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국가지정 문화재

4. 태인팔경과 피향정 관련 고시 (古詩 )

증보 태인지 2018. 6. 8. 10:16

   4. 태인팔경(八景)과 피향정 관련 고시 (古詩)

 

   태인팔경 중 제5경이 피향연화 (披香蓮花)’이다. 피향정의 상하연지에 핀 연화가 아름다워 팔경 중 하나로 꼽은 것이다. 피향정의 연화는 반드시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으로 말할 수는 없다. 연화가 필 때면 그 향이 그윽하게 정자 주변을 감싸기 때문에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향기에 취하는 즐거움도 경관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따라서 피향정은 연화를 제외하고 경관의 가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향정과 연화를 하나의 틀 속에 넣어 함께 생각할 때 정자의 아름다움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태인에는 피향정 경관 외에 7 개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태인팔경은 다음과 같다.

   태인은 예로부터 산수가 좋을뿐 아니라 선현들의 유적이 많아 시인묵재들 이 이를 찬미하였으니 그 가운데 태인팔경 (泰仁八景)은 다음과 같다. 태인은 예로부터 산수가 좋을뿐 아니라 선현들의 유적이 많아 시인묵객 (詩人墨客)들이 이를 찬미하였으니 그 가운데 태인팔경 (泰仁八景)은 다음과 같다.

 

 

태인팔경(泰仁八景)

    1(一景): 사산록죽 (寺山綠竹)

 

   사산 (寺山; 恒加山 의 서쪽 능선)의 대나무 숲을 말하며 지금의 성황산을 옛날에는 죽사산이라고  했다.

2(二景): 도리백로 (島利白鷺)

 

    도리 (島利)는 도리매 를 이름이니 도이미 (道伊美)라고 표기한다.

    산의 모양이 둥글다는 뜻으로 도로매 원산 (圓山)이라고도 한다. 도리매의 소나무에 백로가 앉는 모습을 말한다.

3(三景): 대각어화 (大脚漁火)

 

    대각교가 있는 남천 (南川)의 밤에 불을 밝히고 고기 잡는 모습에 서 불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특히 밤에 게 ()를 잡는 고기잡이 불이 장관이었다.

4(四景): 낙양낙조 (洛陽落照)

 

    태인의 서쪽에 있는 낙양리의 석양의 노을이 가관이다.

5(五景): 피향연화 (披香蓮花)

 

    피향정의 연꽃을 말하니 피향정은 원래 연못가에 세운 정자이다. 즉 피향정 주변의 연못에 핀 연꽃과 피향정의 어울린 모습을 말한다.

6(六景) 비정귀운 (飛亭歸雲)

 

    비정은 성황산 암대 (岩坮)에 있었던 정자이다. 이 비정에 걸려있 는 구름 모습을 말한다.

7(七景) 항가제월 (恒伽霽月)

 

    항가산의 월경 (月景) 모습을 말한다.

8(八景) 성황모종 (城隍暮鍾)

 

    성황산의 암자에서 울려오는 황혼의 종소리를 말한다.

 

 

  피향정에는 수많은 시인묵객이 방문하고 그 모습을 시로 남겼다. 현재 전해오는 시로는 성명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도 있고, 현감을 지낸 사람도 있다. 전해오는 시는 다음과 같다.1)

 

 

<泣次先考壁上韻>

<울면서 선고 (先考 )께서 벽 위에 쓴 시에 차운 (次韻 )>

憶曾先考此經過

三十年前侍琓花

壁上紗龍成世槁

葉中嘉釀養元和

斑衣昔日歡情極

墨綬今來感涕多

物色依然欄外在

芙蓉不改當時華

 

甲子 季春 下澣 不澣孫 泰仁 縣藍 ○ ○

선고께서 이곳을 지나실 때 생각하니,

삼십년 전에 모시고 꽃구경했네.

벽 위에 사룡 (紗龍 )은 세고 (世槁 )를 이루고,

연잎 속에 빚은 솔은 원기 (元氣 )를 길러주네.

아롱옷 옛날에 기쁜 정 ()을 다했는데,

현감 (縣藍)되어 오늘 오니 감회의 눈물 떨어지네.

경색 (物色)은 변함없이 난간 (欄杆밖에 있으니,

연꽃은 옛날처럼 변하지 않았네.

 

불초() 손자 태인현감 ○ ○

 

<此邑卽先人泣治之所也不可無感懷略記數語以題享云爾>

이 고을은 바로 나의 선고께서 다스리던 곳이다.감회 (感懷)가 없을 수 없어 대략 몇 마디 말을 기록하여 정자에 쓰다.

蒼黃行色趁秋初

款款州人意不疎

某水某邱記前度

   無情風雨二十年餘

바쁜 행색으로 초가을에 달려오니,

간곡한 고을 사람 그리 멀지 않네.

이물 저 언덕은 옛날처럼 기억하니,

무정한 세월은 이십년이 지났네.

 

下上沼池朝氣寒

乍游如惜別離難

此享此日無從遍

灑盡溪山 -笑看

아래 위의 연못에 아침 기운 차가운데,

잠깐 이 놀음 이별이 아쉬운 듯.

이 정자 오늘은 눈물이 없으니,

계산 (溪山)에 다 뿌리고 웃으며 바라보네 .

戊寅 孟秋 上澣 趙秉式2)

무인 초가을 상한(上澣)에 조병식 지음

 

 

第二詩中長進酒之云字解在記中

둘째 시 중에 장진주 (長進酒 )라는 말은 기문 (記文) 중에 설명이 있다 .

詩仙己騎孤雲去

雲外靑山點點開

八月芙蓉君子志

十年湖海故人來

西風霽景生衣袂

南斗秋光入酒杯

獨倚披香亨畔立

上池下池綠渾苔

시선 (詩仙)이 이미 외로운 구름타고 갔는데

구름 밖에 청산 (靑山)은 점점이 늘어섰네.

팔월의 연꽃은 군자의 뜻과 같고,

십년 지난 물가에는 친구가 찾아왔네 .

서풍 (西風)의 개인 경치 소매에 생겨나고,

남쪽의 가을빛은 술잔에 비치네.

피향정 (披香亭) 난간에 홀로 기대어 서 있으니,

위아래 연못에 이끼만 푸르네.

 

豪竹哀絲五夜崔

秋來勁氣入崔嵬

紅迷曉月千花浴

翠積寒潭兩鏡開

南國歌傳長進酒

東山仙去永留臺

誰知天上凌雲客

猶向佳人慰一杯

관현 (管絃)의 구슬픈 소리 오경 (五更)을 재촉하니,

가을의 굳센 기운 더욱 높아라.

새벽달의 붉은 기운 천 송이 꽃 목욕하고,

차가운 못에 푸른 기운 명경 (明鏡)처럼 맑구나.

남국에는 장진주사 (長進酒辭) 노래로 전하고,

동산에 신선은 가도 영유대 (永留臺)는 남아 있네.

뉘 아랴 하늘위의 구름속 손님을,

오히려 가인 (佳人)향해 한 잔 술 권할 줄을.

壬辰秋 沈能淑  

임진 (壬辰) 가을에 심능숙 (沈能淑) 지음

 

 

拈板上韻

현판 (縣板) 위의 운자 (韻字)로 시를 지음

梅鶴公堂尺一催

西風晩角郡樓開

長空烏拖蒼烟去

落日人從綠野來

淸水芙蓉香十里

海山松竹翠千廻

宦蹤偈似浮萍界

轉到南州又此杯

매학 (梅鶴)의 공당 (公堂)이 가까이 있는데,

가을바람 피리소리에 군루 (郡樓)가 열려 있네.

공중에 나는 새는 푸른 연기 끌고 가고,

해질 무렵 나그네는 푸른 들판 건너오네.

맑은 물에 연꽃향기 십리로 퍼지고,

푸른 산 송죽 (松竹)은 천 겹으로 둘러있네 .

벼슬길 바쁜 걸음 부평초 (浮萍草) 같아,

남쪽 고을 달려와서 이 술잔 들어보네.

丁卯 仲春 知縣 徐相鈺 題

정묘 (丁卯)년 중춘 (仲春)에 현감 (縣監) 서상옥 (徐相鈺) 지음

 

 

割雞當日播淸芬
枳棘棲鸞衆所云
千載吟魂何處覓
芙蕖萬柄萬孤雲

  닭 잡던 당일부터 퍼지기 시작한 맑은 향기

  가시나무 위의 봉황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오

  천년 전 읊던 혼을 어디에서 찾을거나

  일만 송이 연꽃 속에 일만 개의 고운  

佔畢齋 金宗直 金先生3)

 점필재 김종직 김 선생의 시

 

 

점필재집 시집 제21권 / [시(詩)]

 

태인의 연지가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다[泰仁蓮池上懷崔致遠]

 
할계하던 당일에 맑은 덕행 전파했기에 / 割雞當日播淸芬
사람들이 가시나무에 난새가 앉았다고 하였네 / 枳棘棲鸞衆所云
천재에 시 읊던 그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꼬 / 千載吟魂何處覓
일만 자루 연 줄기에 일만의 고운이로다 / 芙蕖萬柄萬孤雲
[주-D001] 사람들이……앉았다고 하였네 : 
할계는 우도할계(牛刀割雞)의 준말로, 큰 재능이 아주 작은 데에 쓰임을 비유한 것인데, 여기서는 바로 신라(新羅) 말기에 최치원(崔致遠)이 당(唐) 나라에서 과거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장차 평소의 포부를 펴 보려고 하였으나, 나라가 쇠망해 가는 터라, 소인들의 저지에 의해 크게 쓰이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가서 태인 태수(泰仁太守)가 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2] 고운 : 
최치원(崔致遠)의 호이다.

 

 

                         俯郊孤縣抱荷池 (自註 泰仁)

                         堤上新軒亦奇絶

  들판을 굽어봄에 연못을 품은 한 고을  (자주 태인)

  둑길 위의 새 정자 또한 절승이로세

  孤山遺稿 卷一

  고산유고 제1권

 

 

창계집 제2권 / 시(詩)

 

피향정에서 내제 정이를 그리는 마음이 일어〔披香亭有懷內弟定而〕

 
오늘밤 그대 생각이 배나 더 간절하여 / 今夕懷君一倍多
피향정에 앉아 시드는 연꽃을 마주하노라 / 披香亭上對殘荷
예와 다름없이 백악산 위에 떠오른 달빛은 / 依然白岳山頭月
이 텅 빈 못의 하룻밤 물결을 함께 비추리 / 共此虛池一夜波
[주-D001] 피향정(披香亭) : 
최치원(崔致遠)이 태인에 있을 때 지은 정자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본래 이 정자의 상하에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의 두 연지(蓮池)가 있어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누정의 주위에 가득 차서 이렇게 명명하였다고 한다. 몇 번의 중수(重修)를 거쳤는데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다.
[주-D002] 내제(內弟) 정이(定而) : 
정이는 조정만(趙正萬, 1656~1739)의 자이다. 부친이 조경망(趙景望)으로, 창계의 외사촌이다. 창계가 태인으로 조경망을 찾아왔을 때 조정만이 도성의 백악산 기슭에 있던 집에 있었기에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청음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110수(一百十首)

 

피향정(披香亭)에서 판상(板上)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태인(泰仁)에 있다.

 
물 지키는 원앙새는 짝을 지어 쌍쌍 날고 / 護水元央兩兩飛
잠자리는 다정스레 내 옷 위에 내려앉네 / 蜻蜒款款點行衣
다정할사 태액지 가 서성이는 나그네여 / 多情太液池邊客
다리 옆에 말 멈추고 저물도록 서 있구나 / 駐馬官橋盡落暉
[주-D001] 태액지(太液池) : 
북경(北京)의 서화문(西華門) 곁에 있는 연못 이름으로, 북해(北海), 중해(中海), 남해(南海)가 있다. 여기서는 태인(泰仁)에 있는 못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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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시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병혁이 번역한 것으로 피향정 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1)에서 인용한 것임.

2) 1823(조선 순조 23)에 현감 유순 (猷淳)의 아들로 태어나 1907년까지 살았던 조선 말기의 문관이다. 본관은 양주(楊洲), 자는 공훈(公訓)으로 서울 출신이다. 1858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 홍문관정자를 거쳐 1862년 전라 우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조참의, 좌승지, 강화부유수, 충청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재임 중 행적과 관련하여 두 번씩이나 유배되기고 했다.

3) 고운집(孤雲集)』 孤雲先生事蹟, 광해(光海) 을묘년(1615)에 태인(泰仁) 무성(武城)에 서원을 세웠다. 태인에 연못이 있는데, 선생이 본군(本郡)의 수재(守宰)로 있을 적에 이 못을 파고 연을 심었다고 한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김 선생(金先生)의 시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