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충 자료 **
기둥 - 건물 지붕의 하중을 받아서 초석(礎石)에 전달하는 구조물. 공간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가 되는데, 기둥높이는 건축물의 높이를 결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며, 입면(立面)의 크기를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기둥의 형태는 수직선의 요소가 되어, 기단·도리·처마선·지붕마루선 등의 수평적 요소와 대조를 이룸으로써 입면에 아름다움을 준다.
기둥의 역사 - 한국에서 기둥이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의 수혈주거(竪穴住居)에서 비롯되었다. 즉, 수혈 안의 가장자리에 구멍을 파서 세우거나 바닥에 직접 세워서 그 윗부분의 구조물을 지탱하게 한 것이 기둥의 시작이라고 추측된다. 지금까지 발굴된 수혈주거지의 기둥구멍들은 지름 10∼20㎝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쌍영총의 팔각석주(八角石柱)나 고분벽화에 그려진 기둥의 모양으로 배흘림과 네모기둥·둥근기둥·팔모기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통형기둥 - 기둥머리에서 밑동까지의 지름이 똑같은 기둥이다. 송광사(松廣寺)의 국사전, 내소사(來蘇寺)의 대웅보전, 정읍의 피향정(披香亭) 등에 사용되었다.
주춧돌 - 피향정에서 정말로 특이한 것은 바로 주추이다. 한때는 피향정은 국보(443호)였을 때가 있었다는데, 추측컨데 특이한 주추가 상당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의 자우홍련사 누마루의 주추 역시 이처럼 돌을 쌓아서 주추로 쓴 것을 보았는데, 자우홍련사는 1976년 건축가 조자룡씨가 설계했다. 여기 피향정 주추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우홍련사 주추는 약간 위태해 보인다.<황세옥의 전통건축이야기>
천정 - 합각 밑에 작은 우물반자를 한 것은 아마도 추녀 끝이 칠량도리에 걸려 있기 때문에 추녀 끝을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 무슨 거창한 의도나 있는 것처럼 어떤 전문가는 호들갑 떨었다. 즉 추녀 끝이 칠량에 걸쳐진 것이 특이한 것이지, 그 밑에 반자를 한 것은단지 궁여지책일 뿐인데, 보이는 그것만을 특이로 본다면, 웃을 노릇이다.<황세옥의 전통건축이야기>
조선 중기에는 건물이 점차 장식성을 띠고 공포가 실용성과 견실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의 건물은 사찰·궁전·일반민가 등 그 종류가 다양하게 현전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건물로는 강화 전등사(傳燈寺)의 대웅전과 약사전(藥師殿), 부여(扶餘) 무량사(無量寺)의 극락전(極樂殿), 부안(扶安) 내소사(來蘇寺),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 고창 선운사의 대웅전과 서울 문묘(文廟)의 대성전(大成殿), 홍화문, 명정문, 돈화문, 정읍(井邑) 피향정(披香亭), 전주(全州) 풍남문(豊南門), 남원(南原) 광한루(廣寒樓), 안동의 양진당(養眞堂) 및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 강릉(江陵)의 오죽헌(烏竹軒)·해운정(海運亭), 삼척(三陟)의 죽서루(竹西樓) 등이 전해진다. <야후사전에서 미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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