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생활(住生活)
생활의 보금자리인 가옥은 생활의 종류에 따라 일자리 부근에 짓고 살았으며 농촌, 어촌, 산촌 등의 가옥이 있다. 가옥의 건축은 목재와 흙을 주재료로 하여 지었으며 지붕은 짚으로 나래를 엮어 덮었다. 대체로 집을 낫게 짓고 벽은 두꺼우며 채광과 통풍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함이며 방바닥은 방짝이라는 넓적한 돌로 구들장을 깔아 흙으로 바른 온돌로 되어 있어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밥도 짓고 방도 따뜻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변소는 안변소와 사랑변소가 각기 있고 생활이 부유하고 가족 수가 많거나 이름 있는 사대부 집이나 벼슬아치 그 후예들의 집은 사랑채와 안채를 구별하여 짓고 그에 따른 부속 건물로 남자 종이나 머슴들이 거처하는 바깥행랑채 여자종들이 거처하는 안 행랑채 곳간 사당 문간채 등의 다양하고 호화로운 건물을 짓고 남녀, 신분과 계층의 거처공간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기거를 하는 방은 앉아서 생활하게 되어 있으며 침실이며 식당이며 책을 읽는 서재까지 겸하여 집안운영의 중심공간이다. 그래서 의복을 넣는 장롱, 시렁 위에는 침구, 아랫목에는 횃대에 일장, 의복, 수건 등을 걸어 놓고 재봉용구며 생활용구가 놓일 자리에 정리된다.
남자 전용의 사랑방이 있는 집은 학식에 따라 다르지만 문방사우를 비롯하여 문갑, 서장, 장기, 바둑판 등이 구비되어 학문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중요한 사교장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생활주거지는 가급적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울타리나 담장으로 둘러치고 외부의 규시를 막았으며 문은 그 집의 구조를 고려하여 냈으나 대체로 남쪽으로 냈으며 동이나 서쪽으로도 내나 북쪽에 대문을 내는 일은 없었다. 부자집은 대문을 달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곧장 중문을 통하여 사랑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기도 했으나 일반 서민은 대나 억새를 마주 틀어 만든 사립문을 외짝으로 만들어 달았으나 많은 집들이 대문 없이 살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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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 傳統文化』 (정읍군청 공보실, 1983. 11. 9.), 3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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