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장수의 한을 풀어준 강감찬
[태인면 설화 8]
유기1)장사 둘이, 둘이 유기를 팔러 댕기는디, 그 어디냐먼 거 여그로 허먼 여기 전라도 그― 거가 줄포 가는 데가 어디지?
홍덕 [청중:아뇨.]
흥덕이여 흥덕. [청중:줄포가는데 저쪽으로 가먼 흥덕이고, 이쪽으로 가먼 고부여.]
흥덕, 흥덕, 흥덕 그 어떤 두 영감 마누래가 그 주막쟁이를 늘, 늘 밥을 팔고 사람도 재우고 그래.
그런데 두 유기 장사 둘이 총각이 둘이 유기를 한 짐씩 짊어지고, 그 집으서 자, 근디 영감 마누래가 공론을 했어.
“저놈 두 놈을 죽여 버린다치머는 저놈 유기가 전부 우리껏 아니냐.
쥑여서 산에다 묻을 것 없이 저 마판2)을 띠고, 그 집이 말 부리는디, 참 마판을 띠고 마판 밑이다 묻자.”
그려갖고는 두 영감 마누래가 그 유기 장사를 자는 걸 걍 둘을 쥑였어.
둘을 쥑여다가 그 마판 밑에다가 묻어 버렸어.
그 유기는 인제 유가 두 짐
을 즈가 차지했단 말여.
그 사는디, 그래 그때 그 흥덕 원님을 누가 갔느냐 허면은 강감찬이가 갔어.
강감찬 강감찬 선생이 거그를 인제 저때 여그 저 그 흥덕 원님으로 갔는디, 그 주막쟁이가 그 뒤로 아들을 낳는디, 두 형제를 나서 키우다가 한날 한시에 죽어 버렸어.
근게 이게 원통해 갖고는 흥덕 원님한테 인제 송사를 갔어.
“원님께 송사 말씀이 있입니다.”
“뭔 소리냐?”
“지가 이러 이러허고 말두3)에 자식 둘을 낳다가서는 헌꺼번에 그냥 약도 한 첩 쓰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니 이 원통을 어찌 허겄읍니까?”
“그려?”
거기 흥덕 원님 부리는 강림사령4)이 있어.
사령, 옛날에 사령 불러 볼 적으 사령인디,
“여봐라.
네 저승으 가서 염라국 사자를 잡어 오너라.”
그 강림 사령이란 사람은 무상 출입이여 저승을.
저승으 가서 그 주막쟁이 아들 둘을 잡아 갔단, 목을 잡아 갔다는 그 사자를 잡어 왔거든?
근게 원님이 사자보고,
“너그들 어째 무고한 사람에 자식을 둘을 한꺼번에 잡아 갔느냐?”
“예,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유기장사 둘이 와서 자는데 유기 두짐을 욕심을 내갖고, 두 사람을 한꺼번에 쥑였읍니다.
그려갖고 그것이 원수가 되갖고, 그 집이 자식으로 태어나서 원수 갚니라고 속에 못 백히라고, 한날 한시에 죽었읍니다.”
“그럴 것이다….
그러믄 그 시체를 시방 찾을 수가 있느냐?”
“예. 찾을 수가 있읍니다.”
“어디가 있느냐?”
“그 집 그 마방을 판다치먼 마방 밑에가 들었입니다.”
아, 대처나 아 그 이튿날 가서 판게, 짜란히(나란히) 뉘어 놨어.
근데 여러 해 거시기도 돼도 한나 안 썩었드래야.
고대로 있드래야.
눈이 말똥말똥하니 고대로 있드래야.
게 원님이 그걸 찾아갖고는 인제 참 해원을 시키고선 원통하다는 그걸 허고 그 두 늙은이를 그 거그서 못 있게, 저리 귀양을 보내 부맀어.
그러고 나서는 괜찮단 말여.
- 끝 -
------------------------------------------
1) 鍮器; 놋그릇장사
2) 馬板; 마구간의 바닥에 깐 널빤지
3) '말년(末年)'의 뜻으로 한 말
4) '강님도령'을 이르는 듯함. '강님도령'은 무당이 위하는 신(神)의 하나. 서울 남대문(南大門)을 지은 총각 도편수의 이름이라 하는데, 선혜청(宣惠廳) 부군당(府君堂)에 모시었음.
제보자-서보익|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1985-04-15|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
'제9편 구비전승(삶의 이야기) > 설화(說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봉(1) 영감과 전라감사의 화해 (0) | 2018.03.29 |
---|---|
원귀(寃鬼)를 쫓아낸 신부 (0) | 2018.03.29 |
육효자전(六孝子傳) (0) | 2018.03.29 |
율곡선생의 선견 지명 (0) | 2018.03.29 |
은하 수건 하나와 호침 세 개 (0) | 2018.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