’이라고 하는데도 있다.
3) 그림자놀이
지금은 호롱불이나 촛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없어졌으나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많이 한 놀이이다. 저녁상을 물리치고 등잔 밑에 몇 명이 모여 앉아 이 그림자놀이를 하는데 호롱불이나 촛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손으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문이나 벽에 여러 가지 그림자가 생기게 했다.
그 모양은 마치 개, 토끼, 사람 등 여려 형태와 같았고 다른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형태인가를 알아맞히기도 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형태에다 약간의 동작을 가하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게 되며 보다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막대기나 종이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삼촌이나 형에게 배운 여러 모양을 익히기 위해서 아이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 놀이에 열중하기도 한다. 더불어 어린이들에게 예술적인 감각을 키워주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놀이인 것이다.
4) 꽃놀이
열 살 남짓의 남녀 아리들이 따뜻한 봄날 들판에 나가서 놀다가 꽃놀이를 한다. 일정한 시간에 들판에 있는 갖가지 색깔의 꽃을 꺾어 가지고 와서 꽃 숫자를 헤아려 많이 뜯은 아이가 이기는 것이다.
또 무슨 꽃이든지 꽃이 있는 줄거리채로 꺾어서 두 사람이 서로 막걸어 당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자기의 꽃이 떨어지지 않거나 또는 적게 떨어진 쪽이 이기는 것이다.
5) 도둑잡기(捕盜놀이)
사람 수는 보통 네 사람 이상으로 열 살 안팎의 사내아이들이 방안에서나 야외에서도 한다. 종이를 가위나 칼로 자그맣게 잘라서 거기에다 서장, 형사, 도둑놈, 백성 등 이렇게 쓰는데 백성은 서장, 형사, 도둑놈을 제외한 사람 전부가 된다.
이렇게 다 써서 글씨가 안보이도록 접어서 뒤섞은 후 아무것이나 하나씩 집어와 펴보고 내가 무엇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서장이라고 쓴 종이의 임자가 스스로 “형사야 도둑놈을 잡아 오너라.”하고 명령한다. 그러면 형사가 된 사람은 서장을 제외한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아 도둑놈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적한다. 만일 형사가 잘못 지적하였으면 지적당한 사람이 형사를 때린다.
6) 돈치기(擲錢)
봄가을에 열두 살 안팎의 사내아이들이 담 밑 같은데서 많이 한다. 사람 수는 두 사람이 상으로 땅바닥에다 반달형을 그리고 그 안에다가 자그마하게 구명을 파놓고 5~6m 떨어진 던지는 자리 줄(投線) 있는 곳에서부터 사람이 내어놓은 엽전 또는 구리돈(銅錢) 한 푼씩을 거두어 모아 쥐고 구멍에 던진다. 그러면 구멍의 것이나 그 밖의 있는 돈을 상대방이 지정을 해주면 정해둔 동그스름한 돈을 던져서 그 돈을 맞힌 이 돈을 한 푼 따가지고 또 계속하는 것인데 맞히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노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며 그 돈을 누구든지 따 가질 때까지 계속한다. 이 돈치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제일복’, ‘모도 쓰리’, ‘한입 쓰리’ 등 노는 법이 있으며 지방에 따라 이 놀이를 ‘맞돈’, ‘땅개’, ‘횃불 돌리기’, ‘목돈’이라고 하는데도 있다.
7) 돌차기
열 살 안팎의 계집아이들이 봄, 여름, 가을에 나무 밑, 그렇게 무르지 않은 평평한 땅바닥에서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하는데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편을 짜서 한다.
제각기 납작하고 손바닥만 한 차기 좋은 돌을 장만하여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돌을 첫째 칸에 놓고 왼쪽발로 차서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그리고 둘째, 첫째 칸으로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그어놓은 선(線)에 돌이 닿든가 잘못차서 칸 밖으로 나가든가 하면 그다음 사람이 하게 된다. 이리하여 많은 수(數)를 올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 놀이에도 노는 법이 여려가지가 있으니 두 사람인 경우에는 4, 5, 6,…의 수로 모여 두 패로 나누어 꼭 같은 사람 수를 나누는데 만약 한 사람이 남으면 ‘깍두기’라고 해서 어느 편에서나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 사람의 아이들이 놀 때에는 각 세 사람씩 편을 나누고 깍두기가 남는다. 이긴 편이 먼저 한 칸에 돌을 차례로 던지는데 깍두기부터 차례로 돌을 차며 나가되 돌을 차는 이외에는 발을 움직이지 못하여 한 칸에 둘씩은 못 들어간다. 그리고 1, 2, 3 ,4…의 순서를 따라 돌을 차며 다시 자기 칸으로 돌아간다.
모두 무사히 끝났으면 두 칸으로 진급해서 돌을 그 곳에 차례로 던지는 것이다. 돌끼리 마주치면 둘이 다 죽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라고 벌칙을 하면 모두 죽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칸에는 모두 눈을 감고 그 칸에 가서야 눈을 뜰 수 있으며 잘 되었으면 그 칸에서 만은 한 번 발을 떼었다 놓을 수 있다. 그 공간에 들어간다면 아직까지의 것은 무효로 다시 한 칸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하여 먼저 열두 칸까지 마치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8) 땅 빼앗기
이른 여름 남녀 어린이들이 나무 그늘에서 두 사람이 제각기 둥글납작한 돌조각이나 독그릇 깨진 조각(둥글게 다듬는다.)을 가지고 ‘땅 빼앗기’를 하고 논다.
놀이하는 아이들이 독그릇 깨진 조각으로 원(圓)을 땅바닥에 그리고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은 원의 한 귀퉁이에서 안쪽에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뻗어 돌려서 이것을 반경으로 원을 그리고 그런 땅바닥을 자기의 소유로 한다.
이와 같이 몇 번이고 이것을 되풀이하여 땅바닥이 좁아진 편이나 완전히 다 빼앗긴 편을 진 것으로 한다.
이 놀이도 지방에 따라 다소간 다르기도 하나 두 사람이 커다란 원을 그려서 반원으로 이등분하고 이등분한 직선상에서 가장 먼 곳에 각기 자기 손으로 가장 큰 반원을 그린 다음 이긴 사람이 먼저 선에다 돌을 대고 상대방의 집을 향해 손가락으로 튀긴다. 그리고 돌이 상대방의 집에 들어가면 손으로 가장 크게 반원을 그려 상대방의 땅을 빼앗는 것이다.(뒤에 상대방의 집으로 돌을 넣기 쉽게 하기 위해 그 가까운 쪽에서 빼앗는다.)
둘이 상대방의 집에 들어갔든지 못 들어갔든지 다음은 상대방의 차례다. 이리하여 먼저 땅을 다 빼앗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 놀이를 ‘따재기’ 또는 ‘땅재먹기’라고 하는데도 있다.
9) 말 타기 놀이
대개 겨울철 양지쪽에서 10대 소년들이 많이 한다. 두 패로 나우어서 하는데 한 패가 보통 4~5명씩이 된다. 먼저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진편이 말이 되고 이긴 편이 타는 편이 되는 것이다. 진편 중에서 한 사람은 담에 기대어 마부가 되어 서고 나머지는 허리를 구부리고 양손으로 앞사람의 허리를 제각기 꽉 쥐고 있으면 타는 사람이 모두 차례차례 달음질쳐 등허리위에 뛰어 탄다. 그리하여 말 탄 맨 앞사람이 마부와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몇 번이든지 이긴 편은 말을 타게 되고 진편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탈 때 말 탄 사람을 태운 채 말이 넘어지거나 말 된 사람이 서로 붙잡은 손을 놓아 사이가 벌어져 사람이 빠지게 되면 지는 것으로 되어있어 이렇게 되면 다시 말이 되는 것이다.
10) 못 치기
열 살 남짓의 소년들이 보통 2~3명씩 어울려 가을철에 많이 한다. 작은 못도 사용하지만 대개는 큰 못(혹은 굵은 철사를 다섯 치 내외로 끊어서 끝을 뾰족하게 하고 머리 쪽을 못 대가리같이 뭉툭하게 만들기도 한다.)을 오른손 아비손가락과 어미손가락사이에 끼어서 땅에 내리쳐 던져 뾰족한 끝이 박히게 함과 동시에 상대자의 박힌 못을 넘어뜨려서 따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이를 하는 소년들은 대개 대, 중, 소의 못을 적어도 5~6개 이상 10개씩 가지고 있으며 땅바닥에 자기의 내리쳐 던진 못이 땅속에 깊이 박혀 상대의 내리치는 못에 자기 못이 부딪혀 빠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대개는 못 끝을 뾰족하게 망치를 가지고 다듬어서 사용한다.
11) 버들피리 불기
해마다 이른 봄에 나뭇가지에 물이 오를 때 쯤 되면 사내아이들이 개천가 버드나무나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비틀어서 껍질을 통해 뽑고 속뼈는 내어버리고 그 환피(丸皮)로서 피리를 만들어 불고 돌아다니면서 노는 것이다.
이 버들피리는 ‘호드기’라고 하는데 경상도에서는 ‘횃대기’ 또는 ‘홀때기’라고도 한다.
12) 소꿉놀이
날이 따뜻한 봄날이나 녹음이 짙은 첫여름이 되면 여섯 살 안팎의 어린 계집아이들이 대문밖에 나와서 둘 셋씩 이웃동무들과 어울려 대개 소꿉놀이를 하고 논다.
대문간 한 귀퉁이에다 자리를 정하여 깨끗이 치워놓고는 조약돌을 주워 다가 딱깝지 솥을 걸고 박쪽이나 조개 피에다 흙을 파담아 두드리며 “너는 쌀밥 먹고 나는 조밥 먹고…”하면서 밥 짓고 풀잎을 뜯어서 반찬을 만들고 하여 세간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다.
13) 술래잡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옷자락이 보인다.” 이와 같은 술래잡기노래를 부르면서 동네의 골목길 같은 데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아리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숨을 만한 곳만 있으면 할 수 있어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오면 몇 명이 모여서 이 놀이를 한다. 술래잡기를 시작할 때는 ‘가위, 바위, 보’로서 술래를 정하고 술래는 전봇대나 벽 등의 적당한 곳을 집으로 정하고 그 곳에다 얼굴을 대고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미리 약속한 숫자를 세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열 번 정도 외우게 한다. 그동안에 나머지 사람은 숨을 만한 장소를 찾아서 숨게 되는데 되도록 술래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야 한다. 술래는 숫자나 어떤 말을 외운 다음에 얼굴을 들고 눈을 떠서 자기가 눈을 가리고 수를 세는 동안에 숨은 아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에 숨어있는 아이가 술래보다 먼저 달려가 집에 손바닥을 짚으면 다음번에도 숨을 자격을 갖추게 되지만 술래에게 먼저 발각되어 술래가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집에 손을 찍으면 걸리게 되는데 제일 먼저 술래에게 걸리는 사람이 다음번 술래가 된다. 그러나 술래가 숨어있는 아리들을 하나도 못 찾으면 다음에도 또 술래를 해야 한다.
14) 자치기
자치기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놀이기구가 없었던 옛날에 흔히 어디에나 있는 막대기를 이용하여 훌륭한 놀이를 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놀이를 위해서는 우선 작은 막대와 큰 막대가 필요한데 작은 막대는 대략 10~15㎝ 정도이고 큰 막대는 40~60㎝ 정도가 적당하다.
2명 혹은 그 이상이 될 때는 편을 짜서 시합을 하게 되는데 이 놀이에는 순서와 방법이 다양하다. 편이 짜지면 먼저 공격할 편과 수비할 편을 정하고 수비 할 편은 수비위치를 잡는다. 공격할 편은 공격에 들어가기 전에 땅에 적당한 원을 긋고 원 가운데에 구멍을 판다. 구멍위에 작은 막대를 가로로 걸쳐놓고 큰 막대를 구멍 밑에 넣은 다음 위로 힘차게 떠서 멀리 날려 보낸다. 수비 편은 이 막대를 받아야 공격을 할 수 있는데 만약 막대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공격 편의 원안에 던져서 넣어야 한다. 이 때 공격 편의 큰 막대를 가진 사람은 원을 향해서 날아오는 작은 막대를 쳐내고 쳐낸 지점에서부터 세 번 계속 쳐 보낸다.
쳐서 날려 보낼 때에는 먼저 작은 막대의 끝부분을 쳐 작은 막대가 뛰어 오르게 한 다음 뛰어 오른 막대를 큰 막대로 힘껏 쳐서 멀리 날려 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번을 치고 나면 친 편에서 큰 막대를 기준으로 몇 자라고 부르게 된다. 즉 원에서부터 작은 막대가 있는 곳과의 거리를 대강 몇 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수비하는 편이 실제의 자수보다 많이 부른다고 생각되면 직접 거리를 잰다. 거리를 잰 결과 부른 자보다 더 될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적을 때는 공격과 수비가 바뀌게 된다. 이 단계가 끝나면 작은 막대를 공중에 던져 놓고 치기, 한손에 크고 작은 막대를 쥐고 작은 막대만 위로 올린다음 큰 막대로 치기, 양손에 큰 막대와 작은 막대를 쥐고 있다가 작은 막대의 끝부분을 쳐 빙그르 돌린 다음에 쳐 보내기, 가지랑 이에 한 손을 집어넣고 작은 막대기를 보내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각 순서마다 자를 많이 빼고 순서를 빨리 끝내는 편이 이기는데 완전히 순서를 끝내면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 된다.
15) 제기차기
겨울에 사내아이들이 동제 골목 같은 곳에서 보통 사람이 받고 노는 것이다. 가운데 구멍 뚫린 엽전을 습자지나 한지(韓紙)로 싸서 구멍을 내어 나온 종이를 일곱~여덟 닥으로 찢어서 숱을 만들어 찬다.
먼저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부터 시작하는데 오른쪽 발의 안장이로 차고 받으면서 수를 세며 많이 차고 받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차다가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면 상대방이 차는 것이다. 차고 싶은 개수를 세는 것은 대개 정월부터 섣달까지를 세고는 1년이라고 하고 또 정월부터 섣달까지 이렇게 세어서 “몇 달로서 이겼다.”, “몇 년 몇 달까지 했다.” 이렇게 말하게 된다.
16) 줄넘기
열 살 안팎이 소녀들이 마당 혹은 골목에서 많이 하는데 세 사람이 보통이다.
5m 가량의 가느다란 새끼줄(요즘에는 고무줄을 많이 사용한다.) 하나를 양편에서 서로 잡고 선다. 가운데 한사람이 수에 맞추어 또는 노래에 맞춰 높이 뛰었다 돌아서 뛰기도 한다.
두 사람이 하는 경우에는 한 사람이 잡고 또 한 쪽은 나무에 깨어 놓는다. 네 사람이 하는 경우에는 편을 짠다. 노래는 대개 2박자 노래와 4박자 노래를 부르게 된다.
17) 팽이치기
겨울이 되면 소년들은 길바닥에서 팽이치기를 많이 한다. 보통 미루나무를 가지고 둥글둥글하고 갸름하게 깎고 또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팽이를 만들고 막대기나 나무도막을 쪼개어 팽이채를 만드는데 나무 끝에는 헝겊조각을 잘 빠지지 않게 맨다.
요즘에는 이 팽이를 전문으로 만드는 곳이 생기고 도시에는 장난감 가게에서 이것을 내놓고 판매함으로 사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이 놀이는 자기 혼자서도 하고 여럿이도 하는데 대개는 넓은 한길에서 하지만 겨울에는 얼음위에서 또는 심한 아이들은 방안에서도 하는 것이다.
팽이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팽이채를 들어 팽이채 오라기로 팽이허리를 칭칭 감아 가지고 양손으로 당기는 동시에 그 팽이는 땅바닥을 향하여 떨어지는 동시에 빙빙 돈다. 그러면 팽이를 살리기 위해 팽이채로 팽이를 자주 때리는 것이다.
그러면 쓰러지다가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의 팽이가 다른 동무의 팽이보다 더 오래 돌기를 노력하고 이것을 시합하기도 하는데 두 팽이를 접근시켜 부딪치게 하여서 먼저 죽는 팽이가 지는 것으로 하면서 노는 것이다.
서로를 팽이가 오래 돌도록 다룰 때에는 팽이 노래도 부른다.
18) 풀 놀이
봄이나 여름철에 열 살 미만의 남녀아이들 몇이 들에서 일정한 시간에 될수록 많은 종류의 풀잎을 뜯어 와서 한자리에 모여 뜯어온 풀잎을 서로 하나씩 내놓아 그 풀잎의 이름을 대기도 하고 같은 풀잎을 내놓기도 하여 가장 많이 알고 또 가장 많은 종류를 꺾은 이가 이기는 것이다.
19) 비석치기
비석치기는 주로 여러 아이들이 한다. 땅에 줄을 긋고, 3미터쯤 앞에 납작한 돌을 비석처럼 세운 뒤, 돌을 던져 비석 돌을 쓰러뜨리는 놀이이다. 처음엔 그냥 던지나, 차차 발등,무릎사이,배,가슴,어깨,이마,머리 등에 돌을 얹은 채로 다가가 돌을 내려서 비석을 쓰러뜨린다. 비석을 상대편보다 많이 쓰러뜨리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20) 판수놀이
한 아이의 눈을 수건으로 가려 앞을 못 보게 해 판수로 삼고, 판수가 도망치는 아이를 잡는 놀이이다. 판수는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망치는 아이를 잡기가 매우 어려운데, 아이들은 판수를 놀리려고, 손뼉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판수를 유인한다. 판수가 다가오면 재빨리 도망치는데, 이 때 잡히면 다음 판수가 된다.
21) 다리세기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 다리 사이에 다리를 뻗은 뒤, 어느 한 쪽부터 다리를 세어 나아가는 놀이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데, 노래가 끝나는 곳의 다리는 계속 빼낸다.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패자가 되며, 패자는 승자가 내리는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22) 가마타기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손을┒자형으로 맞잡으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앉을 자리가 생긴다. 여기에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가마에 탄 사람끼리 싸워서 승부를 가린다.
23) 말 타기
여럿이 어울려 하는 놀이로, 먼저 가위 바위 보로 편을 가른다. 진편에서는 말과 마부를 뽑아 마부가 된 아이는 나무기둥에 몸을 의지해 서고, 말이 된 아이들은 차례로 엎드려, 앞 아이의 허리춤을 뒤에서 꼭 껴안는다. 이렇게 말이 준비되면, 이긴 편 아이들이 차례로 올라타서, 마부에게 나아간다. 이 때 꿈틀거리는 말 등에서 떨어지거나, 올라탈 때 말에 채면 진다.
24) 고누
고누는 땅에 고누의 도형을 그려 놓고 교대로 말을 놓아 상대편 말을 잡거나, 꼼짝 못 하도록 포위해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상대편의 말을 먼저 따 먹거나 많이 따 먹는 쪽이 이긴다.
25) 덕석몰이
여럿이 모였을 때 즐기는 놀이이다. 손에 손을 잡고 일렬로 늘어서서 돌다가 더 이상 돌 수 없을 때 반듯이 가다가, 한쪽 끝의 사람이 몸을 틀어 일행을 끌고 원을 그리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뒷사람도 거꾸로 몸을 돌려 원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 모양이 마치 덕석을 말았다 풀었다 하는 모양 같아서 덕석몰이라 한다.
26) 꼬리 따기 놀이
아이들이 두 패로 나뉘어 맞은편과 마주 보고 줄을 선다. 그런 뒤에 자기 편 앞 사람의 뒤춤을 꼭 잡아 준비가 되면, 두 패의 맨 앞사람이 상대편 맨 뒷사람을 잡는 놀이이다. 이 때 맨 앞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방해하여 맨 뒷사람이 잡히지 않도록 한다. 잡힌 편이 지게 되기 때문에 맨 뒤는 주로 발 빠른 사람이 맡는다.
27) 자치기 주로 사내아이들이 즐기는 놀이로, 50센티미터쯤 되는 막대기와 15센티미터쯤 되는 막대기가 필요하다. 놀이 방법은 땅을 약간 파고 작은 막대기를 비스듬히 누인 다음, 긴 막대기로 누인 막대의 한 끝을 쳐 솟아오르면, 힘껏 쳐서 날려 보낸다. 작은 막대기가 멀리 갈수록 점수가 높으며, 나아간 거리를 잴 때는 긴 막대기로 한 자, 두 자…….하며 센다. 솟아오른 작은 막대기를 못 치면 실격이다. 28) 땅뺏기 납작한 바둑돌이나, 사기그릇 깨어진 것을 다듬어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 땅에 놓고, 손톱으로 퉁겨서 땅을 빼앗아 가는 놀이이다. 퉁겼을 때에 한 뼘 이상 나아가면 무효이고, 한 뼘 안에 들면 제 땅에서 한 뼘을 재어 반원을 그려 땅을 늘려 나간다. 일정한 구역 안의 땅을 서로 다 차지해서 더 차지할 곳이 없으면 넓은 땅을 차지한 편이 이긴다. 29) 안경놀이 땅에 직경 1미터 정도의 원을 그리고, 그 둘레를 에워싼 큰 원을 그린다. 이렇게 똑같은 모양을 두 개 그린 뒤, 두 원사 이를 오갈 수 있는 길목을 만들고 편을 가른다. 한 쪽 작은 원 안에 있는 편이 길목을 거쳐 다른 쪽의 작은 원으로 빠져나가려 하면, 큰 원 안에 있는 편이 방해를 하는데, 이 때 붙잡히면 진다.
30) 딱지치기
주로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로 종이를 접어서 딱지를 만든다. 놀이 방법은 각자 딱지를 한 장씩 땅에 놓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딱지로 상대방의 딱지를 치거나 금을 그어 놓고 땅을 친다. 이 때 상대방의 딱지가 뒤집어지거나 금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 딱지를 따먹게 된다.
- [옛날마을]에 실린 자료입니다. -
어른들 놀이
1) 쌍륙
쌍륙은 주로 정초에 양반이나 기녀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장기판 크기의 판 위에 흑백 두 사람이 마주하고, 동서로 6행씩 12행의 줄을 치고, 각각 16개의 말을 몰아가며 논다. 16개의 말을 모두 한 쪽에 모으는 사람이 이기는데, 말을 2개 이상 이어야 안전하며, 6개 이상 한꺼번에 몰면 안 된다.
2) 투호
대궐의 궁녀나 양반집 아녀자들이 즐긴 놀이로, 5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아가리가 좁은 항아리 같은 것을 놓고, 여기에 화살이나 막대기를 던져 넣는다. 많이 넣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진사람 얼굴에는 검은 먹칠을 하였다.
3)장기
장기는 각각 16개의 말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하여 승부를 내는 놀이로, 고대 중국의 전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기판이나 말의 구조가 간단한데도 그 속에 무궁무진한 수가 들어 있어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따귀 맞아 가면서 훈수한다.'는 말이 있듯이, 장기는 두는 사람뿐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까지 즐겁게 한다.
4) 바둑
바둑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놀이 중의 하나이다. 19줄이 그어진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상수는 백을 잡고 하수는 흑을 잡는다. 교대로 바둑판 위에 집을 지어 나가면서, 상대방이 집을 짓지 못하도록 온갖 수를 쓴다. 집을 많이 지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장기처럼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5) 장치기
장치기는 길이 1미터쯤 되는 막대기로 솔방울이나 나무로 만든 공을 쳐서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편을 가르고, 양쪽 가에 금을 그어 구역을 정한 다음, 양쪽 금에서 한 가운데에 놓인 공을 서로 빼앗아, 자기편 선까지 몰아간다. 먼저 몰아간 편이 이기는데, 한 번에 승부를 내지 않고 여러 번 경기를 해 최종 승부를 결정한다.
6) 골패
골패는 놀이이자 그 기구를 말한다. 손가락만한 나무 바탕에 흰 뼈, 상아, 대나무 등을 붙여, 1~6까지 숫자를 위아래로 새겨 놓았다. 모두 32쪽이 한 벌인데, 놀이 방법이 복잡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고, 주로 기녀들이나 노름꾼들 사이에 전승되었다.
7) 투전
투전은 화투가 들어오기 전에는 가장 대중적인 놀이였다. 폭 1센티, 길이 15센티 정도의 질긴 종이에 숫자를 쓴 뒤 기름을 먹여, 50장을 만들어 논다. 숫자가 나올 때마다 숫자풀이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8) 윷놀이
한국의 수많은 놀이 중 음력 정월의 놀이의 하나인 윷놀이[擲柶戱]는 한국 고유의 독특한 놀이다. 윷놀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고, 설날의 情趣와 실내오락으로서 흥을 돋우는 데 윷놀이만한 게임이 없다고 본다. 이 놀이는 일반 賭博놀음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건전한 民衆娛樂으로서 한국사람 누구나의 기호에 가장 알맞은 것이다. 이것은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1) 윷놀이의 槪觀
① 윷의 종류
이 윷은 우리가 다 잘 알다시피 박달나무나 붉은 통싸리나무로 만든다. 윷에는「장작윷」[혹은 장윷ㆍ가락윷이라고 한다]과 「밤윷」[혹은 좀윷이라고 한다]의 두 종류가 있다. 장작윷은 전술한 나무 두 가지를 길이 4치, 두께 7∼8푼 가량 되게 쪼개어 네 개를 만든 것이다. 밤윷은 작은 밤알만 하게[길이 6푼, 두께 4푼 가량] 만든 것이다. 「장작윷」 혹은 「가락윷」이라 함은 그 모양이 장작의 축소형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밤윷은 밤알처럼 작아서 그렇게 부른다. 밤윷은 장작윷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인데, 종으로 쪼개어 4개를 1조로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주로 영남지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본다. 사용할 때에는 간장 종지 같은 것에 넣어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던지는데 손가락으로 그 종지 하반부를 쥐고 그 속에 든 밤윷만 땅바닥에 던진다.
또 이 밖에도 定式 윷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농민들 사이에 콩밭에서나 또는 팥밭에서 작업하다 점심시간이나 또는 잠시 쉬는 사이에 팥이나 콩 두 알을 가지고 그 절반씩을 쪼개어 흔들어서 땅바닥에 던져 노는 일이 더러 있다. 이러한 윷은 그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그것이 팥이면「팥윷」이라하고 콩이면「콩윷」이라 한다.
② 윷놀이하는 법
윷놀이란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다루는 놀이다. 그 노는 방법은 먼저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윷판[馬田]을 펴 놓고 2명 또는 3명[이 윷놀이는 대개 2,3명이 보통이지만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한다]이 서로 윷가락을 던져서 끗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선후 차례를 정한다. 그리고 윷말은 각자 또는 각 편이 네 개씩 가지고 사용한다. 게임은 정해진 선후에 따라 시작한다. 윷가락을 던져서 네 개가 다 엎어진 것은 모요 네 개가 다 잦혀진 것은 윷,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잦혀진 것은 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은 걸, 한 개가 잦혀지고 세 개가 엎어진 것은 도라고 한다.
그리고 윷말의 行馬를 보면 도는 한 발, 개는 두 발, 걸은 세 발, 윷은 네 발, 모는 다섯 발을 간다. 이와 같이 다섯이 각각 걸음이 다르다. 말 네 개가 모두 첫발[入口]인 도에서 출발하여 참먹이[出口]를 먼저 빠져 나가는 편이 이긴다. 윷말 쓰는 법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적어 보기로 한다.
윷말 한 마리를 「한 동」이라 하고 두 마리면 「두동」, 세 마리면「석동」, 네 마리면 「넉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나 윷이 나오면 한 번 더 할 수가 있으며 계속 나오면 계속할 수가 있다.
윷말은 윷가락을 던져서 그 수가 나타나는 데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가는 말[行馬]이 마지막 자리인 참먹이를 나오는 데는 그 길이 몇 가지가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코스를 살펴보자. 나는 말이 모에 오면 모도, 모개, 방혀[中央]로 나올 수가 있어 이 길은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러나 던진 윷가락이 개나 도가 나오면 모로 가서 앞밭으로 접어들어 빠른 길로 나갈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여 걸이나 윷이 나오면 나는 말은 뒷밭까지 치올라가서 뒷도 뒷개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올라간 말이 뒤여[꽃이]에 오게 되면 그 말은 그 안으로 뒷모도ㆍ 뒷모개로 내려와서 윷가락의 그 나오는 끗수에 따라 참먹이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뒷걸이나 뒷윷에 있던 말이 던진 윷가락의 끗수가 걸이나 윷이나 모가 나오면 이때는 부득이 찌도와 찌개의 가장 먼 코스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상대편 윷말 잡기에 대하여 몇 가지 적어 보기로 한다. 앞서 가는 상대편 말 자리에 이편 쪽 말이 뒤따라 가다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상대편의 말을 잡게 된다. 그리고 상여금으로 또 한 번 윷가락을 던질 수가 있다. 그러니 상대편의 잡힌 말은 애써 멀리까지 간 것이 헛수고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윷가락을 던져서 처음 말이 모 자리에 있는데 다음 차례에 또 모가 나오면 처음 것을 업고서 달린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뛰게 되므로 아주 유리한 입장에 서지만 뒤따르는 상대편 말이 이것을 잡게 되면 두 말이 한꺼번에 죽으므로 그 때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윷가락을 잘 던져서 모나 윷이 잘 나오게 하여 연달아 던지는 데도 승부에 영향이 있지만 말을 잘 쓰고 못 쓰는 데도 승패에 많은 영향이 있다.
윷놀이에 사용되는 윷밭[혹은 말밭ㆍ말판ㆍ윷판]의 이름을 적어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2) 도ㆍ개ㆍ걸ㆍ윷ㆍ모의 어의(語意)
윷놀이의 '놀이'는 동사 '놀다'의 어간 '놀'에 어미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른 보아서 알 수 있다. 또 '윷'이란 윷놀이에 있어서 끗수로는 네 끗이지만 그 뜻은 소[牛]를 가리킨 말이다. 그러면 먼저 윷놀이에 있어서 사용되는 윷가락 호칭에 대하여 구명해 보기로 한다. 윷가락 호칭은 일반적으로는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도ㆍ개ㆍ걸ㆍ윷ㆍ모는 본래가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즉,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그리고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脫落型)이며 지금은 일반이 돼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종돈(種豚)을 '씨돝'이라 부른다. 또 일부 고노(古老)들 사이에는 돼지고기를 '돝고기'라 부른다. 속담에도 산돼지 잡으려다 집안 돼지 놓친다는 말에 "멧돝 잡으려다가 집안돝 놓칠라"는 말을 흔히 사용함을 본다.
(3) 윷놀이의 세세풍속(歲時風俗)
설날에는 자연히 일가친척·친지 등 많은 사람이 집안에 모여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한다. 이 놀이를 할 때는 응원과 웃음소리가 떠들썩함을 본다. 조선조 때 류만공(柳晩恭)이 윷놀이 광경을 읊은 시가 있다.
고척단형사개장(高擲丹荊四介長) 상전경락향림랑(床前敬落響琳琅)
유수유진치(愈輸愈進癡) 절(絶) 질채성성홍일당(叱采聲聲哄一堂)
즉 윷놀이가 절정에 오른 분위기와 같이 쳐올린 장장 윷의 떨어지는 소리, 질수록 상대편은 더 기를 쓰고 대드는 모양, 그리고 손뼉과 고함소리에 집이 떠나갈 듯 하는 윷놀이 광경을 읊었다. 얼마나 즐겁고 흥겨운 민속놀이인가.
이 윷놀이를 보고 읊은 시는 고려 때 이색(李穡)의 시에서도 여러 수(首)를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각 지방의 구전민요도 적지 않음을 본다. 평안남도 강서(江西)지방의 민요 한 절(節)을 소개하겠다. 중이나 메나 뜩―
중은 중가, 메는 멘가
눈단산에 꽃이로다.
도야지 도야지
오래박죽 도야지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 지방 노래에 나타나는 방언(方言)이다. 이 강서지방 민요 중에 「중이나 메나 뜩―」하는 말은 윷가락을 던지는데 윷이 아니면 모가 나와 달라는 말이다. 중은 윷의 방언이니 의 ㅿ음(音)이 ㅇ음(音)인 윷으로도 변하였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ㅿ음(音)이 ㅈ음(音)으로도 변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모는 메라고도 함을 이로써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노랫말 속에 나오는 도야지 도야지는 말할 것도 없이 도를 가리킨 말이다.
그러면 서울지방의 것을 한 절(節)을 보기로 하자.
홑발산이 산 밑에 가고·
석동무니 막 돌아간다.
윷이야 삿치야 오금의 떡이냐,
동자 가사리 박실박실한다.
이 노래에 나오는「윷이야 삿치야」하는 윷은 표준말이요, 「석동무니 막 돌아간다」하는 석동무니는 말 셋이 한꺼번에 달리는 것을 말한다. 아무튼 이 노래들은 조금도 거짓과 꾸밈이 없는 실감나는 것들이다.
이 밖에도 윷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가 민요로서 각 지방에 있음을 보나 대부분이 윷놀이를 직접 내용으로 하지 않은 것이 많다. 안동지방에는 그 지방 유생들의 소작(所作)이라 전하는 모송(牟頌)·유송(流頌)·걸송(杰頌)·개송(開頌)·도송(徒頌)이라는 것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이는 실감이 나지 않는 노래로서 한문에 토(吐)를 단 것이다. 그리고 이규졍(李圭景)의 『오주(五洲) 문장전산고(文長箋散稿)』(권 10)에는 조선조 숙종 때 심익운9沈翼雲)이 지은 희경(戱經)이 있다고 하였으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설날에는 윷가락을 던져서 신수(身數)를 점치기도 하는데 그 하는 법은 이러하다. 먼저 윷가락을 세 번 던진다. 즉 첫 번째에도(1)가 나오고, 두 번째에 개(2)가 나오고, 세 번째에 걸(3)이 나왔으면 도·개·걸 도는 그 수(數)로서 1,2,3으로 점사(占辭)가 된다. 『주역(周易)』64괘(卦)로 작괴(作卦)하여 만든 점사(占辭)에 의하여 점을 친다.
윷가락을 던져서 새해의 길흉을 점치는 풍속에 대하여서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제석조(除夕條)에 세속(世俗)에 제야(除夜)와 원단(旦)에 윷을 던져서 괘(卦)를 보아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 그 점치는 법은 64괘(卦)로 나누어 각각 사(辭)가 있다. 대개 세 번을 던져 어린아이가 젖을 얻는 괘(卦), 쥐가 창고에 들어가는 괘(卦) 등이 나오면 吉하다. 혹은 세 번 던진 것 중에서 첫 번 던진 것은 묵은해를, 둘째 번은 새해 설날을, 세 번째에 던진 것은 정월 대보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윷가락을 연이어 던진 괘(卦)를 보아야 한다.
(4) 결론(結論)
한국 민속 오락(娛樂)의 하나인 윷놀이에 대하여 여러 장 여러 절에 나누어 구명해 보았거니와 그 결론으로서 다음 몇 가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① 종래 조선조 및 최근의 일부 학자 간에 윷놀이를 혼동 곡해(曲解)하여 이를 동일시해 왔으나 이 양자를 비교한 결과 전혀 다른 것이다.
② 윷놀이는 아무 때나 하는 일반 도희(賭戱)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건전한 민중오락으로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날가지 설날에만 하고는 그만두는 것이 관습상 상례로 되어 있다.
③ 윷놀이는 문헌상으로 보아서 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하였다.
④ 윷놀이는 8세기 경 이전에 신라에서 이웃나라인 日本에도 들어가 「ろつおきさし 」란 遊戱名으로 성행되었고, 그들의 歌集인 『萬葉集』에도 이 놀이를 읊은 노래가 있다.
⑤ 윷가락의 도·개·걸·윷·모는 그 모두가 우리의 생활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축 동물인 돼지·개·양·소·말의 이름이다. 그 끗수는 이들 짐승의 몸크기와 발의 속도로 이루어졌다.
⑥ 윷판의 29점(동그라미)은 樞星을 중심으로 한 28宿를 본떠 만들었다.
⑦ 윷판 29점(동그라미)은 조선조 宣祖 때 金文豹가 처음 창제하였다고 하나 그 이전 고려시대 문헌에 이것이 보이므로 그의 창제는 아니다. 다만 고려할 점이 있다면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 전래해 오던 것을 金文豹 시대에 와서 그가 처음 기록하였을 것이다.
⑧ 윷놀이는 戱具·戱法 그 명칭 등이 他國에 그 類例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한국 고유의 것이다.
⑨ 윷놀이의 本意는 농사와의 관계가 밀접하다.
⑩ 윷놀이는 한국 사람들의 心性에 맞는 室內娛樂으로서 설날의 情趣와 感興을 일으키는 데는 실로 이 윷놀이 외에는 없다.
⑪ 윷놀이는 우리나라 傳來 오락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이 자료는 고려대 민족연의 [한국민속대관]에 실린 글입니다.)
9) 그네뛰기
그네뛰기는 예로부터 단오절에 널리 행하던 민속놀이다. 그네뛰기는 남성놀이인 씨름과는 달리 여성들 사이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마을 어귀나 동네 마당의 큰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가지에 줄을 매고 하였다. 그네를 매기에 적당한 나무가 없을 때에는 넓은 마당에 긴 통나무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가로질러 묶은 통나무에 그네를 매었는데, 이를 '땅그네'라고 하였다. 그네뛰기는 4월 초파일 전후에 시작하여 오월 단오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네뛰기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므로, 재미와 함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네를 허공 높이 구르기 위해서는 온몸의 탄력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특히 팔 다리의 힘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그네뛰기를 통하여 팔다리의 힘을 기르고, 온몸의 순발력과 민첩성을 기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예쁘고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이 그네에 올라 하늘 높이 몸을 날려 오가는 모습은 새장에 갇혀있던 새가 풀려나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활기가 넘치면서도 아름답다. 단오에 그네뛰기 하던 모습을 민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수양청청 버들 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
(후렴)후여넝층 버들가지 저 가지를 툭툭 차자.
후여넝출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 매고
임과 나와 올려 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
한 번 굴러 잎이 솟고 두 번 굴러 뒷이 솟아
허공중층 높이 뜨니 청산녹수 얼른얼른.
어찌 보면 훨씬 멀고 얼른 보면 가까운 듯
올라갔다 내려온 양 신선선녀 하강일세.
난초 같은 고운 머리 금박댕기 너울너울
오이씨 같은 두 발길로 반공중에 노닌다.
요문갑사 다홍치마 자락 들어 꽃을 매고
초록적삼 반호장에 자색 고름도 너울너울.
이 민요에는 그네뛰기의 정경은 물론 그 멋과 흥취가 잘 드러나 있다. 민요를 이야기하다 보니,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니 구름 속에 나부낀다.……한 번 구르니 나무 끝이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아래라."고 노래한 가곡 [그네]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 노랫말에도 그네 뛰는 모습과 함께 그 멋과 흥취가 드러나는데, 예로부터 불러오던 민요의 내용과 통하는 점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경우, 그네뛰기는 북방 유목민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 문헌인 {형초세시기(荊礎歲時記)}에 "북방 민족이 한식날 그네뛰기를 하여 가볍고 날랜 몸가짐을 익혔다. 그 후 이것을 중국 여자들이 배웠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가지를 가로질러 맨 다음, 거기에 물감들인 줄을 매달고 선비와 부인들이 줄 위에 앉거나 서서 밀고 잡아당기며 놀았다. 이 놀이를 추천( 韆)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중국의 그네뛰기는 북방에서 시작되어 점차 남쪽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북방의 융적(戎狄, 북방에 사는 異民族)을 친 후부터 그들의 놀이인 그네뛰기가 중국에 전해져 청명절을 전후하여 성행하였다고 한다. 당 나라 현종은 이 날 궁정에 그네를 매고 궁녀들에게 그네뛰기를 하게 하였는데. 이 놀이를 '반선녀(半仙女) 놀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그네뛰기가 중국에서 전래한 것인지, 아니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은 고려 때부터 보인다. 중국 문헌 {송사(宋史)}에는 고려 현종 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곽원(郭元)이 "고려에는 단오일에 그네뛰기를 한다."고 하였다. 그네뛰기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은 {고려사(高麗史)}인데, "단오절에 최충헌이 그네뛰기를 백정동궁(栢井洞宮)에서 베풀고, 문무(文武) 4품 이상을 초청하여 연회하기를 사흘 동안 하였다."는 기록과 최이(崔怡)가 "5월에 여러 관원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할 때 그네를 매고 무늬 놓은 비단과 채색 꽃으로 꾸몄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우왕이 "거리를 순행하고, 수창궁으로 가서 그네뛰기를 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로 보아 고려 시대에는 그네뛰기가 널리 성행하였고, 매우 호사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쓰인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단오 날에 여염집 부녀자들 사이에 그네뛰기가 성행하였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항간에서는 단오절에 남자와 여자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고 하였다. {송경지(松京誌)}에는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여염집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들은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제주도에는 매년 8월 보름에 다른 놀이와 함께 그네뛰기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였다. {개성지(開城誌)}에는 "5월 5일에 여자들은 성장을 하고 경덕궁에 모여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만월대에 모여 씨름을 한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그네뛰기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네뛰기에는 한 사람이 뛰는 '외그네뛰기'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뛰는 '쌍그네 뛰기'가 있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누가 더 높이 오르는가를 겨루는데, 높이를 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네 앞 적당히 떨어진 곳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방울을 매단 다음, 그네가 앞으로 높이 솟아오를 때 장대에 매달린 방울을 발로 차서 방울을 울리는데, 정한 횟수를 오가면서 울리는 방울 소리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여 승부를 가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그네의 발판에 긴 줄자를 매달아 그네가 높이 올라갔을 때 그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그네뛰기 대회를 할 때에는 푸짐한 상품도 주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네뛰기는 20세기 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서울을 비롯하여 개성, 평양, 사리원, 수원, 남원, 김천 등에서는 대대적으로 행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에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국가가 총동원을 해야 하는 때에 그네뛰기와 같은 한가한 민속놀이를 할 수 없다 하여 이를 금하였다. 그래서 한 동안 널리 행해지지 않다가 8·15광복 후부터 다시 전국에서 이 놀이가 부활하였다. 서울에서는 남산과 장충단 공원, 사직공원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민간단체의 주관으로 크게 열렸다. 1956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82회 탄신 축하 기념행사로 창경궁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이 때 일반은 개인전을, 여자 중·고생은 단체전을 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최근에 와서는 다양한 운동경기와 여가 선용 방법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네뛰기는 전처럼 널리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주부클럽연합회에서 신사임당 기념행사의 하나로 1970년부터 매년 5월에 하는 그네뛰기 대회와 밀양의 '아랑제(阿娘祭)'와 남원의 '춘향제(春香祭)' 때에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정도이다.
그네는 지방에 따라 '근데, 군데, 근듸, 군듸, 근의, 군의, 구리'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추천( 韆)'이라고 한다. 고려 때 지어진 경기체가 [한림별곡]에는 "홍(紅)실로 홍(紅)글위 매요이다"라 하여 그네를 '글위'라 하였다. 그네를 조선 정조 때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재물보(才物譜)}에는 '근의'라 하였고, 숙종 때 신이행(愼以行)·김경준(金敬俊)이 지은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그릐'라 하였다. 고소설 {춘향전]에서는 "이애 향단아 근듸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다. 근듸줄 부뜰어라."라 하였다. 이로 보아 그네는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원래는 '근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그네는 '끈(繩)의 놀이(戱)'를 뜻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네뛰기는 단오에, [놋다리밟기]나 [강강술래]는 추석에 널리 행해온 여성의 민속놀이인데,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하던 조선 시대의 여성들도 이 날만은 자유롭게 외출하여 친구·친척·친지들과 함께 이들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곤 하였다. 그 중 그네뛰기는 녹음방초(綠陰芳草)가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여성들이 자연 속에서 하루를 즐기면서 체력단련도 할 수 있었으니, 민속적으로나 정서 함양·체력 단련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놀이이다. '그네를 뛰면 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으며 더위도 타지 않는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데, 이 말에는 그네뛰기를 하여 체력을 기르면, 여름을 탈 없이 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네뛰기를 전처럼 널리 행하여 우리의 전통적 민속놀이를 계승하면서 체력도 기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한국교원대학교 최운식교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