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절 백제의 취락
삼국 중 주택에 관한 자료가 가장 빈약한 나라가 백제이다. 북사 동이전 백제 지국조에 보면 “음식과 의복은 고구려와 대략 비슷하고 부모나 지아비가 사망하면 3년 상(喪)을 치렀다. 기후는 온난하고 주거지는 대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살펴보면, 초가(草家)와 기와집(瓦家)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기와집은 불교(佛敎)의 전래(傳來)와 함께 절을 건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민간인의 기와집은 불교신자로서 절 가까이 사는 사람의 집에서 볼 수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제2권(卷第二) 기이(紀異) 제2(第二)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조에는 “사비의 언덕에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었는데 백제왕이 왕흥사에 예불하려고 할 때 먼저 이 바위 위에서 부처님을 망배하였더니, 이 돌이 저절로 따뜻해지므로 이를 돌석(突石)이라고 하였다.”라는 것으로 보아 백제 말기에는 온돌구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고구려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던 ‘장갱’이 백제의 주택에까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봄직하다.
그리고 온돌방과 세 칸 집으로 큰 방과 작은 방 그리고 부엌으로 구성된 것인데, 지금 있는 민간의 기본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식수(食水)도 얕은 우물을 파서 이용하였고, 축사(畜舍)와 측간(側間)은 본채에서 떨어져 따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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