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최씨(泰仁 崔氏)
태인(泰仁) 최씨(崔氏)의 시조(始祖)는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고, 태산(太山)으로 낙향(落鄕)하여 동인지교(東人之交)를 편수한 최 해(崔 瀣)의 6세손 최용전(崔勇田)이다.
용전은 조선(朝鮮) 연산군(燕山君)조에 예빈사판사(禮賓寺判事)에 올라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환향(還鄕)한 후 1530년(중종 25) 안릉(安陵)으로 이주(移住), 정착(定着) 세거(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휘(諱) 용전(勇田)의 고향인 태인(泰仁)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계대(繼代)를 알 수 없는 최인길(崔仁吉)을 시조(始祖)로 기록하고 있으나 문헌이 실전(失傳)되어 정확히 상고(詳考)할 수 없다.
가문(家門)의 대표적인 인물은 효종(孝宗) 때 참봉(參奉)을 역임하였고 태인(泰仁)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된 서림(瑞琳)이 유명하고, 용전(勇田)의 손자 효근(孝根)은 호군(護軍)을 지내 당대에 뛰어났다.
제학(提學)을 지낸 흡(洽)은 효근의 증손으로 참봉(參奉)을 역임한 아들 덕연(德淵)과 함께 가문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 외 제방(濟邦: 참봉)․제국(濟國: 참봉)․제읍(濟邑)․제벽(濟辟) 4형제는 덕연의 아들로 각 일파(一派)로 분파(分派)되었고, 후손에서 정규(廷珪)가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정민(正敏)은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부호군(副護軍)에 오른 상우, 참봉(參奉)을 역임한 영희(永熙), 현감을 지낸 희도(熙道)가문을 유명하게 했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최희도(崔熙道, 1677, 丁巳生): 문과(文科) 1421년(경종 1) 식년시 병과(丙科)
최희철(崔희철, 1688, 戊辰生):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1725년(영조 1년) 중광시 삼등(三等)
모두 2명의 급제자가 있다.(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인구수는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 최씨(泰仁崔氏)는 남한에 총 282가구, 1,19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2000년 통계청이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최씨는 전국에 453가구, 1,47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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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천족보전문도서관(http://www.jokbo.re.kr/book/index.html?vcode=ES&fnkey=1154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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