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생활(衣生活)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이라고 불린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옛날부터 흰옷을 입어왔다. 언제부터 흰 옷을 즐겨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지(魏志)나 수서(隋書) 등의 중국 고문헌에 흰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오랜 예부터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상복의 색깔은 흰색 계통이 으뜸이고 흑색을 제외하고는 젊은 여인이나 아이들은 진한 색옷을 입었고 중년 이후의 남녀도 옅은 색으로 입었으나 색의 교합은 피하고 순색을 입었다.
옷감은 무명베, 마포, 명주를 사용했으나 견직물은 서민들이 쉽게 입을 수 없는 옷감이었으며 모직물은 사용할 줄 몰랐다.
옷은 남녀 모두 상의와 하의가 따로 되어 있으며 남녀복의 모양이 저고리를 제외하고는 현저하게 다르며 비교적 넓고 길며 사대부 집에 따라서는 여자 옷의 의장이 약간 다르기도 하다. 특히 여인들의 옷은 철저하게 육체가 노출되지 않게 되어 있으며 하의는 가짓수가 많아 복잡하다.
결혼한 새색시들은 무명베 새폭 달아 중댓님치는 폭중의라는 것을 입고 그 위에 앞뒤가 퍼진 고쟁이(가래바지)를 입고 그 위에 단오를 입고 또 그 위에 속치마를 입고 마지막으로 치마를 입으니 다섯 가지를 껴입어 어린 신부는 변소에서 옷에 똥을 지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서민들은 앞뒤가 터진 가래바지 위에 치마하나 입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상의는 비교적 단순하게 입는데 속적삼 위에 저고리를 입었다. 저고리는 여름에도 반드시 솜을 조금이라도 넣어 지어 입었으며 옷을 매는데 단추는 없고 끈으로 매게 되어있다. 남복은 비교적 단순하여 일반적으로 상의는 저고리, 하의는 바지인데 외출을 할 때는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학문을 하는 선비는 행의 도포 등의 ‘큰옷’이란 것을 입었다.
결혼식에 입는 옷은 예복으로 신랑, 신부 모두 관복을 식전 때만 입는데 신부의 예복은 찬란하다. 원삼이라는 찬란하고 호화로운 큰옷을 입고 족두리라는 칠보화관을 머리위에 쓰고 식을 올린다. 상복은 그 양식이 매우 달라서 성인 남녀의 옷 모양이 크게 달라 복잡한 재단으로 되어 있다.
옷감은 반드시 마포를 사용하되 신분의 고하 구별이 없다. 머리 모양은 결혼 전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지만 결혼 후에는 판이하게 다르다. 남자는 머리를 올려서 두상에 상투를 틀고 이마에는 망건으로 태머리처럼 머리를 싸매고 집에서는 유건이나 정자관을 쓴다.
여자는 머리의 한 가운데를 양쪽으로 갈라 가르마를 타서 머리 뒤통수 밑에 낭자를 주먹만 하게 틀러 비녀를 꽂으며 모자는 쓰지 않으나 더러는 수건을 쓰는 경우가 있다. 신발은 짚으로 짚신을 삼아 신으며 짚이나 삼 등으로 미투리를 삼아신고 나무를 배 모양으로 파서 나막신을 만들어 신기도 하나 부유한 사람은 가죽이나 베로 신발을 만들어 신기도 하는데 가격이 비싸서 서민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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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 傳統文化』 (정읍군청 공보실, 1983. 11. 9.), 30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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