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구비전승(삶의 이야기)/설화(說話)

삼정승 육판서 명당

증보 태인지 2018. 3. 29. 15:59

삼정승 육판서 명당

 

 

[태인면 설화 32]

옛날에 한놈이 사십 살 먹드락까지 장가도 못 가고 모친 하나 데리꼬 사는디, 해필 모친이 섣달 그믐날 저녁으 죽어 번졌은게 어찌게 혀.

명절 쇤다고 그 이튿날 설 명절 쇤다고 모다 장만도 허고 지사 지낼 사람들이 누가 가서 섣달 그믐날 눈은 장설로 쌓였는디 파묻을 것이냐 말여.

근게 자기 자신의 혼차 대발을 엮어서 짊어지고 나슬라고 헌게 그 총중으도 친구가 있든가 와서는,

야 이사람아! 자네 지고 가서 씨겄는가.

자네 빗자루로 눈을 씰어야 쓸틴게 묘를 빗자리허고 연장하고만 들고 오소.

내가 지고 감세.”

어느 공동산 인자 공동산을 찾어갈라고 가는디 가서 보닌게 거그는 눈이 좀 녹았어.

눈이 장설로 쌓였는디 눈 쓸일 생각히서 빗자루 갖고 왔는
디 찐들찐들 허니 땅이 씨거머니.

근게 거그다 인자 묘를 인자 쓸라고 파.

파는디 아 박상의가 거그를 마침내 당도히갖고 보닌게 삼정승 육판서 날 자리를 어떤 놈이 파고 있거든.

마침 이 아 깜짝 놀라서 근디 박상의씨가 욕심이 많힜던게벼.

누구를 멫만냥 받아먹고 주얄 참인디 멫만냥 줄 리가 없어.

대신가집이서 누구를 주꼬 시방 연구를 허고 있는디, 아 삼정승 육, 그 미룬차에 삼정승 육판서 날 자리를 딱 파고 있은게 아이 걍 겁이 바짝 나서,

왠 사람들이냐?”.

나 울어머니 죽어서 여그다 파묻을라고 그런다.”.

아 보아허니 넉넉지도 생활이 못헌갑만 나 저쪽으 좋은 디 갖다가 일러줄틴게 거그다 안장을 허라고.

여 이런 디다 모셔서 씨겄냐?”고 허논게,

당신은 좋은 말씀이오.

좋은 말씀이오마는 내가 마흔살 먹드락까지 장가도 못가고 이적지 머심 살었소.

근디 우리 어머니가 해필 섣달 그믐날 돌아가셔야 허요.

근게 고맙소마는 헐 수 있소?

놔두고 당신을 일 이나 보쇼.”

근게, 박상의가 헐 말이 없네 걍.

이놈이,

아 그러냐?”, 어쩌고 일러돌라고 어찌고 이리야 헌단 말이지.

그냥 마당이 끊어번진게 헐 말이 없어.

박상의가 가만히 생각헌게 청관 일어난 일이라 베려 번졌어.

판금정이 틀렸어.

근디 둘이 양쪽으서 대발쌈을 들어서 이렇게 너 보닌게 이놈이 짤롭거든.

짤룬게,

드러내 놓고 다시 더 파세.”

야 이 사람아! 언지 그러겄는가 이 귀역세를 놓소.”

귀역세로 놓은 놈이 더 질거든.

이리 논게 제 구덩이 딱 맞게 들어간단 말여.

'아 하 그런구나' 그러고 인자 집이 돌아와서 설을 쇰서는 아 그 멫 만냥 받어먹고 그 일러줄 자린디 걍 껄적지근허니 죽겄단 말여.

이런
찰라 인자 박상의는 그러고 가번졌고 이이는 그 옛날부터서 그 머심 세경을 정월 보름날 작정허더만.

정월 보름날 작정 세경을 작정허는디,

인자 너는 넉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했은게 내한티서 한 이태 더 고상히 갖고 장가도 가고 히얄 것 아니냐?

게 올해는 내가 얼매를 더 주마.”

나는 머심 그만 산다고, 이적지 산 것이 우리 어머니 땀시 머심을 살었지 글 안히먼 나 벌써 머심을 안 살 사람이라.”.

그럼 뭣히먹고 살라냐?”

! 나 허고 싶은 대로 그저 지내볼란다.”.

근게 머심 안 산다는디 어거지로 맽길 수가 없어.

그 인자 적어매 인자 그 가는 질목으다가 옛날은 부모가 죽으믄 삼년 시묘를 살었다거든.

묘 곁이다 오도막을 쳐 놓고 그러믄 못허나마 움막을 가는 질쪽으다 쳐놓고서는 거그서 인자 신을 삼어서는 팔어서 생명유지를 혀.

근디 이놈으 신을 삼어갖고 돌란 대로 임자가 불거치가라.

많이 삼어 갖고 가던지 쬐께 삼어갖고 가던지 근게 글로 걍 홍길재 헐만 혀.

넉넉혀.

이렇게 지내는디 하루 어느 날은 걍 아즉부터서 비가 쏟아지는디 비가 주루루 쏟아진게 뭐 촌부를 못가릴 정도라.

아 근디 웬 부인 하나가 거그 당도히서 식전에 해장길을 걷다가 비를 만났던가 아 '개믄 인자 가지요' 허고는 짚시랑 밑이가 섰는디 점드락 오네, 저녁으 캄캄허드락 이놈으 비가.

점심도 굶었지, 아 오뉴월에도 그 비온 때 거식헌다치먼 춘기가 들쟎여.

근디 아 점드락 그 걍 짚시랑 밑이 그러고 점심도 굶고 있으니 떨릴건 사실이지.[청중그러고 말고.]

근게 그 총각이 인자 양석을 가지고 저녁밥 히먹을라고 가지고 나오거든.

나온게로 떡허니 불을 땔라고 인자 허는 판에 그 여자가 남자를 생각히서 불 때 준다고 헌게 아여.

우선 춘게 우환 좀 면헐라고,

내가 불을 때 줄턴게 방으 들으가쇼.”

아 당신이 때서 쓰거라오.”

방으 들어갔단 말여.

인자 총각은 인자 밥을 인자 히서 근게 인자 깜깜
히졌지.

인자 오도가도 못허게 되아버맀어.

밥을 이렇게 담아서는 수북수북 그저는 요새는 평지밥 담지만 그때는 일꾼들 밥이라고 이렇게 고봉밥 담거든.

고봉으로 담어서 인자 게 주고 쪼금 남은 놈 주먹 긁은 것까지 [테이프 교환] 인자 나머지 근께 인자 사발이다 갓이다 인자 붙여서 딜이 논게 아 이 멍청한 놈이 꼭 나 만치나 무식허던가 밥 좀 먹어봐라 소리없이 그놈 걍 혼자 집어 생키네 그려.

하이 한 술만 먹으락히도 살겄는디, 여자 맘에.

아이 초면에 밥 좀 주쇼 소리도 못허고 이러고 있는 찰라 얼마끔 먹더니 어느 정도 냉김서 밥을 냉김서,

아 왜 다 잡수지 냉기오?”

당신도 좀 잡수야 안허겄소.”

앗다 그저는 반가워서 그놈을 걍 개눈 감추듯이 후닥딱 먹고 있는디 저녁으 가루담배 턱턱 떨더니 대통이다 꼬작꼬작 가래침 묻혀서 쟁이갖고는 불무담배를 쭉쭉 태더니 간다고 나서거든.

아이 어디로 가실락허요?”

나 저 안동네 사랑방으가 자고 올트니 여기 혼자 주무시요.”

아 여보쇼 쥔없는 집이서 내가 어떻게 객이 잔단 말이요.

그러지 마시고 당신은 쥔양반인게 아랫묵으서 자고 나는 객인게 웃목으서 자고 아 이렇게 자믄 되지 뭣 상관 있소?

잡시다.”

인자 거그서 인자 자게 되아.

같이 자고 인자 아즉밥도 여자가 히서 인자 밥을 인자 주고.

아 근디 그때까장도 이놈으 비가 안개고 주룩주룩 막 쏟아지네.

게 헐 수 없이 여자가.

보아하니 장개를 안가신 모냉이구려.”

장개 안갔다.”.

그믄 나허고 예 지내서 삽시다.”

여자가 청을 힜어.

간청을 힜어.

이런 디서 어떻게 사시겄냐?”.

그건 걱정마시고 나허고 삽시다.”


찬물만 떠놓고 예 지낸단 소리가 거그서 두고 난 말여.

소반 갖다 놓고 찬물 한그릇 소반 가운데다 놓고는 집이 어찌게 얕찹던지 일어나도 못허고 앉어서 양쪽으서 맞절을 힜어.

허고 인자 예식을 지내고서는 인자 그때보톰 내오간 삼어서 지내는디 여자가 하루는 그러거든.

좌우간 오늘 보톰은 신을 고만 삼으시오.”

신을 안 삼는다치머는 우리는 굶는다.”.

게 그 총각말이 그러니게.

걱정 말고.”

돈 얼매를 빼줌서.

이놈 갖고 가서 쌀 얼매치만 팔어갖고 오쇼.

반찬 좀 사갖고 오쇼.”

연식 그 다음 나중으는 뭐락헌고니는.

아 어디 그 논이라도 들뜨기 하나 깨끔헌 놈 있으믄 하나 살 연구를 허라.”.

뭔 돈갖고 사약?”

돈은 걱정 말고 좌우간 어디 나먼 흥정을 허라.”.

근게 부자 하나가 생길라먼 소소안통 삼십리 안통 부자가 다 망헌다는 것여.

그 안동네 어디 가서 큰 부자 하나가 한 이삼백석 받는 양 부자 하나가 들뜨기를 걍 팔고 한양으로 간다고 내놨던 모냥여.

그놈을 인자 흥정히서 사는디, 이 보퉁이 여자가 이고 온 것이 그것이 뭣이냐 허먼은 전부 금덩어리 금싸래기던게벼.

걍 그놈 팔어가지고서는 아 인자 집을 사서 술을 멫 섬을 허고 열두 동네 사람들 굿물을 다 불러가지고 걍 이사가먼 이사굿치쟎어.

굿을 낙신허니 치고 그러는디 그리서부터서 태기 있어 가지고 난 것이 아들을 났단 말여, 다행히도.

아들 나서 이놈 독서당을 써서 갈치는디 재주가 있어.

재주가 있은게 열 다섯 살 먹어서는 적어머니가 편지를 만리장성을 써서 그 춘향전이다 어디 본다치믄 그 어사또 보퉁이 하나 짊어지딧기 그도 똘똘 말아서 짊어져 줌서, 짚신 꽁무니다 그전이는 짚신 배끼 없은게 달어 줌서,


네 한양 가서 아무개 정승댁을 찾어가서 이걸 전허고 오니라.”

그러고 주었단 말여.

그 인자 이놈이 한양을 참 메칠을 걸어갔던지 걸어가갖고 그 참 글은 배왔겄다 문패를 본게 그 정승집이 맞거든.

그리서 인자 어정어정 점드락 히야 왔다 갔다 허도 누가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

해가 설풋했는디 그집 하인이 들락날락 허다 본게 아 저 어린애가 아즉때 보톰 와서 있는디 지금까지 있단 말여.

날이 저물어지드락 게 정승한티 고를 힜어.

고를 헌게 정승이,

이리 들어오락 히라.

너 무슨 연유로?”

예 이게 아무개 정승댁이십니껴?”

음 그렇다.”

뭔 펜지를 전하락 해서 왔읍니다.”

편지는 누가 전허락 했냐?”

예 우리 모친께서 전허락 힜읍니다.”

게 편지를 내놔라.”

아 내놓고 본게 자기 딸이네.

딸 펜지여.

그러믄 그전에는 그렇게 재상가 집이서 상부를 당헌다치먼 무조건 걍 생전 먹고 살 걸 주어 쫓아 내보낸다드만.

쫓아내고나믄 요새는 맞선보고 뭐 서로 개리고 허지만은 그전 처음에 앵기는 게 임자여, 남자가 병신이 되얐든지 뭣이 되았던지 처음에 앵긴게 임자라.

근디 그이허고 삼서 아들난 것이 벌써 열 다섯 살 먹었다고 말여.

그놈이 일취월장이나 히갖고 그놈기다 편지를 썼어.

어 정승 내외간이 앉아서 딸자식 하나 있는 것이 그 모냥 되아뻔져 죽은지 산지를 몰라, 십오년 동안을.

게 두 내오 앉어서 헐 말도 없고 서로 맞쳐다 볼 필요없고 문살만 심서 참 인자 생각나는게 딸 생각 빼끼라.

아 이러던 찰라에 그것 들왔으나 그 편지가 왔으니 오직 반갑겄냐 이말여.

근게 나라이로 상소를 힜어.

걍 나라로 상소를 딱허니 인자 허닌게 기양 그 그 정승이 나이 연만헌게 그 정승 후임으로 그놈을 걍 말암정승을 시기버맀어.

저 그 외하나씨 대신.

그런디 그런 도중,


아 당신은 선산도 없소?”

내가 선산이 나는 없는 사람이라고.”

아 여보쇼.

어매 아버지 뫼는 알 것 아뇨?”

아버지 뫼는 일찍 돌아가셔서 몰르고 어머니 묘는 안다.”.

거 어머니 뫼 성묘를 한번 가보자.”

가서 본게 아 눈속으서 긁어 뫼아논 것인데 애장살이 만게 요만헐 것 아녀.

에이 여보쇼.

부모 묘를 이렇게 놔두먼 쓰겄오.

사초를 헙시다.

참 날을 받어갖고 사초를 허는디 하이간 한 한 동네 열명씩 그저 열동네만 얻으쇼.”

근게 한 백명 안 뫼았다고?

뫼아서 사초를 헐락헐 때 술도 멧 섬허고 그때 박상의가 거그를 당도힜어.

박상의가 또 당도힜는디 당도힜는디 아 이거 벌써 운 돌아왔구나.

근게 걍 수백명이 걍 한 백명이지만 수백명같이 빈게 얼싸얼싸 걍 이러고 저러고 걍 술이 양 뭐 얼매가 썩어 나자빠지고 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흥창흥창허는 사람도 있고 이러는디, 박상의가 그저는 가만히 본게 허는 태도가 분명히 저게 생인이란 말여.

생인인디 그놈이 삼정승 육판서 날 관상이드래아, 그놈이.

'하하 땡이 네 땡이었었고나.' 인자 그제사 땡이 네 땡이었었고나 박상의가 짐작이 가서는 좌오지간에 이 봉축지어 놓고 그 복문만 잘못 나가도 안된다거든.

이걸 잘못노먼 내가 그것이나 놔주고 가지 허고 인자 연구허고 있는디, 아 이놈으 걍 어떻게 지관이 많은가 작대기 푼 사람이 요렇게 허믄 씨겄다고, 아 허더니 한놈 주장대로 그대로 걍 인대를 시기는디 아 뒤여서 가만히 가만히 쇠를 빼서 이렇게 보닌게 아 복문한질라 제대로 닥 놔번지드래여.

걍 뭐 쇠뺄 것도 없이 게 자기땡이라.

근게 명당을 구허지도 안 헐일이고 너이 구헐 일도 아니고 자기땡이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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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김경렬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1985-04-16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