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피향정 실측조사
피향정의 평면구성은 정면5칸, 측면4칸으로 면적은 99.96㎡(30.23평)으로 구성된 건물로 외진평주(外陣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형식으로 되어있다. 평면비는 동, 남측 기둥1번 중심을 기준으로 전면 도리통 11,900mm, 측면 양통 8,400mm로 정․측면의 길이비는 1.41 : 1로 장방형이다.
하층 평면에는 별다른 구조물이 없고 기둥만 세워져 있는데 정면5칸, 측면4칸으로 각 주칸마다 빠짐없이 28개의 석주(石柱)가 설치되어져 있다. 이것은 누마루에 많은 사람이 올라앉을 경우에 구조적인 안정감과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주 2개(서측 계단에서 바로 뒤 내진주 2개)는 3개의 통돌을 서로 다르게 그랭이질하여 쌓아올린 기법이 매우 인상적이다. 기존바닥은 전체적으로 강회다짐으로 하지 않고 다진 흙으로 마감되어져 있으며 누하주는 크기 및 높이가 전체적으로 일정하지 않고 형태 역시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설치되어져 있다. 특히 석주 상부면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크기의 동바리 굄목을 설치한 것으로 보여진다. 금번 공사(2003년 12월 26일)에서는 기존 동바리 굄목을 모두 제거하고 내구성이 강한 동바리 화강석으로 설치하였으며, 하층의 초석과 석주는 일부 침하되고 변동된 것들을 전체적으로 드잡이를 실시하여 초석과 석주를 바로 잡았고 표면 풍화 및 변색된 부분은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상층평면에는 외진평주와 내진고주가 사방에 둘러져 있고 바닥전체는 모두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진주열 바깥으로는 난간마루와 계자난간(鷄子欄干)이 설치되어져 있다.
마루 귀틀은 내진칸 도리통(道里通) 방향으로 각 주칸마다 하나씩으 동귀틀이 설치되어 있는데 조사결과 장귀틀 옆면에 두 개의 홈 구멍이 일괄적으로 파여져 있는 걸로 보아 원래는 각 주칸마다 동귀틀 두 개씩이 설치되어져 있었으나 차후 보수과정에서 그 원형이 변형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귀틀 뺄목은 원래 외진주 중심에서 1척(尺)정도만 밖으로 내밀어 뺄목을 형성 하였고 훗날 보수 과정 중 1.20척정도의 뺄목을 더 확장 시킨 것으로 판단되어지며 기존 뺄목 끝부분에 각재를 덧대어 보강하고, 장귀틀 하부에는 헌함을 철물로 고정시켜 난간마루를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외진칸, 내진칸은 기둥 하부면에 촉을 두어 장귀틀에 고정시키는 일반적인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내진기둥4열(서측 계단에서 바로 뒤 내진주 4개 기둥)은 특이하게도 촉이 아닌 주먹장 맞춤으로 기둥과 장귀틀을 서로 맞물리는 기법으로 설치되었다. 이것은 아주 이례적인 방법으로 기둥이 놓이는 귀틀 상부면에 받을장 형식의 주먹장 홈을 파고 기둥 하부에는 덮을장 형식의 주먹장을 만들어 귀틀과 기둥 하부면을 서로 결구시키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피향정 기단의 형태는 건물의 평면과 같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고 북, 서, 남측은 외벌대이며, 동측만 이벌대로 구성되어 있다. 재료는 자연석과 화강석을 혼용하였고, 각 위치별로 석재 형태나 크기도 일정치 않다.
기단부 상태는 특이하게도 동측이 부정형의 화강암 장대석으로 쌓아올린 이벌대이며, 그 외에 북측, 서측, 남측은 모두 외벌대로 설치되어져 있는데 이것은 동측 지반이 다른 지반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측 이벌대 기단의 경우 하단보다 상단에 더 큰 부재를 사용하였고, 전면에 사용된 기단석이 다른 면에 사용된 것보다 현저하게 큰 편이었다.
기단 바닥은 일부 강회다짐 흔적이 보이나 하층 바닥은 강회다짐이 아닌 다진 흙으로 마감되어져 있고, 기단 내밀기는 각 위치별로 일정치 않으며, 동․북측 기단면 일부는 많이 흐트러진 상태이다.
금전 기단 공사에서는 기존 기단석을 모두 해체한 후에 전체적으로 강회다짐을 실시하였으며, 해체된 기단석 중 상태가 양호한 것은 재사용 하였고, 일부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은 모두 교체하였다.
계단은 동․서측면에서 서로 마주보며 진입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져 있다. 이것은 진입 과정에서 하연지와 상연지를 조망하명서 진입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동측계간의 크기는 폭이 1,360mm이고, 길이는 장귀를 끝부분에서 내민 길이가 3,250mm로 화강석과 자연석이 혼용되어 있으며, 계단의 한단 높이는 평균 227mm정도인데 이 중에서 제일 하단부는 지반에 2/3정도 묻혀 있는 상태로 지면에서 103mm정도만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계단석에 사용되어진 장대석은 폭 450mm~600mm정도로 차이가 없으나 길이는 600mm~1,360mm정도로 일정하지 않다.
계단 상태는 전체적으로 탈락과 균열이 발생하고, 일부는 심하게 함몰되어 흐트러져 있는 상태인데 특히 장대석의 맞물린 틈새에 시멘트 몰탈이 채워져 있어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계단 쌓기는 장대석을 주로 디딤석으로 쌓았고, 좌, 우측 벽체면과 뒷면에 주로 자연석을 쌓았다. 서측계단은 동측에 비해서 계단 한단이 적게 설치되어있다.
이것은 동측면에 비해서 서측 바닥명이 130mm정도 높아져 동측보다 계단한단이 더 적게 설치되어져 있다.
계단의 규격은 계단 폭이 1,600mm이고 내민 길이는 2,020mm이며 단 높이는 평균 290mm정도의 비교적 높은 편으로 진입 과정 중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는 높이로 설치되어져 있다. 특히 배면(서측) 계단면이 이완 및 탈락 현상이 진행 중이고 뒷면은 균열로 인하여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금번 기단공사에서는 해체한 계단석 중 상태가 좋은 것은 모두 재사용 하였고 특히 잡석은 200mm, 강회잡석은 250mm정도의 두께로 기초를 한층 더 보강하였으며, 계단 형태와 크기는 기존과 동일하게 설치하였고, 단 높이는 기존에 비해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특히 기존 단 높이가 높은 것을 감안해서 30mm~60mm정도 낮추어서 설치하였는데 평균적으로 250mm정도로 진입하기 용이한 계단 넓이와 단 높이로 설치하였다.
주초는 자연석 덤벙 주초로 그 형태와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누하주면을 주초형상에 맞게 그랭이질하여 덤벙덤벙 올려놓았다.
초석 크기는 외진칸 초석들이 대체적으로 큰 돌들이 사용되었고, 내진칸에는 주로 작은 돌들로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부정형의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당초 초석을 사용할 때 모양이 반듯한 것들은 주로 외진주에 사용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석 레벨은 전면(서측) 보다 배면(동측) 레벨이 200mm정도 낮기 때문에 서측면의 초석들은 대부분 노출되어 있고, 동측면의 초석들은 대체적으로 묻혀있는 상태이었다.
노출되어진 높이는 제각각 서로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최소 30mm~ 최대 600mm정도로 조사되었다.
금번 공사에서 초석은 전체적으로 드잡이를 실시한 후 바닥에 강회다짐을 100mm~120mm정도의 두께로 설치하였다.
집의 뼈대가 되는 가구는 축부를 구성하는 벽체가구와 지붕틀을 구성하는 지붕 가구로 구분할 수 있다. 축부 구성부재는 기둥, 창방, 도리, 장여, 보, 대공 등이 있고, 지붕가구재로는 추녀, 사래, 사까래 등의 부재가 사용된다.
피향정의 가구 구성을 살펴보면, 하층에서 내․외진주 모두 칸마다 빠짐없이 누하주가 세워져 있고, 누하주 상부에는 청방 없이 마루 귀틀을 받치고 있고, 누하주가 짧은 것은 누하주 상부에 동바리굄목이 마루 귀틀을 받치고 있었다.
상층에는 외진평주(外陣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로 구성되어 있고 전면고주(前面高柱)와 후면고주(後面高柱) 사이에 대량(大樑)이 결구되어져 있으며,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 퇴량(退樑)이 설치되어져 있다. 대량위에 사분변작(四分變作) 1/4정도 위치에 대공첨차가 설치되어져 있고, 그 위에 종량(宗樑)이 놓이며, 종량위에 파련대공이 세워져 뜬창방과 종장여, 종도리를 받치게 된다. 도리(道里)는 사방 외진평주 상부에 주심도리(柱心道里)가 설치되고 내진고주 상부에는 중도리(中道里)가 사방으로 설치되며, 종보 양측상부에는 중상도리(中上道里)와 외기도리(外機道里)를 서로 직교시켜 왕지맞춤으로 결구되어져 놓이며, 마지막으로 파련대공 상부에 종도리가 설치되는 가구 구조로써 종단가구 구조는 2고주7랑가(2高柱7樑架)로 구성되어져 있다.
2001년도의 정밀실측조사보고서 발간을 위한 조사 시에는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조사하였고, 이번공사 과정에서의 조사는 건물을 해체하면서 조사를 하였기 때문에, 조사 결과 합각속에는 추녀뒷목 누리개와 연목누리개가 발견되었는데 연목누리개는 남, 북측 중 도리 상부인 연목위에 양통방향으로 설치되어져 있었고, 중앙 상부는 동자주가 세워져 종장여를 양쪽에서 받치고 있었다. 추녀 누리개는 외기도리 상단부에 설치되어 양쪽 추녀뿌리를 양통방향으로 걸쳐서 누르고 있었다.
기둥은 위치, 단면형태, 높이, 입면형태 등에 따라 구분되어 지는데 피향정은 중층 정자이므로 누하주(樓下柱)와 누상주(樓上柱)로 구분하고, 이들을 다시 외진주(外陣柱)와 내진주(內陣柱)로 구분하여 그 기능 및 위치별로 구분하였다.
피향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은 크게 위치에 따라 누하주와 누상주로 구분되어지는데 누하주는 외진주와 내진주로 누상주는 외진평주와 내진평주로 구분하고, 누하주와 누상주는 각각 2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하게 피향정의 기둥표면에는 전체적으로 장부구멍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6.25전쟁이수 피향정을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외진주사방에 문틀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홈구멍이 생겨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누하주는 도리통(道里通) 5칸, 양통(樑通) 4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층에는 기둥들이 각칸마다 생략되지 않고 세워져 있으며, 수량은 28개이다.
각 위치별로 외진주가 18개이고 내진주는 10개의 석주가 설치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높이 차이가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바리고인목을 설치하여 수평높이 차이를 보완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둥상태는 표면박락이나 탈락현상이 전반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배면(서측) 기둥은 다른 면에 비해서 풍화가 많이 발생되었는데 이것은 피향정 건물의 배면에 위치한 연못에 의해 수분이 누하주에 지속적으로 흡수되면서 화학적 풍화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사과정에서는 누하주를 전체적으로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는데 누하주 하부와 주초가 맞닿는 부분에 석회와 시멘트 몰탈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것을 모두 제거하고 동일한 석분으로 처리한 후 원 재질과 이질감이 없도록 동바리석과 함께 경화 후 보채하였다.
누상주는 외진평주와 내진고주로 구분되어지는데 외진평주는 총 18본으로 우주(隅柱)는 4본이고, 동․서측 기둥은 8본이며, 남․북측 기둥 6본이 설치되었고, 내진고주는 총 10본으로 우주(隅柱)는 4본이고, 고주(高柱)는 6본이 세워져 있어 모두 28본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누상주는 모두 나무로 만든 두리기둥이며, 전체적으로 주심 열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특히 내진주 상부의 사괘에 띠철물이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기둥 사괘의 벌어짐을 사전에 방지하는 목적으로 내진주에만 설치되어져 있고, 철물 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이었다. 기둥의 고정방식에는 2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첫 번째 방식은 기둥 하부면에 촉을 두어서 귀틀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서측 내진주 4본을 제외한 기둥전체에 사용되었다. 또한 해제결과 부분적으로 촉이 잘려져 있는 상태였는데 이것은 차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그 당시에 드잡이 과정 중에 잘려긴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두 번째 방식은 서측 내진주 4본은 기둥하부면 양쪽에 주먹장을 두어서 귀틀에 고정하였는데 기둥 하부면에 도리통 방향으로 주먹장 홈이 양쪽으로 파여지고, 귀틀 상부면에는 주먹장을 내어서 기둥 하부면이 귀틀에 끼워지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입체 형태별로 살펴보면 민흘림으로 다듬어져 있으나 전체적으로 상․하부 흘림의 정도는 1치 정도가 일반적이다. 이번 공사에는 기둥 표면에 발생한 균열 부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보존처리 하였다.
기둥을 세울 때에 귀솟음이나 안쏠림을 얼마나 두었느야에 대한 조사는 전통목조기법(傳統木造技法)에 대한 조사로서 항시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피향정 역시 귀솟음과 안쏠림 기법이 시각적으로 거의 느껴지지는 않고, 실측 결과도 미세하나마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창방은 평주창방(平柱昌枋), 고주창방(高柱창방), 뜬창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익공과 직교하여 설치되는 부재로써 기둥 상부에 주먹장 맞춤으로 결구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후기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평주창방 단면형태는 너비보다 춤이 큰 장방형(長方形) 부재의 네 모서리를 둥글려 모접기를 하였고, 고주창방은 모접기를 하지 않은 각형(角形)으로 설치되어 있다.
평주창방은 동측과 서측에 각기 5본씩 남, 북측은 각기 4본씩 모두 18본이 사용되었고 우주 상부면 창방뺄목은 반턱맞춤으로 결구되고, 기둥 중심에서 700mm~753mm정도 내밀고 있으며, 창방 이음은 평주상부에 익공과 직교하여 주먹장맞춤으로 결구되고, 뺄목 초익공(初翼工)은 쇠서 형태로 초각되어져 있다.
고주창방은 각 주칸마다 단일부재로 사용되었는데 동측, 서측에 각기 3본씩 남측, 북측은 2본씩, 모두 10본 사용되었다. 우주 상부면 창방뺄목은 반턱맞춤으로 결구되고, 기중 중심에서 462mm~473mm정도 내밀고 있으며, 창방 이음은 고주상부에 익공과 직교하여 주먹장맞춤으로 결구하였다.
피향정은 대량, 종량, 퇴량, 충량 4가지 양재(樑材)가 사용되었으며 사용본수는 대량 2본, 종량 2본, 충량 2본, 퇴량 14본이 사용되었다.
대량(大樑)의 대들보는 중심의 고주 상부에 동, 서측으로 가로질러져 결구되어져 있다.
보머리 형태는 대부분 삼분두형태로 다듬어 역시 고식(古式)의 자취를 보여 주고 있으며, 대들보 머리는 고주 익공과 함께 기둥 중심에서 360mm정도 내밀고 있다.
대들보의 단면은 모서리를 궁글린 형태이고 상․하부 넓이가 서로 다른 제형보 형태로 치목수법 역시 상부 단면 폭이 가장 넓다가 하부면으로 차츰 감소하며, 모서리 부분에서 점차 둥글게 다듬었다. 이것은 하부에서 바라볼 때 대량면을 좁아보이게 하여 상부에 하중감을 줄이고 중앙부가 쳐져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시각적(視覺的), 심리적(心理的) 안정감을 주는 기벅으로 보인다.
종량(宗樑)은 대량 상부에 하나씩 양쪽으로 모두 2본이 설치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대량 상부면에 촉을 두어 십자 형태로 직교시킨 첨차대공이 양측에 설치되었고, 그 위에 종량이 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량위에 동자주를 세워서 종보를 받치지만 피향정은 종량과 대량사이 간격이 3치2푼 정도로 가깝게 설치 되어져 있다. 이것은 평주와 고주의 높이 차이가 660mm정도로 너무 작기 때문에 전체적인 물매가 낮아지므로 일반적인 동자주 대신 첨차대공을 설치한 것으로 보여 진다.
보머리 형태는 대량과 같은 삼분두 형태로 다듬어 역시 고식(古式)의 자취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종량 머리는 상중도리 중심에서 300mm정도 내밀고 있다.
단면은 모서리를 궁글린 형태이고, 상․하부 넓이가 서로 다른 제형보 형태로 치목수법은 대량과 마찬가지로, 단면형태는 상부면이 가장 넓다가 차츰 감소하여 하부모서리 부분에서 점차 둥글게 다듬어졌다.
보머리 쪽은 고주 기둥위에 결구되고 꼬리 쪽은 대들보 상부에 2치 깊이로 홈을 파서 고정하였고, 남측와 북측에 각각 1개씩 모두 2개가 설치되어있다. 또한 충량 중앙상부에 4치정도 홈을 파서 외기장여와 직교로 결구시켜 설치하였다.
충량측면(衝樑側面) 형상은 하부쪽이 만곡재 형상으로 위로 휘어져 오른우미량 형태로 되어 있으며, 보의 단면은 다른 보들과 마찬가지로 장방형의 네 모서리를 궁글린 형태이다. 보머리 형태는 대부분 삼분두 형태로 고식(古式)의 자취를 보여 주고 있으며, 충량 머리는 중도리 중심에서 350mm정도 내밀고 있다.
퇴량(退樑)은 외진평주와 내진고주를 연결하는 부재로서 외진칸(外陣間) 사방으로 총 14본이 설치 되어있는데 동, 서측 각기 4개씩 모두 8개와, 좌․우측 각기 3개씩 모두 6개가 설치되어져 있다. 퇴량 설치는 보머리가 외진평주 상부에 주심장여와 직교로 결구되고, 뒤쪽은 고주에 통맞춤으로 결구한 후 연침을 좌, 우측 1개씩 박아서 고정시켰고, 하부는 보아지로 보강하였으며, 단면의 형태는 장방형의 하부만 약간씩 둥글게 모접기한 형태이다.
도리구성은 주심도리 10본, 중도리 10본, 중상도리 및 외기도리 4본, 종도리 3본으로 모두 27본의 도리가 설치되어져 있고, 도리규격은 직경 270mm~310mm정도이며, 부분적으로 규격이 작은 것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당초 의도는 1척(尺)을 기준으로 치목(治木)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결 이음은 나비장(은장)으로 고정하였으며, 일부는 맞춤 없이 서로 맞대어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주심도리의 규격은 직경 270mm~310mm정도이며, 굴도리와 장여가 맞닿은 도리 밑면은 평깍기를 하지 않고 장여를 오목하게 홈을 파서 도리를 얹히는 방식으로 하였고, 이음부는 나비장 맞춤으로 결구되고, 동, 서측은 3본씩, 좌․우측 2본씩 총 10본이 설치되어 있다. 사방 우주상부에 설치된 양단부 마구리 직경은 1치정도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추녀나 갈모산방에서의 앙곡이나 안허리 만곡점을 조금이나마 도리에서 해결하려는 기법으로 보인다. 주심도리는 평주 위 퇴량 머리 사우에 위치시키고, 퇴칸과 협칸을 가로질러 단일부재로 설치하고, 어칸과 이음부 역시 나비장 맞춤으로 고정 시켰다.
연결부 이음은 원래 나비장으로 설치하였으나 부재를 교체하면서 부재 치목 과정에서 주먹장 맞춤으로 하였고, 연결부에 다시 한 번 꺽쇠로 보강하였다. 주먹장 크기는 좁은 쪽이 1치 3푼, 넓은 쪽은 2치 8푼, 길이는 2치정도이다. 도리 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하나 일부는 지붕누수로 인해서 부식이 진행됨에 따라 주심도리 3개를 교체하였다.
중도리는 내진고주 사방으로 대량 머리를 가로질러 각 주칸 상부에 설치되어 있고, 이음부는 나비장 맞춤으로 고정 시켰다. 우주부분 직교되는 부분은 왕지 반턱맞춤으로 결구되었고, 동, 서측에 3본씩 남, 동쪽 2본씩 총 10본이 설치되어져 있다. 연결부의 이음은 나비장으로 서로 엇물리게 고정시키고, 나비장 크기는 좁은 쪽이 1치 3푼, 넓은 쪽은 2치 8푼, 길이는 3치 7푼 정도이다.
도리 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하나 지분 누수로 인해서 상부에 부식이 심한 중도리 1개를 교체하였다.
중상도리는 양통방향으로 종량머리 상부를 가로질러 설치되고, 외기도리는 도리통 방향으로 충량 중앙부 상단에 놓이며, 모서리에서 서로 직교하여 왕지 반턱맞춤으로 결구되고, 동, 서측 2본, 남, 북측 2본 총 4본이 설치되어 있다.
도리 상태는 대체적으로 매우 양호하고 남측면의 도리 안쪽에는 외기반자가 설치되어 있다.
종도리는 총3본으로 종량상부에 파련대공이 세워지고 중앙상부 도리통 방향으로 가로질러 양측 합각부 박공대공에 고정되어 있다.
종도리의 단면형태는 다른 도리와 달리 도리 밑면을 폭 120mm~130mm정도 평깍기로 다듬어서 장여와 도리가 서로 맞닿게 치목되었는데 이것은 상량문을 쓰기위한 것으로 보이며 보편적으로 종도리에 홈을 파서 상량문을 매입하는 방식인데, 피향정은 따로 홈을 파지 않고 장여와 도리 맞닿는 부위에 상량기록을 용이하게 하도록 평깍기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비장의 크기는 좁은 폭이 1치 3푼, 넓은 쪽은 2치 8푼, 길이는 3치 8푼 정도로 설치하였으며, 도리 상태는 대체적으로 매우 양호하다.
장여 구성은 주심장여 18본, 상중장여와 외기장여 각 2본씩, 종장여 3본으로 총 45본으로 구성되었다.
장여 연결부 이음은 주먹장 맞춤으로 고정하였다. 또한 뜬창방은 장여 하부에 1단으로 설치되었고, 달동자는 중상장여와 외기장여 교차하는 우주부분에 사괘로 고정하여 설치되어져 있다.
도리의 하부에는 모두 장여가 놓여 있는데 도리 하부와 장여의 상면이 맞닿게 되는 부분은 도리 하부 면을 장여 면에 맞추어 수평으로 깎아 내거나 도리 아랫면에 맞추어 장여 상면을 오목하게 파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주심장여, 중장여, 중상장여, 외기장여 등은 장여 윗면을 둥글게 파내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종장여만 도리 하부면에 맞게 수평으로 깎아 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주심장여는 주칸에 1본씩 설치되고, 각 위치별로 어칸, 협칸, 퇴칸으로 구분하였다.
도리의 연결 이음부는 주먹장 맞춤으로 서로 엇물리게 고정시켰다. 주먹장 맞춤 크기는 좁은 쪽이 1치 3푼이고, 넓은 쪽이 1치 8푼이며, 길이는 1치 8푼정도로 설치하였다.
뜬창방은 양측 파련대공에 결구되어 종도리가 놓이고 그 아래로 종장여, 소로, 뜬창방이 차례로 설치되어 있다.
중상장여와 외기장여를 서로 직교시킨 하부면에 사괘턱을 만들어 장여하부에 설치되는 의장재로 모두 4본이 설치되었고, 형상은 초새김 없는 정방(正方)형태이다.
대공은 종보 상부 중앙 종도리 하부에 파련대공 2본이 설치되고, 합각 안쪽 연목누리개 상부에 동자대공 2본이 설치되어 있다.
파련대공은 하부에 화반형태를 만들고 상부에는 당초를 초각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파련대공은 3단으로 중첩시켜 쌓아서 만들었고, 테두리는 당초무늬를 음각(陰刻)으로 초각하였다.
동자대공은 합각안쪽 연목누리개 상부면에 통 홈을 파서 고정시킨 부재로서 종장여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양측 합각부에 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피향정의 공포는 평주익공과 고주익공으로 구분되는데 평주 익공은 전형적인 쇠서(牛舌)형 초익공(初翼工)형식이고, 고주익공은 운문(雲紋)형으로 기둥상부에 사괘를 틀어 창방과 직교하여 설치 되어있다.
특히 평주익공 형태는 새가 날고 있는 형상으로 세 번 정도의 추임새를 연상 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으로 허공을 활주하는 한 마리 새처럼 그 위세가 자유롭고 날렵해 보인다.
평주익공은 모두 22본이 설치되었는데 우주부분에 창방 뺼목을 초각한 초익공 8본이 설치되고, 그 외 평주상부에서 14본이 설치되어져 있다.
평주익공 맞춤을 하부로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 먼저 기둥 사괘면에 초익공이 끼워지고, 창방양쪽에 주먹장을 내어 익공과 직교하여 결구되며, 그 상부에 주두와 소로가 얹히게 된다.
또한 우주 창방뺼목은 교차 부분에 서로 반턱을 내어 받을장과 덮을장으로 구성하여 결구되어지고, 뺼목부분은 쇠서형식으로 당초문양이 초각되어 있다.
고주공포는 모두 14본이 설치되었는데 우주부분에 8본이 설치되고, 그 외 평주상부에서 6본이 설치되어져 있다. 고주공포 맞춤을 하부로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 먼저 기둥 사괘면에 익공을 끼워 넣고 창방 양쪽에 주먹장을 내어 익공과 직교시켜 결구하였고, 그 상부에 주두와 보(樑)가 차례대로 설치된다.
주두는 외진주 주두와 내진주 주두로 구분할 수 있다. 외진주에는 18개이고 내진주에는 10개의 주두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모두 28개의 주두가 각 형태와 기능에 따라 기둥상부에 설치되어 있다. 굽의 형태는 모두 사절된 빗굽 주두로서 굽받침은 없다.
외진주 주두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우주상부에 설치된 사갈주두는 사방에 4개가 설치되고, 그 외의 외진평주 두옆갈주두는 13개가 설치되고, 나머지 주두는 특이하게도 주두굽 형태가 반원으로 기둥 상부 크기와 동일하게 치목되어져 있다.
내진주 주두는 내진고주 상부에 모두 10개가 얹혀져 있는데 우주 상부에 사갈주두 4개가 설치되고, 그 외의 평주 상부에는 두옆갈주두 6개가 설치되어져 있다. 내진고주에 사용된 사갈주두는 주두 하부에 1치 2푼 정도 턱을 두어서 창방과 주두가 서로 물려서 이동성이 없게 고정하였고, 두옆갈주두는 고주익공과 창방을 끼우기 위한 홈을 옆갈로 따내어 고주익공과 창방 상부에 얹혀져있다.
소로는 대부분 장여 받침에 사용되는데 사용 위치는 주심장여, 중장여, 중상장여 및 외기장여, 종장여 등이 하부에 주로 설치된다. 각 위치별로 사용된 소로의 형태는 크게 3가지 종류로 기본형인 양갈소, 양갈소를 반절로 자른 반토막형태, 외옆양갈소 등으로 분류하였다.
양갈소로는 상면이 마주보게 양갈로 트여있는 양갈소로로 주로 창방위에 놓여 장여를 받는다. 또한 우주 공포 상면에 놓여 장여뺄목을 받치게 된다.
양갈소로를 반절로 자른 반토막형태로 주로 충량 중앙상부 양옆이나 파련대공 양옆에 설치되는데 충량부 양옆에는 소로 크기의 홈을 따서 반절정도 끼워서 고정하고, 그 상부에 외기장여를 받치게 된다. 또한 파련대공과 종장여 및 뜬창방이 결구 되어지는 위치에 소로가 끼워져 종장여와 뜬창방을 받게 된다.
나머지 소로는 양갈소로면 한쪽만을 옆갈로 따낸 형태로 주로 종량 하부에 위치한 첨차대공 상부면에 설치되고 도리방향으로 중장여를 받는다.
피향정은 정자 건물로 벽체가 없고 사방에는 기둥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천정에는 남측면 외기부분에 외기반자가 설치되어 있고 북측에는 우물반자가 설치되어 있다. 우물마루는 상층바닥이 되면서 동시에 하층은 천정이 된다.
난간은 출입구를 제외한 사방에 설치되어져 있다. 기존의 난간 형식은 전형적인 계자난간이 아닌 절충된 구조로 부재의 집합방식이 맞춤형식이 아닌 부재면 전체를 홈을 파지 않고 졸대를 맞대어 못으로 고정하였는데 이것은 구조적으로나 형태적으로 격식이 맞지 않으며 건물과의 비례성도 전혀 맞지 않으며 건물과의 비례성도 전혀 맞지 않으므로 고증(考證)을 거쳐 현 건물과 조화롭게 새로이 설치하였다.
계자난간은 변주에서 바깥으로 뺄목을 형성하여 빠져나온 귀틀 마구리 부분에 치마널 옆판을 고정하고, 치마널 상부에 지방이 상, 하부에 난간동자를 세워서 안상을 끼워 넣어 고정하고, 바깥쪽으로 계자각은 적정 간격느로 배열하여 설치하였다. 계자각 상부에는 하엽(荷葉)이 놓이고, 하엽 위로는 돌란대를 설치하였다. 또한 계자각 양옆에는 당초문양을 음각하였고, 하엽은 연꽃문양을 간략하게 초각하였다.
우물마루는 기둥사이에 장귀틀을 건너지르고 장귀틀과 장귀틀 사이에 동귀틀을 설치하여 우물을 구성한 후 동귀틀 옆구리에 홈을 파서 청판(廳板)을 끼워 넣어 구성하였다.
마루구성은 장귀틀 중에서 장재(長材)가 우주를 중점으로 10개가 설치되었다. 또한 주칸 사이사이에는 단재(短材)가 39개가 설치되었다.
동귀틀은 모두 26개가 설치되었는데 기존보다는 2개가 더 설치되었다. 이것은 귀틀 해제 과정 중 동귀틀과 동귀틀 사이에 양쪽으로 두 개씩의 홈 자국이 일정하게 있는 걸로 보아 당초에는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동귀틀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되어 진다.
우물마루 상태는 이음부분의 이완으로 뒤틀림이 발생되었고 청판은 앞, 뒷면 모두 얇고 판판한 제재목이 주로 많이 사용되어졌는데 표면에는 뒤틀림과 균열이 진행 중이고 특히 맞춤부위가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또한 시각적(視覺的)인 면에서 보았을 때는 전통적인 투박한 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획일적인 이질감만 느껴진다.
천장은 남측 협칸 충량 양쪽에 외기반자가 설치되어 있고 북측 협칸에는 기둥상부 높이에 우물반자가 설치되어 있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우물반자구성은 반자돌림인 장귀틀이 기둥과 기둥을 서로 연결하여 전체 우물을 형성하고, 안쪽으로는 장귀틀과 동귀틀을 서로 직교하여 우물이 짜이고 개개의 하부면에는 소란대를 설치하였다.
반자상부의 고정방식은 중앙부분이 처지는 현산을 방지하기 위해 반자틀에 철물을 고정하고 충량에 매달아 고정한 상태였다. 우물반자의 구성은 반자돌림이 우물반자 사방으로 1본씩 모두 4본 설치되어있고, 반자귀틀은 양동방향의 6열로 단재(短材)가 모두 72본이 짜이고 도리통 방향은 11열로 장재(長材)가 11본으로 구성되어지며 반자널은 84본이 설치되어 있다.
외기반자는 충량을 중심으로 외지장여와 중상장여 안쪽으로 둘러져 양쪽 상단에 日자 형태로 설치된다.
짜임새는 우물반자 형식과 마찬가지로 안쪽에는 장귀틀과 동귀틀을 서로 직교하여 우물 형태로 짜여지고, 개개의 하부면에는 소란대를 설치하였다.
외기반자의 구성은 충량을 중심으로 양측으로 있는데 각각 반자돌림이 외기반자 사방으로 1본씩 모두 4본 설치되어있고, 반자귀틀은 양통방향이 3열로 단재(短材)가 모두 9본이 짜이고, 도리통 방향은 2열로 장재(長材)가 2본으로 구성되어지며, 반자널은 12본이 설치되어 있다.
피향정 처마는 사면 모두 서까래(椽木)와 부연(浮椽)을 사용한 겹처마로 되어있고, 귀 처마는 모두 선자서까래(扇子椽)로 꾸며져 있다.
사반 선자서까래 개수는 서쪽 우측면을 제외하고 모두 일정한데 동․남․북쪽은 12본이고, 서쪽 우측면은 1본이 더 많은 13본이 설치되어있다. 이번 수리공사 과정에서는 심하게 부식되어 상태가 좋지 않은 지붕가구재(추녀, 사래, 서까래, 부연 등)는 모두 교체하였다.
부재 변경수량은 선자서까래는 서쪽 우측면 1개가 줄어들었고, 단연(短椽)에서 5개가 늘어난 65개가 설치되었고, 그 외에는 해체전과 동일하게 시공되었다.
추녀의 목재는 자연 상태로부터 휘어진 부재를 구하여 추녀곡에 맞추러 뱃바닥에 곡(曲)을 주어 다듬어 놓았다.
추녀부리 단면은 너비에 비해 춤이 큰 장방형으로 다듬었고, 상부면도 사래가 놓이는 부분은 평탄하게 가공하였으나, 내부 지분 속으로 감추어지는 부분은 양변과 아래 뱃바닥만 가공하였다. 추녀 마구리 윗면 상부는 사래가 얹히기 위해서 상부면을 평탄하게 다듬어서 사래를 고정시켜놓았다.
추녀는 하중도리와 외기도리가 교차되는 네 모서리 부분에 걸쳐져 있다. 해체 후 살펴본 추녀 상면에는 머리 쪽으로 초매기 평고대를 끼우기 위한 홈이 양쪽으로 비스듬히 파여져 있고, 그 안쪽으로 사래를 고정시키기 위한 촉이 장방형(長方形) 홈이 파여져 있으며, 뒷뿌리는 중도리와 외기도리가 교차되는 부분에 걸쳐진다. 특히 마구리 상부에는 부재가 덧대어져 있는데, 이것은 추녀 단면적을 증가시켜 만곡(曲)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여 진다. 또한 추녀 마구리에는 쌍곡 문양이 초각(草刻)되어져 있는데 북․서측과 남․서측 추녀를 제외하고 나머지 2곳만 초각이 새겨져 있었다.
추녀 고정방식은 뒤 뿌리를 외기도리 상면에 연정으로 고정하고, 양통방향으로 양쪽 추녀 뒷댄목을 누리개로 눌러 단단히 고정해 놓았다.
해체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술지도회의를 거쳐 추녀 3본을 교체하였는데 기존부재의 형태와 크기를 동일하게 재치목하였다. 특히 북․서측 마구리에는 초각이 새겨지지 않은 각형(角形)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번공사에서 기존의 형태와 동일한 문양으로 초각하였다.
사래는 추녀 등에 2/3정도가 걸쳐져 고정되는데, 고정 방법은 추녀등과 사래 뱃바닥 면에 홈을 내어 촉으로 고정되었고, 뿌리쪽은 1척(尺)정도인 연정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사래상태는 동․북측 사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후가 진행중인 상태인데, 특히 몸통옆면과 등쪽 부식의 정도가 심하여 몹시 좋지 않은 상태였다.
사래는 대부분 촉과 연정을 박아서 추녀에 고정시켜 놓았고, 동․북측, 서․남측은 촉을 생략하고 연정으로만 고정하였다. 동․북측 사래는 근래 수리과정에서 교체한 것으로 보이고, 부재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다른 사래에 비해서 크기와 형태가 작은 편이다. 또한, 머리 쪽에는 평고대(이매기)를 끼우기 위한 홈이 좌우로 비스듬히 파여져 있고, 뿌리 쪽은 연정으로 박아서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피향정 서까래 구성은 선자연 외에 장연과 단연이 사용되었다. 이들 중 특히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장연인데, 장연(長椽)은 일반적으로 주심도리와 중도리 사이에 걸치는데, 본 건물에서는 주심도리, 중도리, 중상도리 상부에 걸쳐져 있다.
단연(短椽)은 중상도리와 종도리 사이에 서로 엇갈려서 걸쳐져 있으며, 귀부분은 추녀옆면 양쪽으로 선자서까래(扇子椽)가 설치되어 있다.
장연(長椽)은 귀부분의 선자서까래(扇子椽)와 전면과 측면 중간부분의 장연(평연)으로 구분되는데, 해체 후 조사한 장연의 개수는 동측 44본, 서측 46본, 남측 35본, 북측 35본으로 동측에 비해 서측이 2본이 많고, 남․북측은 동일하다.
이와 같이 방향에 따라 연목 개수가 다른 것은 연목 간격과 처마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공사 전․후 차이점은 배면에서 47본 중 1분 줄어든 46본이 설치되었으며, 그 외에 나머지는 수리전과 동일하다.
부재상태는 네 방향 모두 부식이 진행 중이나 특히 선자 상부에 대부분 부식이 심한 상태였고, 뿌리 쪽은 일부 썩어 깨지거나 벌어져있는 상태였다.
해체한 후 살펴본 처마서까래들은 전체적으로 부후가 심한 상태로 표면이 거의 썩고 쪼개져 재사용이 불가능하였다. 부식재 현황은 동측이 선자연 11본, 평연 5본이고, 서측은 선자연 16본, 평연 14본이고, 남측면은 선자연 15본, 평연 4본이고, 북측면 선자연 14본, 평연 1본이다.
장연 굵기는 선자서까래와 평연 부리(마구리)쪽에서 차이를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평연에 비해 선자서까래가 몸통이 약간 두껍고, 직재보다는 자연형태로 휘어있는 장재를 사용하였다.
단연은 평연(平椽)과 허가연(虛家椽)으로 구분되는데, 평연은 동․서측 16본씩 모두 32본이 설치되고, 허가연은 서측에 14본씩 모두 28본이 설치되었다. 해체 후 살펴본 단연들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으로, 주로 어칸 내관에 설치되어져 있고, 연목 상단부 고정방식은 마구리 상단부에 구멍을 뚫어 연침을 끼워서 고정시켜 놓았다.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서측 1본만 부식이 심한 상태였다. 허가연은 양측 합각부에 설치되었는데, 부재가 너무 얇고, 휘어진 것들이 대부분으로 동․서측 4본씩 모두 8본이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부연(浮椽)은 각 위치별에 따라 서까래와 동일하게 설치되어져있다. 네 면의 부연들은 약간씩 규격과 기법에 차이가 있는 것은, 몇 번의 수리공사를 거치면서 부재가 혼용되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특히 부연 뒤 길이는 부연착고에서 바깥으로 내민 길이와 같거나 더 길게 뽑아야 구조적으로 안정이 되는데, 뒤 길이가 짧은 것들이 부분적으로 있었다. 부재 교체는 북측과 남측이 비교적 많이 교체되었고, 동측과 서측은 부분적으로 일부만 교체하였다. 부연들의 상태는 부식된 것들이 주로 구 부재였으나, 일부 신부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체부재 현황은 동측 11본, 서측 14본, 남측 32본, 북측 12본은 부식이 심한 상태여서 재사용하지 않고 교체하였다.
그 뒤 1856년에 현감 이승경이 중건(현재의 피향정의 5칸×4칸 규모 및 형태임)하였고 1882년에 또 한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6.25전쟁 뒤에는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어 오다가1) 1957년 면사무소를 보수하면서 원상으로 환원되었다. 최근에는 1972년 주변의 신축공사가 있었고 1974년 단청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물마루로 된 바닥은 지상으로부터 약 1.42m높이의 28개 화강암 주초 위에 놓인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막돌초석을 놓고 이 위에 짧은 돌로 만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창방(唱榜)으로 결구하고 기두위에 주두(柱)를 얹은 뒤 쇠서(牛舌)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식의 구조를 이루었다. 가구는 칠량(七樑)으로 내부에는 고주(高柱)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첨차(檐遮)대공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다시 이 위에 초각된 대공을 얹어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우물마루의 사방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으며 마루로 오르기 위하여 전후의 어간(御間)에서는 난간을 끊어 그 앞에 석계(石階)를 놓았다. 천장은 연등천장이 주류를 이루나 양쪽 협간(俠間) 사이에는 귀틀을 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가설되지 않아 사방이 모두 트이게 되어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자의 하나로 조선중기의 목조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58년 국보 제443호로 지정된바 있으나 1963년에 격하되어 현재는 보물 제289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2003년 12월 26일에 해체 보수되었다. 건물내부에는 이 누정을 거쳐 간 시인 묵객들의 시가를 기록한 편액이 걸려 있으며 그 반대편의 어칸 창방위에는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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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距今 二十一年前(1936년 기준)부터 泰仁面事務所로 使用되어 있다. 春風秋雨幾千年에 繁華의 으슴과 寂寞의 눈물이 그-멧번이던고 참으로 長久한 歷史를 가진 建物이다.…’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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