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구비전승(삶의 이야기)/설화(說話)

유기장수의 한을 풀어준 강감찬

증보 태인지 2018. 3. 29. 13:46

유기장수의 한을 풀어준 강감찬

 

 

[태인면 설화 8]

유기1)장사 둘이, 둘이 유기를 팔러 댕기는디, 그 어디냐먼 거 여그로 허먼 여기 전라도 그거가 줄포 가는 데가 어디지?

홍덕 [청중아뇨.]

흥덕이여 흥덕. [청중줄포가는데 저쪽으로 가먼 흥덕이고, 이쪽으로 가먼 고부여.]

흥덕, 흥덕, 흥덕 그 어떤 두 영감 마누래가 그 주막쟁이를 늘, 늘 밥을 팔고 사람도 재우고 그래.

그런데 두 유기 장사 둘이 총각이 둘이 유기를 한 짐씩 짊어지고, 그 집으서 자, 근디 영감 마누래가 공론을 했어.

저놈 두 놈을 죽여 버린다치머는 저놈 유기가 전부 우리껏 아니냐.

쥑여서 산에다 묻을 것 없이 저 마판2)을 띠고, 그 집이 말 부리는디, 참 마판을 띠고 마판 밑이다 묻자.”

그려갖고는 두 영감 마누래가 그 유기 장사를 자는 걸 걍 둘을 쥑였어.

둘을 쥑여다가 그 마판 밑에다가 묻어 버렸어.

그 유기는 인제 유가 두 짐
을 즈가 차지했단 말여.

그 사는디, 그래 그때 그 흥덕 원님을 누가 갔느냐 허면은 강감찬이가 갔어.

강감찬 강감찬 선생이 거그를 인제 저때 여그 저 그 흥덕 원님으로 갔는디, 그 주막쟁이가 그 뒤로 아들을 낳는디, 두 형제를 나서 키우다가 한날 한시에 죽어 버렸어.

근게 이게 원통해 갖고는 흥덕 원님한테 인제 송사를 갔어.

원님께 송사 말씀이 있입니다.”

뭔 소리냐?”

지가 이러 이러허고 말두3)에 자식 둘을 낳다가서는 헌꺼번에 그냥 약도 한 첩 쓰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니 이 원통을 어찌 허겄읍니까?”

그려?”

거기 흥덕 원님 부리는 강림사령4)이 있어.

사령, 옛날에 사령 불러 볼 적으 사령인디,

여봐라.

네 저승으 가서 염라국 사자를 잡어 오너라.”

그 강림 사령이란 사람은 무상 출입이여 저승을.

저승으 가서 그 주막쟁이 아들 둘을 잡아 갔단, 목을 잡아 갔다는 그 사자를 잡어 왔거든?

근게 원님이 사자보고,

너그들 어째 무고한 사람에 자식을 둘을 한꺼번에 잡아 갔느냐?”

,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유기장사 둘이 와서 자는데 유기 두짐을 욕심을 내갖고, 두 사람을 한꺼번에 쥑였읍니다.

그려갖고 그것이 원수가 되갖고, 그 집이 자식으로 태어나서 원수 갚니라고 속에 못 백히라고, 한날 한시에 죽었읍니다.”

그럴 것이다.

그러믄 그 시체를 시방 찾을 수가 있느냐?”

. 찾을 수가 있읍니다.”

어디가 있느냐?”


그 집 그 마방을 판다치먼 마방 밑에가 들었입니다.”

, 대처나 아 그 이튿날 가서 판게, 짜란히(나란히) 뉘어 놨어.

근데 여러 해 거시기도 돼도 한나 안 썩었드래야.

고대로 있드래야.

눈이 말똥말똥하니 고대로 있드래야.

게 원님이 그걸 찾아갖고는 인제 참 해원을 시키고선 원통하다는 그걸 허고 그 두 늙은이를 그 거그서 못 있게, 저리 귀양을 보내 부맀어.

그러고 나서는 괜찮단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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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鍮器; 놋그릇장사

2) 馬板; 마구간의 바닥에 깐 널빤지

3) '말년(末年)'의 뜻으로 한 말

4) '강님도령'을 이르는 듯함. '강님도령'은 무당이 위하는 신()의 하나. 서울 남대문(南大門)을 지은 총각 도편수의 이름이라 하는데, 선혜청(宣惠廳) 부군당(府君堂)에 모시었음.

 

제보자-서보익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1985-04-15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