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양아들이 된 나무꾼
[태인면 설화 22]
서울 사는 홍정승이 아들이 없어.
아들이 없어서 시골로 어 양아들을 정허로 내리왔어.
이 시골같으면 이런 디 같으먼 이 턱골1)같은 디 가서 인자 홍씨가 많이 살지.
그런디 가서 인자 아 서울서 인자 정승이 양아들을 구허로 왔다닌게 걍 그 홍씨들이 뫼아가지고 참 단장도 잘허고 걍 선비 맨들어가지고 다 인사를 허고 그맀는디.
한 홍씨는 가난혀.
근게 아들 하나허고 남편은 없이 사는디 아들이 나무를 갔어.
나무를 가서 나무를 히
갖고 와서
“아 야야! 참 서울서 일가 양반이 양아들을 구허로 왔는디 말여야 다들 시방 가서 인사허고 그런디 너는 이렇게 생겨서 가보도 못허고.”
“어머니 벨 말씀 다 허쇼.
아 있고 없고 상관있다오?
일가간에 나 가서 뵐라오.”
“니가 그 주제를 히갖고 어떻게 간단 말이냐?”
“들으가 볼라오.”그러고 간게
“들어가지 마라.”
“들어가지 마라.”
고, 못 들어가게 헌단 말여.
“뭣이 어찌냐?”고.
“아 나 들으간다고 들으가서 본다.”고 간게.
나뭇꾼복 뜯음서 인사를 힜단 말여.
허고는, “낼 아침이 진지는 집이 와 잡수기라오.”
“오냐.”
나온게 걍 머투래다,
“니가 뭣이로 그 어른 진지를 대접헐라고 그런 소리를 허고 왔냐?”
“아 나 먹는 대로 대접허먼 그만이지 뭐 대접헐 것이 뭐있냐?”
고 그러고 집으로 왔어.
그런게 그런 정승같은 이는 한번 대답을 허먼 변동이 없어.
그런게 인자 그날 아침이 인자 그집 밥을 먹으러 갔단 말여.
먹으러 가서 인자 밥을 먹고 어 간석 가례를 아들 주고 갔어 딱 서울서 인자 야를 주고 가서 하인을 시켜서 인자 가 모셔갔단 말여.
저그 집 다 갖다 놓고 글을 갈친디 안 배여.
하늘 천 따 지 배고는 안 배여.
아 근게 이것 쓸 것이 없거든.
이거 글을 배얀다 말이지 글을 안 배니,
“야 이것 도로 데려다 줘 버려라.”
인자 저그집이를 데려다 줘.
데려다 갖다 놓은게 하인들이 중간에 옴서,
“참 대련님은 말여 용수 찰밥을 꼬쟁이로 파냈어.
아 거가 앉어서 공부
허고 잘 먹고 그럴틴디 아 글을 안 배고 걍 집이로 도로 가니”
“에게 미친 놈들 소리허지 마라.
아 뭐 밸 것이 뭐 있다냐?
하늘 알고 땅 알먼 그만이다.
아 근디 뭘 배워 미친 놈들 그만둬라 임마.
집이가 나무히서 좋다.”
그 집이로 인자 데려다 준게 서울은 인자 하인들이 지내서 서울로 올라 갔어.
올라가서 인자 대감기다 인자 정승기다 인자,
“그 도련님이 감서 뭐라고 헌 말이 있냐?”
“이만저만 이런 소리 헙디다.”
“야 그 도로 데리와라.”
인자 그놈을 데려다 갈쳐.
그놈이 또 정승을 히먹었어.
그런게 사람이 그렇게 이 좌우간 이견이 넓으면 말년이 된다 그 말여.
근게 이것이 못난 놈 같으머는 그 양아들 하나버지 그 정허러온 가도 않혀.
가도 않지만 걍 그 보고 밥도 으 제 도리로 '집이 와 잡수쇼', 했는디 이 잘못헌단게 '나 먹는 대로 대접허믄 그만이지.' 근게 그것이 원칙여.
내가 없어서 뭘 잘 대접헐라는 것도 그저 나먹는 대로 대접허먼 그것이 공이고 그것이 좋아.
그리서 정승 살고 잘 살었드래여.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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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실군 운암면(雲岩面)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침수되어 없어짐.
제보자-손병준|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1985-04-16|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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