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면(泰仁面)은 정읍(井邑)의 낙지(樂地)1)
본(本) 면(面)은 이조초(李朝初)로부터 오백여년간(五百餘年間) 지방행정(地方行政)을 취급(取扱)하던 관아(官衙) 소재지(所在地)로서 인구(人口) 삼천여(三千餘)를 포옹(抱擁)한 번화지(繁華地)이다. 피향정(披香亭), 만화루(萬化樓), 청녕헌(淸寧軒), 남고서원(南皐書院)은 본(本) 면(面)의 고적(古蹟)이요 함벽루(涵碧樓), 읍원정(挹遠亭)은 본(本) 면(面)은의 명승이며 거산평야(居山平野)는 본(本) 면(面)의 곡창(穀倉)이다. 태인시장(泰仁市場)이 있어서 물화(物貨)의 취산(聚散)이 여기를 중심(中心)으로 하며 경목선(京木線, 서을에서 목포가는 1번 국도), 태갈선(泰葛線, 태인에서 임실군 갈담면 가는 길) 道路는 십자(十字)로 관통(貫通)하여 교통(交通)이 역시(亦是) 여기를 중심(中心)으로 한다. 관왕묘루에 참배(參拜)할 시(時)는 그 기상(氣像)의 웅호(雄豪)함을 경탄(驚歎, 驚嘆)하지 않을 수 없고 무극도교사(無極道敎舍)를 관람(觀覽)할 시(時)는 그 구조(構造)의 정교(精巧)함을 찬양(讚揚)치 않을 수 없다. 이상(以上)의 자랑은 본(本) 군(郡)에 한(限)할뿐 아니라 타(他) 지역(地域)에 보기(見) 드문 만큼 본(本) 낙지(樂地)군(郡)의 라 하겠다.2)
연 혁(沿 革)
본(本) 면(面)은 원태인군(元泰仁郡) 군청(郡廳) 소재지(所在地)로서 군내(郡內), 인곡(仁谷), 흥천(興天) 삼면(三面)에 분획(分劃)하였더니 1914년 3월 행정구역(行政區域) 변경(變更)에 의(衣)하여 태인면(泰仁面)이라 개칭(改稱)하였고 1935년 4월에 보림면 지역인 태남(泰南), 오류(五柳), 매계(梅溪), 태서(泰西), 사리(四里)를 병합(倂合)하여 금일(今日)에 이르렀다.3)
태인은 예로부터 산수(山水)가 좋을 뿐 아니라 선현(先賢)들의 유적(遺跡)이 많아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이를 찬미(讚美)하였으니 그 가운데 태인팔경(泰仁八景)은 다음과 같다.
일경(一景)은 사산록죽(寺山綠竹)이다.
사산(寺山, 恒加山의 서쪽 능선) 대나무 숲을 말하며 지금의 성황산(城隍山)을 옛날에는 죽사산(竹寺山)이라 일컬었다.
이경(二景)은 도리백로(島利白鷺)이다
도리(島利)는 「도리매」를 이름이니 도이미(道伊美)라고 표기한다. 산의 모양이 둥글다는 뜻으로 「도로매」원산(圓山)이라고도 한다. 「도리매」의 소나무에 백로가 앉는 모습을 말한다.
삼경(三景)은 대각어화(大脚漁火)이다.
대각교(大脚橋)가 있는 남천(南川)의 밤에 보는 고기잡이 불이니 옛날에는 특히 밤에 게(蟹)를 잡는 고기잡이 불이 장관(壯觀)이었다.
사경(四景)은 낙양낙조(洛陽落照)이다.
낙양리(洛陽里)는 태인읍(泰仁邑)의 서쪽이니 석양의 노을이 가관(可觀)이다.
오경(五景)은 피향연화(披香蓮花)이다.
피향정(披香亭)의 연꽃을 말하니 피향정은 본래(本來) 연못가에 세운 정자(亭子)이다.
육경(六景)은 비정귀운(飛亭歸雲)이다.
비정(飛亭)은 성황산 암대(岩坮)에 있었던 정자(亭子)이다.
칠경(七景)은 항가제월(恒伽霽月)이다.
항가산(恒伽山)의 월경(月景) 을 말한다.
팔경(八景)은 성황모종(城隍暮鍾)이다.
성황산(城隍山)의 암자(庵子)에서 울려오는 황혼(黃昏)의 종소리를 말한다.
---------------------------------------
1) 『내 고장 傳統文化』 (정읍군청 공보실, 1993. 11. 09), 384~392.
『泰仁鄕校誌』 (태인향교지편찬위원회, 1996. 12.),
『井邑 鄕里誌』 (정읍문화원, 2002. 12. 30.)
2)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137.
3) 張奉善, 앞의 책, 138.
'제5편 경제사회(삶의 틀) > 태인의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鄕) (0) | 2018.04.17 |
---|---|
태인면 거산리(居山里) (0) | 2018.03.27 |
태인면 고천리(高川里) (0) | 2018.03.27 |
태인면 궁사리(弓四里) (0) | 2018.03.27 |
태인면 낙양리(洛陽里) (0) | 201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