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대왕의 잠행 (1)
[태인면 설화 71]
이씨 19대 왕 숙종 대왕이거던.
19대 왕이 숙종 대왕.
숙종 대왕 시에 한 선비 하나가 가난혀.
근게 공부를 허는디, 옛날에는 지금인게 뭐 전기가 있어 가지고 불도 잘 맘대로 썼지만 옛날에는 뭐 그런 것이 있어? [조사자:그러지요.]
짐불도 무서서 저 솔깽이를 따다가 불을 펴놓고 거 연기한걸라 나는 그 통중으서 그 책을 보고 공부를 허고 있다.
근게 날마다 공부를 허고 있는디 숙종 대왕이 아무일도 없고 이런게 저녁 밥을 자시고는 그 장안 안에 장안 안에 그 자맥(잠행)을 다녀.
이 골목 저 골목, 누가 어트게 허는 것인가 허고 인제 염탐을 허러 댕기는디 다 자는 뒤여닌게 인가가 없지.
아, 한 골목을 가 본게 불이 뺀허니 그 거글 가보닌게 집이 아니라 오막살이 참 다 낮으나 낮찬데 아 그냥 창문 구멍으로 가만히 뚫
고 보인게, 불한질나 솔깽이로 피서 참 내한질나 캄캄헌디서 그 통중으 책을 보고 있거든.
하도 참 가긍히서 들어갔어.
아 들어가서 임금인지 누군지 모르제.[조사자:그렇죠.]
들어가서 가만히 앉어서 한 맥을 보인게, 들오라고만 힜지, 암말도 않고 책만 봐.
근게 책을 놓고 가만히 있어.
책을 펴본게 아 글씨랑 쓴게 참 문쟁이여.
'옳다, 이 선비가 참 글을 잘 허는구나'허고 꼭 유념혀 놓고, 아 그 이튿날 와봐도 여전히 그렇게 공부를 허고 있네 아 근게 물었어.
“아이, 선부 아이 조께 글이랑 좋고, 이러며 과거 한번도 안 봤더냐.”
“안 봤입니다.”
근게 선비 하나를 쓸라고 별과를 주기로 마음을 먹고는 임금이 운자를 딱 내줌서 아무날 내 인제 부리면 와서 이 문자대로 글을 바치라고 이렇게 시겼어.
아, 근게 여러 날이지 근게 여러날이 되야가지고 했지.근게,
“그리야고.”
날을 딱 정혀주고 인제 가는디 아 그날이 뽀독뽀독 당혀서 갈라고 봇짐 다 메고, 의복도 다 깨깟이 빨아 입고 챙기고 있는디, 자그 저 당숙되는 이 하나가 글이 또 좋아.
근게 그 당숙보고 가자고 힜어.
며칟날 과거를 별과를 준다니 가자고 헌게 '그려야'고 근게 저그 당숙이 가자고 근게 대답히논게, 그 당숙 오기를 지가르고 밥 먹고 가만히 앉었는디, 아 당숙이 옥 시간이 건즘된게, 아 느닷없는 배가 아퍼.
막 궁그른게 아 갈 수가 있는가?
근게 당숙이 와서 '가자'고 와서 아 보닌게 아이 배가 아프다로 둥그니, 도저히 함끄(함께)는 못 가게 생겼거든.
그러나 어쩔 수 없어.
띠놓고는 뭐 시간을 어길 수도 없거, 띠 놓고는 과거를 보러 갔어.
근게 가서 그 글자 운자대로 글을 써 올린게, 참 글을 보인게, 그 자기가 지은 운자라 뭐 모를거여.
게 물팎에다 딱 너놓고,
“어전 입시해라!”헌게, 사람을 본게 아녀.[일동:웃음]
아, 저 별일이다.
물었어.
연유를,
“그 어서 왔으며 시 이름이 뭣이냐?”
“암디 이러 저러헌 아무갭니다.”
“그리야고.
그 아무개허고 어트게 되냐?”
“예, 그게 제 당질입니다.”
“그이는 어쩌서 안 왔냐?”
“여그 올라다가 걍 배가 느닷없이 아파서 못 왔읍니다.”
그럴법 허거든.
“아, 그러겄다.”고.
근게 그이만 장원급제를 주었어.
장원급제를 주고, 참 닐리야 풍악을 허고 왔는 와서 잘 사는디, 아 이 선부는 제 입 못 발라 배고파서 당초 기강을 면치 못허고 그런단 말여.
그런게 아 그 뒤에 또 와봤어.
그 글공부만 그대로 여전히 허고 있단 말여.
하도 불쌍혀서,
“이 선부, 나 허란대로 헐라냐?”
“그렀겄다.”고.
“평양 검사한티 아무 때 가라고.
가먼 그냥 말던 안 헐 것이요.
그런게 가라고.”
근게 글자를 몇자 써서 봉서다가 딱 줌서 갖다 오라고 근게 그 대왕이 시기는 대로 평양 감사한테로 가닌게 아, 참 식사대접이 잘 대접허거든?
얼매를 먹고 있던지 먹고 있는디, 제일 집안 생각나서 오래 또 있을 수가 있는가, 집이 오래있던 못 허고 하루는,
“갈란다.”
“아, 더 쉬었다 가시라.”
고만 자꾸 히쌌거든.
“에이 못 있겄다고 갈란다고.”
헐 수 없이 오는디 말 여섯 열 마리를 챙겨서 참 비단것이로 [기침] 비단것이로 걍 말 열 마리다 혀서 딱 실어가지고 하인 열명 딱 히서 보냄서.
“가지고 가 약소허나 갖고 가 쓰시라.”
고 준단 말여.
그놈을 갖고 왔으먼 집으로 왔으먼 괜찮을란가 모른디, 아이 소질헌 선부가 집이 와야 열 마리 밀디 장소가 있는가.
열 마리 접대헐 양식이 있는가 이거 걱정이거든.
집이 와야 어떻게 헐 수가 없어.
아 근게 건짐 다 와서는 어느 주막에 당도헌게 '이거 펴놓고 가라'고, 아 근게 사람들이,
“아, 그럴 수가 있읍니까?
댁에까장 가시야제.
그럴 수가 없다고.”
그런게 기어이 기어이 등 놔서,
“가시라고, 나 연 다왔은게 여그 띠 놓고 가시라고.”
아, 그날 딱 헐 수 없이 띠놓고 돌려 보내 버리고 저녁으 자는디, 아 그날 저녁으사말고 도적놈이 들어서 걍 짤뚝 묶어 놓고 막 거그 있는거 없는거 싹 쓸어서 가져가 버렸단 말여.
[조사자:(웃으면서) 예, 아그 참.] 그러니.
[조사자:팔자 기박헌 분이요.] 실컷 히갖고 온것 다 뺏겨 버리고 빈주먹만 탁 쥐고 있단 말여.
집에 와서 참 곰곰히 생각헌게 기냥 속으로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허고 죽을 홧병이 들었어.
근게 눴은게 그 숙종 대왕이 또 한 번 와서 보고는,
“아, 갖다 왔냐?”고.
“예, 갖다 왔읍니다.”
“아, 어찌던고?”
“아, 그 채단(綵緞)을 말 열발에다 시겨서 아 하인 열허고 히서 말 열필허고 히서 주걸래 같이 암디 주막에다 댔읍니다.
집이 와야 다 맬 장소도 없고, 그 하인들을 대접헐 뭣도 없고 히서 그냥 거그다 띠놓고 도로 보냈읍니다.
아 그런디 그날 저녁에 도적놈이 들어서 싹 쓸어 그냥 가져 갔읍니다.
가져가서 그일 저일 생각헌게 그냥 속으로 울화병이 나서 참 내가 이러고 있읍니다.”
“에이, 이 사람 같으니, 그렇게도 몰랐냐고, 그렇게도 몰랐냐고.”
그러고는 걍 감서 곧 돌아가서는,
“에이, 그 선부 복도 말경(末境)이드라.”
이러고 인제 조종에서 그 얘기허고는 얼맨게 그 병으로 죽었어.
걍 그 선부가 울화병나서 죽은게, 나중에 죽었다고 보고헌게,
“에, 뵈기도 징그럽다.
그놈 귀신도 못오게 저 압록강에 가서 띄 보내라!"[일동:웃음]
저 없는 놈은 나라에서 써 주는디도 못 산다는 말이 그 말이여.
- 끝 -
제보자-양판동|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시1985-04-18|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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