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성씨와 인물(삶의 주체)/태인의 성씨

세거성씨(世擧姓氏)와 세거연원

증보 태인지 2018. 4. 6. 15:20

세거성씨(世擧姓氏)1)

 

 

  

   1. 1750년대의 세거성씨(世居姓氏)2)

 

      宋氏 - 본관은 인의(仁義)이다.

      趙氏 - 본관은 인의(仁義)이다.

      庾氏 - 본관은 인의(仁義)이다.

      宗氏 - 본관은 인의(仁義)이다. 

      葉氏 - 본관은 인의(仁義)이다.

      安氏 - 본관은 태산(泰山)이다.

      許氏 - 본관은 태산(泰山)이다.

      李氏 - 본관은 고부(古阜)이다.

      景氏 - 본관은 능향(綾鄕)이다.

      柴氏 - 본관은 능향(綾鄕)이다.

      朴氏 - 본관은 능향(綾鄕)이다.

      景氏 - 본관은 나향(羅鄕)이다.

      全氏 - 본관은 대곡(大谷)이다.

      李氏 -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金氏 - 본관은 도강(道康)이다.

      -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氏 - 본관은 안동(安)이다.

      趙氏 - 본관은 김제(金堤)이다.

      閔氏 -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洪氏 -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丁氏 -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氏 - 본관은 전주(全)이다.

      殷氏 - 본관은 고부(古阜)이다.

      氏 - 본관은 탐진(耽)이다.

      氏 - 본관은 덕수(德)이다.

      氏 - 본관은 부안(扶)이다.

      氏 - 본관은 청도(淸)이다.

      金氏 - 본관은 사천(泗川)이다.

      金氏 -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氏 - 본관은 광산(光)이다.

 

   2. 1940년대의 주요 거주성씨(居住姓氏)

 

      태인현(泰山)

         토성(土姓) - 朴氏, 柴氏, 許氏, 田氏, 景氏

 

      태인현(仁義)

         토성(土姓) - 庾氏, 宋, 趙氏, 宗氏, 葉氏

         내접성(來接姓) - 安(京), 許(泰山), 李氏(古阜)

 

   3. 1950년대 세거성씨(世居姓氏)

 

      본현(本縣) - 朴氏, 柴氏, 許氏, 田氏, 景氏

      인의(仁義) - 庾氏, 宋, 趙氏, 宗氏, 葉氏

                      安氏(京), 許(泰山), 李氏(古阜에서 왔다. 이 세성은 붙인 성이라 한다.)

      능향(綾鄕) - 景氏, 許氏, 朴氏

      나향(羅鄕) - 慶氏

      대곡(大谷) - 全氏

 

 

   4. 성씨별 세거연원    

 

        氏 - 김구(金坵)의 6대손인 김세영(金世英)의 자손일부는 20세 김필은(金弼殷)의 대를 전후하여 부안에서 태인으로 옮겨 정착했다.

        泗川金氏 - 5세손 김형서(金荊瑞)의 일부 후손들이 태인에 세거했다.

        氏 - 김형석(金衡石)은 고부(古阜)에 터를 잡았고 후손 일부는 태인으로 옮겼다.

        達城·大丘 徐氏 - 소윤공파(小尹公派)9세손인 서미정(徐彌情)의 후손은 21세 서유운(徐有雲) 이래로 정읍에 세거(世居)했고,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14세 서영(徐泳)의 후손도 15세 이래로 정읍의 태인에 세거했다. 만소공파(晩少公派)19세 서명완(徐命完)의 대 이래로 태인에 세거했다.

        咸陽呂氏 - 13세 여충보(呂忠輔)의 후손은 17세 여태원(呂泰元)여응빈(呂應賓)의 대 이래 정읍의 태인에 세거했다.

        東萊鄭氏 - 12세 정규(鄭規)의 후손은 13세 정길상(吉祥) 이래 정읍의 태인에 세거했다.       

        泰仁許氏 - 12세 허경(許慶) 이래로 정읍의 태인에 세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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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洪斗杓新韓國 鄕土의 발전 人物의 고향 - 南韓篇(中央日報社, 1992. 12. 15),  2199~2200.

2) 변주승(),여지도서(輿地圖書)46 전라도 (디자인 흐름, 2009. 5. 1.), 100101.

 여지도서1757(영조 33)부터 1766(영조 41) 사이에 편찬된 전국지리서로서 채색지도가 포함된 필사본이다. 조선 전기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은 조선 후기 인문지리서의 모범으로, 조선 후기 역사 연구에 기초가 되는 자료이며 전통문화 이해의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郡縣 邑誌 295, 營誌 17, 鎭誌 1개 등 모두 313개 지리지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 일부 고을은 읍 지가 누락돼 있는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책으로 축소, 영인 간행하면서 누락된 읍지 39, 영지 6개의 지리지를 보유편으로 추가했다. 원본은 한국 교회사 연구소에 보관돼 있다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