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면 박산리(朴山里)
두마을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용호천이 흐른다. 북쪽에 저수지가 있다.
본래(本來)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지역으로서 박처럼 생간 산이 있으므로 박메 또는 박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박 산(朴山, 속칭박매)이란 이름은 박동마을의 뒤둥성이를 말하기도 한다. 등성이를 중심으로 동쪽을 박동(朴東), 서쪽을 박서(朴西)라 칭하니 등성이를 박산(朴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곡면(仁谷面)의 구정리(九井里), 박동리(朴東里), 박서리(朴西里), 흥천면(興天面)의 궁사리(弓四里) 일부(一部)와 군내면(郡內面) 원동(元洞), 천오리(川五里), 여속리(餘粟里) 각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중심마을 박매(朴山)의 이름을 따서 박산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박산리(朴山里)는 박동리(朴東里), 박서리(朴西里), 여속리(餘粟里), 갈마리(渴馬里)로 되어있다.1)현재의 분리는 박동(朴東)마을, 박서(朴西)마을, 여속(餘粟)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특산물로는 사과가 있다.
인구현황 | ||||
기준 |
호수(戶數) |
남자 |
여자 |
계 |
1972.12. 31. |
141 |
459 |
434 |
893 |
가. 지명 소개
갈마지(渴馬池) - 갈마실 동네 앞(남쪽)에 있는 방죽, 넓이 2,000평.
노장배미 – 중새터모랭이 밑에 있는 논.
독선거리 – 독선거리다리를 지나 북쪽으로 가는 길. 정자나무 밑에 비석 등이 있음.
독선거리다리 – 박메 남서쪽에 있는 다리.
독선거리 정자나무 - 독선거리에 있는 4~5아름되는 느티나무.
돛단모랭이 – 박동 남쪽에서 증산리로 돌아가는 모롱이
땀때기새암 – 젖새암 위에 있는 샘. 물이 매우 차서 땀띠에 매우 좋다 함.
말무덤 - 중새터모랭이 서쪽에 있는 큰 무덤 터.
매봉재 - 온수산 서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음.
바우배기 – 박동 동쪽에 있는 마을.
박동제(朴東堤) – 통안 방죽
박메골 - 박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박산공동묘지 - 박메 북쪽에 있는 묘지.
부술리독다리 - 박묘 서쪽에 있는 다리. 전에 부셨다가 다시 만들었음.
부아짓들 - 황구렁이뜸 아래 있는 들.
부처배미 – 박메 남쪽에 있는 논. 부채를 펼쳐 놓은 것처럼 생겼음.
사못들 - 박서 서쪽에 있는 들.
서낭댕이 - 박메 뒤 북쪽에 있는 당.
서냇골 – 여속 동쪽에 있는 논. 노서하전혈(老鼠下田穴)이 있다함.
송쉰내구름다리 – 박동 앞에 있는 다리의 터. 송씨의 전담 아래와 위를 연결하던 다리이었음.
쉰질방죽 - 용구비라고도 함. 박메 남서쪽에 있는 방죽(못). 깊이가 쉰 길이나 된다 함. 전설에 용이 살았던 곳이라 함.
안텃골탑 - 탑골 안쪽에 있는 탑.
애숫골 - 방메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여동지(餘東池) - 여속 남쪽에 있는 방죽, 넓이 4,000평. 전에 남생이가 살았다 함.
여산뫼고개 – 여속 동쪽에서 박메로 넘어가는 고개. 전 여산 군수의 묘가 있음. 여수(여우)형국이라함.
온수산(溫水山) - 박메 동쪽 증산리와 경계에 있는 산. 온수가 나던 샘이 있었다함.
용상골 – 매봉재 아래에 있는 골짜기.
운계정(雲溪亭) - 황구렁이뜸 옆에 있는 정자.
장구배미 – 부채배미 위에 있는 논.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음.
젓새암 - 박메 동북쪽에 있는 샘. 모양이 젖처럼 생겼다함. 젖이 부족한 아낙네들이 와서 정성을 드린다 함.
중새터모랭이(모롱이) - 박메 서쪽에서 신태인읍 쪽으로 가는 모랭이. 전에 있었던 새터를 지나감.
탑골 - 박메 북쪽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음.
통안방죽(朴東堤) - 박동 동북쪽에 있는 방죽, 넓이 4,000평. 통같이 둥글게 생겼음.
틈안들 - 여속 동쪽에 있는 들.
황구렁이뜸(黃雲堤) - 황구렁이뚱이라고도 하며, 박동 남쪽에 있는 방죽. 전에 큰 황구렁이가 살았다 함.
나. 마을 소개
(1) 박동(朴東) 마을
박동마을은 박메(朴山)를 동서(東西)로 가른 것으로, 이 마을의 동(東)쪽을 이루는 마을이며, 자세히 이른다면 마을 뒤 등성이를 중심으로 그 동쪽을 박동마을 이라한다.
「온수산(溫水山)」은 박메 동쪽과 증산리와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박메골」은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돛단모탱이」는 마을 남쪽에서 증산리로 돌아가는 모퉁이며, 「박동제」(朴東堤)는 이 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방죽으로 넓이가 4000평이고, 「송쉰내구름다리」는 이 마을 앞에 있는 다리터이다.
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5km 지점으로 순농사를 하며 가구수는 35가구, 세대수는 38세대, 인구는 108명(남자-50, 여자-58), 경지면적은 44.2ha(밭-9.8, 논-34.4)이다.(2002년 12월 30일 기준)
(2) 박서(朴西) 마을
박서마을은 박메 서쪽을 이루는 마을로, 마을 어귀에 있는 귀록나무 아래에 암행어사비(暗行御史碑), 군수비(郡守碑), 현감비(縣監碑)가 있다.
마을 주변에 돌다리가 3개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으며, 그 길은 전라도 감영(監營)으로 가는 그때의 국도(國道)였다 한다.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마을이 이루어 지기 전에 박씨(朴氏)의 묘(墓)가 있었다한다, 그 뒤 양씨(梁氏)가 왔고, 그 후에 안동김씨(金氏)가 들어 왔으며, 그리고 송씨(宋氏)가 왔고, 다음으로 김해김씨(金氏)가 들어와서 이 박서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5km 지점으로 순농사를 하며 가구수는 34가구, 세대수는 35세대, 인구는 118명(남자-55, 여자-63), 경지면적은 45.7ha(밭-8.6, 논-37.1)이다.(2002년 12월 30일 기준)
(3) 여속(餘粟) 마을
여속마을은 유래를 분명히 말할 수 없으나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서숙(조)을 많이 경작하여 먹고 남아(餘)있다고 하여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라 한다. 이 마을은 박서 북쪽에 있으며, 모든 생산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모든 것이 풍족한 마을이고, 마을 동편에「두가오뜸」이 근대(近代)에 와서 형성 되었다 한다.
갈마실(渴馬實)은 여속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말을 타고 가던 길손이 내려 놀면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전설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안에 아홉 개의 샘이 있었다한여 구정리(九井里)라고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정(九井)은 구정(舊政)에서 유래한 것으로 옛날에 정사(政事)를 보던 곳이라고 하였다.
현재 갈마실(渴馬谷)이라 일컫고 있으니 풍수설의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 : 말이 목이 말라 마시고 있는 형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촌로들은 말하고 있다.
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6km 지점으로 순농사를 하며 가구수는 48가구, 세대수는 51세대, 인구는 169명(남자-79, 여자-90), 경지면적은 45.4ha(밭-2.0, 논-43.4)이다.(2002년 12월 30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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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139.
2) 최현식편, 『增補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74. 3.),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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