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구비전승(삶의 이야기)/설화(說話)

서울에서 부자 여자 얻어온 심부름꾼

증보 태인지 2018. 3. 29. 15:43

서울에서 부자 여자 얻어온 심부름꾼

 

 

[태인면 설화 9]

왜정 때여, 왜정 땐디 전라도 짐계(김제) 짐계 있잖아 짐계, 어떤 사램이 일본 사람 그 전답 그 전답을 받아 가지고 사업을 했어.

근대는(그때는) 명지 바지 저고리 입고, 새로 두루매기에다가 기또 구스라고 있거든.

말궁둥이 가죽으로다 구두 맨드는 기또구두.

기또구스 그랬그든, 일본 말로.

그놈 신고 응, 서울을 갔어.

서울을 간께, 가서 일을 다 보고는 인제 오는데, 남대문 역에 와서 기차를 타고 인제 앉었이니까, 아 그 어떤 부인이 하나 가방을 좋은 놈을 [청중가방을 들고 왔어?] 찻깐을 쏙 들어와.

들어오드만 그 사람 젙에 와서,

여 미안허지만 좀 같이 좀 앉읍시다.”

근게 비껴줌서,


앉으시오.”그런께,

어디끄정, 손님은 어디끄정 가시오?”

, 내 대전끄정 가요.”

나도 대전끄정 갈랍니다.”

그 소리를 들은게 겝이 나그든?

겝이나.

이년이 무슨 때기꾼인가, [일동웃음] 요그 도둑년인가, 이거 쓰리꾼인가 알 수가 읎어.

겝이 난다 말여.

자기는 인자 돈 냥이나 주머니 들고 그런게, 그런 여자가 같이 가자고 젙에 이게 붙은게 걍 겁이 난다 말여.

, 자꾸 여자는 얘기를 혔쌀라고 그러는디, 얘기 듣고 안 듣고 걍 대전끄정 왔어.

와갖고는,

아이, 대전끄정 오신다더니 어찌 안내리시우?”

내가 좀 더가서 짐계끄정 가서 내릴라요.”

호남선을 탔넌디.

“[웃으면서] 그럼 나도 짐계끄정 가야겄소.”

, 무섭네. [일동웃음]

따라 붙은게 더 더 무숴.

아 즈그 집이 가먼, 즈 마누래가 또 첩년 읃어 갖고 왔다고 지랄허까 무섭고, 저년이 무슨 때꾼인가 허고도 무섭고, 아 이거 양가지 무섭단 말여.

그래 짐계역에 가서 내리닌게 같이 또 쪼르르 따라 내린단 말여.

글자 날이 으찌 무심허니 어둘라고 허고 인제 그전이 요만 때나 쪼끔 더 됐는가 그렇게 됐는디, 아 이거 겝이 난다 말여.

그 어디로 갈라냐?”.

그런게,

“[웃으며] 내가 어디로 가겠소.

당신 따라 가야지.”[일동웃음]

아이, 이른게 아 이거 더 무섭네.

아 그려 인자 헐 수 없이 띠내 버리지 못하고서, 거머리 같으먼 딱 띠서 다른 데로 띵이(던지)겄는데, 사램이 따라 오닌게 띵길 수도 없고. [청중근게 하인네 집이다가 맽기 버맀어?]

그래서 인제 가 가다가 즈그 동네가 안동네가 있는디 그 못미처 가서 오두
막집이 하나 있는데 거그는 그 사램이 심부름도 시기고 인제 생이꾼이여.

그 사램네 집이 가서,

아무개 집이 있는가?”

그 바깥 남자는 없고, 안주인이 있어.

, 어디 가고 없읍니다.

서울 가서, 가셨다더니 인자 오시요?”

, 인자 오네.

그런디 여 여이 서울서 오는 손님인디 이 부인 좀 재와 보내소이.”

그러고 핑 가버리네.

아 그런게 거그서 아 숙소를 장만 혀주는디 또 따라 갈 수는 읎고, 체면에.

여그 내삐리고 당신 따라 갈라우 헐 수가 읎단 말여.

그걸 들어갔어.

들어간께 그 집이가 으치게 가난허게 살든지 시방은 이런 자릿 때기도 있지마는, 좀 부잣집이가 얻어다 깔지만, 그전에는 그런 것이 읎고 가마니 때기에다 깔고 이러고 살어.

웃묵엔 가마니 때기 깔아, 갈자리를 깔고 이러게 사는디, 갈자리 깐디다가 인제 자리를 정허고,

여그서 자시요.”

거그서 인제 자게 되야.

거그서 인자 자는디, 저녁밥도 굶었지 인자.

아 얼매쯤 한 밤중이나 됐는디 '크흠' 글고 들오거든?

아무개 아빠요?”

.”

아이고, 요 저 서울서 오신 손님이다고, 아무개 양반이 여그서 자고 가라고 혀서 지금 들이 보낸디, 여그서 손님 주무신디, 안손님인게 가 사랑가 자고 오쇼.”

근게 여자가 자다가,

누구요?”

, 우리 애기아부라우.”

들오라구쇼.

들오라고.”

근게 인제 들오라고 헌게 들어갔어.

들어가서 인자,

남녀가 유별(有別)헌디 미안헙니다.”


, 괜찮어요.

들오쇼.”

들어간게, 들어가서 인자 이양 이양허다가서는,

거 주무시요.

나는 사랑방으 가서 잘라요.”

옛날에는 사랑방이 있었거든, 노인당이 읎고, 시방 같으믄 노인당으 가 잘란다고 허지만, 사랑방으 가 잘라고 헌다고 헌께,

아이 뭐 집두고 사랑방으로 자러 가, 여그서 잡시다.

나는 나 저그 저 여그 자고, 여그 자고 잡시다.”

집서 자라고 허네.

근디 거그서 두러눠서 자지.

잔께 여자가 자다가서 다리를 이렇게 남편기다 걸치네. [일동웃음]

, 그 잠꼬대허는 줄 알고서 또 들어서 이렇게 니리놨어.

니리노먼 쪼끔 있다 아 또 그러네.

'이거 무슨 수가 있는 갑다.' 허고서는 아 시르르 보듬어서 궁둥이랑 더듬은게 가만 있어.

가만 있어.

아 근게 남자가 가만둘 수가 있는가?

아주 젊은 각시가 글고 있는디, 이리 빗긴게 말 잘 들어줘. [일동웃음]

, 일을 안추맀는가?

아 인제 이놈도 사랑방에만 늘 댕기고 마누래 천신도 못하고 댕기다가 굶주린 판이고, 이건 홀어마니고, 그런게 아 주린 간장으 만난 된장이라고 참 화합이 돼서 참 기가 맥히게 존 세상을 지냈지. [일동폭소]

, 그래서 인제 재미있게 잤다 이거여.

자고서는 아침에 이제 깼는디 이 사내놈이 가만히 생각혀본게, 아 그 낯모른 여자라도 어, 디리고 잤는디 말여.

아칙에 조반이라도 믹여서 보내얄 것 아녀, 경우가.

사내가 돼갖고, 정지로 나가서,

아무개 엄마 이리 좀 나오쇼.”

그 나간께,

아이 저 부인네가 잤는디 그냥 굶겨서 보낼 수가 있는가?

가서 어디 가서 쌀을 좀 취갖고 오소.”

아이그 여보쇼.

박짝(바가지)이 시방 얼매다우.”

취다 묵은 박짝이 많은게 취러(꾸러) 갈 데가 읎단 말여. [기침]

나무가 있는가, 양식이 있는가, 짐치(김치)가 있는가, 장이 있는가, 뭐 아무 껏도
읎어.

맬쩡헌 놈이 가만혀.

일로 가난혀.

, 그 소리를 듣고는 여자가,

이리 좀 들오쇼 예?”

들어왔지.

들온게 그땟돈 쌀 한 가마니 십 원했어.

십 원짜리 하나를 주그든?

그런게, 가서 쌀 한 말 팔고, 괴기 사고, 아이 이거 저 뭣이냐 나무 사고, 오만 거 다 샀어.

짊어지고 여 와서 인제 조반을 히 먹었단 말여.

히 먹고 나서는 여자가 헌단 말이,

당신 나하고 나하고 엊저녁이 내우간이 안됐소?

그러니 이 집에는 우리가 살 수 읎어.

집을 어디 하나 뜻봐서 하나 사지요.”

, 그시먼 집이 여기 참 좋은 집이 있고, 논 논도 있고, 밭도 있고, 논이 한 삼십 뜨랑1) 되는 논이 있고 집이 상하채가 번듯허니 존 놈인디, [청중판다고 내놨드라고?] 그 내놨드라고.”

그놈 가 흥정허라고.”

아따, 이거 지미, 겁이 덜컥 나지.

아 그 돈을 걍 한 주먹 주네.

가 기약걸고 오라고.”

그 뭔 수가 있냐먼 서울 사는 사람인디, 홀어머니가 됐어.

홀어마니가 됐는디, 홀어마니가 집 있으먼 사고가 붙는다고. [청중양반의 자식이 된 메누리여. 양반의 자식.]

그냥 돈을 한 가방 줘서 내보낸 거여.

근디 첫 대왈2) , 그 뭐여.

시루 두루메기 입은 사람을 만났는디 그놈하고 떨어져 버려.

가서는 그냥 이놈하고 붙어 버렸단 말여.

근게 그 집 사고 그려갖고 인자 살림살이 장만하고 인자 이사 굿을 치는디 열두 동네 사람이 뫼아 갖고는 웅장웅장 친단 말여, 굿을.

아 웃대불 놓고, 걍 큰돼지잡고 소도 다리로 막 사오고 그냥, 사오고 걍 직씬직씬 걍 굿을 치는디, 그 인자 디리고 온 사람, 서울서 같이 온 사람은 그 집이 갖다주고 어디 가 버맀어.

어디 출타 갔다가서 인제 그날 저녁에사 온게, 바로 그 앞집이여.


, 냅다 굿을 치고 야단이그든?

아이 저 굿소리가 어서 난가?”

아이구, 그저 우리 거 심부름꾼 있잖어, 그 아무개.

그 사람이 서울서 서울여자 읃어갖고 부자여자 읃어갖고 말여, 집 이놈 샀어.

사고 시방 논도 그놈 다 샀다네.”

“[우는 소리로] 오매, 내 복을 내 복을 내 복을.”[일동웃음]

빙이(병이) 나갖고 죽어 버맀어.

그려갖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잘 살드라네. [일동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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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이나 밭의 넓이의 단위. 한 말의 씨를 뿌릴 만한 넓이. 각 지마다 다른데, 대개 논은 150300, 밭은 100평 내외임.

2) '첫 대면(對面)'의 뜻으로 한 말임.

 

 

제보자-서보익채록지-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채록일-1985-04-15제작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 처-한국구비문학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