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지리(삶의터전)/제5장 태인의 인구와 취락

제 2절 취락(聚落)

증보 태인지 2018. 1. 18. 22:25

2절 취락(聚落)

 

   취락이란 원래 정착(定着)을 뜻하는 말이어서, 인류가 생활하기 위해 지표를 점거한 주거양식과 인간의 사회생활의 기반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 말로 우리말로 마을·벌이라고 하며, 한문화권(漢文化圈)에서는 촌락(村落부락(部落향리(鄕里) 등과 함께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을 보면 취락은 회()의 의미를 안고 있다. 이것은 한 곳에 모인다.’는 뜻으로 군집(群集)의 의미와 같다.

   취락의 본질적 의미는 공간의 관점에서 가옥이 모여 있는 집촌(集村)1차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나, 요즘은 산촌(散村)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취락에 함축된 또 하나의 의미는 염()이다. 이것은 역사발전과 더불어 누적되어 있는 취락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시간적 의미를 안고 있다.

   여기에 고촌(古村)이 취락 본래의 의미로 한정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신촌(新村)까지 포함한다. 취락의 구성 요소로는 인간이 거주하는 가옥, 물자 생산과 공급 장소로서의 경지, 농가와 인간과 물자의 소통을 담당하는 도로 등이 주된 것이다.

   농가와 마을 사이에서 인간과 물자의 소통을 담당하는 중심적인 것은 가옥(또는 인가)이 되므로 이들의 집합체를 좁은 의미의 취락으로 본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인간생활과 관련된 생활 무대 전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취락에는 가옥은 물론이고, 경지·도로·수로·창고·울타리·공한지 등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취락의 유형에는 도시적인 것과 촌락적인 것이 있다.

   취락의 범위를 촌락에 한정시킬 때 기준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촌락은 입지하는 장소에 따라 평야에 있는 것을 야촌(野村), 해안에 있는 것을 해촌(海村), 산간에 있는 것을 산촌(山村)으로 나눈다. 둘째, 주민의 생업 기반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농업에 둔 농촌(農村), 어업에 둔 어촌(漁村), 임업과 목축에 둔 산촌으로 구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두 개의 지표(指標)를 혼용하여 농촌·어촌·산촌으로 구분함으로써 혼선을 빚게 된다.

   평지의 촌락 중에는 주민의 대다수가 경제생활의 기반을 농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야촌과 농촌은 동의어로 사용된다. 또한 산지의 촌락 중에는 경제생활에 임업의존도가 크지만 농업을 겸하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촌으로 통용하기도 한다. 산촌은 평지의 농촌과는 달리 주로 산허리의 사면과 하곡(河谷)의 좁은 장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형과 기후의 제약을 받아 25호의 농가가 점재(點在)하므로 형태상으로 농가가 분산된 산촌(散村)이 나타난다.

   해안가의 촌락 중에는 어업이 주민의 생업기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어촌으로 표현한다. 농촌·산촌·어촌은 주민의 생업기반과 기능에서 차이가 있으나, 삶의 터전을 토지에 밀착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특정지역을 선택하고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는 경우에 가능하므로 보수성이 강하며, 주민 상호간에 결속력과 유대를 맺고 있는 것이 도시와 다른 점이다. 이러한 속성은 자연히 생활양식에 반영되어 지방색(地方色)이라는 고유성격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촌락은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서 이촌향도(離村向都)에 따른 인구이동이 이루어짐으로써 인구 과소화에 직면하고 촌락공동체는 해체되며 주민 상호간의 결속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촌락의 입지는 그 지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생활의 향상과 후손의 번영을 기하기 위해 인간생활에 알맞은 최적입지(最適立地)를 선택하게 되며, 이를 위해 식수·지형·기후 등의 자연조건, 교통·방어·인습·경영 등의 사회·경제 조건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조건이 특정 장소에 충족될 수 없으므로 취락의 입지는 당연히 비중이 큰 조건이 충족되는 장소로 결정된다. 이것을 비용단위로 환산할 때 음료수가 가장 중요한 입지조건이다. 물은 식수·관개 등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이므로 용수사정이 좋은 강변, 천변(泉邊)에는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해 왔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경지조건이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해 주는 장소가 바로 경지이며, 지형의 기복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서 생산량은 다르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경지를 생리(生利)조건으로 내세워 '나라 안의 비옥한 땅은 남원·구례·성주·진주 등이며, 이보다 못하지만 차령산맥 이북, 한강 이남도 역시 비옥하다'고 했다.

   취락은 기하학적 형태, 즉 주축을 이루는 구성요소의 배열상태에 따라 괴촌과 열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괴촌은 자연발생형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옥·도로·경지 등의 구성 요소가 무질서하고 불규칙하게 배열된 형태를 괴촌(塊村)이라하며, 열촌은 가로·수로 등을 따라 질서정연한 형태를 취한다. 우리나라의 촌락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누적된 것이 많으므로 불규칙한 괴촌이 일반적이다.

   한편 최근에는 김제와 옥구 등의 간척지에 열상(列狀)의 농가 배열을 보이는 열촌(列村)이 나타나고 있다.

   가옥의 소밀 정도에 따라 특정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이 집촌(集村), 흩어져 있는 것이 산촌(散村)으로 나눌 수 있다. 음료수가 불량하고 경지가 비옥하며, 혈연적 결집력과 외적 방어를 필요로 하는 곳에 집촌이 탁월하다. 산촌은 가옥이 분산되어 있는 취락으로 집촌과 상대적 개념을 갖는데 집촌이 외적에 대한 방어와 협동을 위해 특정장소에서의 집단생활이 요구되는 것에 비해 산촌은 안녕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분산된 소유 경지에 밀착되어 고립생활을 하는 것이다. 고립생활은 자급자족의 생활기반이 확립되었을 때 가능하므로 음료수·경지·연료 등의 조건이 고려되어야 하며, 이들 조건의 중요성과 우선순위는 지역이 가지는 지리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태백산지와 같은 지형 제약이 크거나 과수원과 같이 농업 경영의 합리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산촌이 탁월해진다.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구분해 보았을 때 집촌은 경작을 위한 협업체계와 외적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안고 있지만 농가와 경지 간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와 더불어 비용과 시간을 빼앗긴다는 단점이 있다. 산촌은 농가가 자기들이 경영하는 경지 중앙에 놓이게 되므로 농업경영의 합리화에 장점이 있으나, 가옥이 산재되어 있으므로 인간생활이 고독한 취약성을 안고 있다. 또한 각종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수반되는 비용도 큰 작용을 하게 된다. 따라서 선진국은 생산의 효율성과 사회복지의 증진을 위해서 자연발생적인 집촌을 계획설정형(計劃設定型)의 촌락으로 재편성하고 있으며, 선진화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에서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현실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적 질서(mathematical order)에 바탕을 두고 촌외로 분산된 경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통합하고, 농가와 경지가 밀착된 소촌(small size of rural)을 육성해 지역중심지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계획설정형의 촌락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이것을 촌락재편성사업이라 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도 농촌선진화를 위한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