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문화유적(삶의 자취)/기타 비지정 문화재

각종 정자(亭子)와 루(樓)

증보 태인지 2018. 5. 31. 09:36

   진남루(鎭南樓)

 

   객관(客舘)의 문루이다. 현감 유근이 다시 고치고 지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1)

   주: 유근 - 1713(肅宗 39, 癸巳) 91715(肅宗 41, 乙未) 12貶下(선생안 참조)

                1713(肅宗 42) 탁지부(度支部: 財務部)의 보조를 받아 현재의 피향정를 중건하였음.

 

   태인현(泰仁縣) 원태인현(元泰仁縣) 객사(客舍)의 문루(門樓)이었으니 현감(縣監) 유근(柳近)이 중건(重建)하였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진남루는 태인현지(泰仁縣誌, 1786년 간())에 기록되어 있는 누각(樓閣)이다.2)

 

 

 

   관덕정(觀德亭)

 

   객관의 서쪽에 있다. 현감 이익저(李益著)가 세우고, 현감 조정(趙晸)이 다시 고쳤다.3)

   주: 이익저(李益著) - 1685(肅宗 11, 乙丑) 121690(肅宗 16, 庚午) 1見罷

       조정(趙晸) - 1757(英祖 33, 丁丑) 31759(英祖 35, 己卯) 9移拜永柔,

    태인현지(泰仁縣誌)를 편찬함.(선생안 참조)

 

   진남루(鎭南樓)의 서쪽에 있었으니 오래전 부터(往昔) 태인현의 사정(射亭, 활량들이 활쏘기르 연습하는 활터에 세운 정자)으로 현감(縣監) 이익저(李益著)가 세웠으나 지금은 없다. 대동지지(大東地志)누정(樓亭)에 기록되어 있다.4)

 

 

 

   함담정(菡萏亭)

 

   함담정(菡萏亭) 객관 동쪽에 있다. 현감 장우규(張友奎)가 세웠다.5)

 

   진남루(鎭南樓)의 서쪽에 있었으니 현감(縣監) 장우규(張友奎)가 창건한 것

   인바 임진병화(壬辰兵火)로 소실(燒失)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누정(樓亭)에 기록되어 있다.6)

 

 

 

   권상루(勸相樓)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거산

   태인읍(泰仁) 남문외(南門外)에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는 누각(樓閣)이다.

   권상루는 1867년에 발행한 정읍현지(井邑縣誌)에 기록이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읍()에 있으며 남관(南官) 외문(外門)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7)

 

 

 

   일아정(日哦亭)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井邑市 泰仁面)

   태인면 원읍내(元邑內)에 있었으니 현감(縣監) 이익저(李益著)가 만든 정자이다. 지금은 없는 정자이다.8)

 

 

 

   효우당(孝友堂)

 

   태인향교(泰仁鄕校)의 동쪽(東便)에 있었으니 오래 전(往昔)에 송성인(宋姓人)이 그 동네(其坊)에 거주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생활(孝友相全)을 함으로 그 집(住家)을 일컬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명성이 잊힘(世久失名)에 따라 현감(縣監) 조상우(趙相愚)가 그 옛터(遺墟)에 당()을 중건하였으나 지금은 없다.9)

 

 

 

   능허각(凌虛閣)

 

   태인면(泰仁面) 거산리(居山里)에 있었으니 450 여 년 전(1936년 기준)에 남양(南洋) 홍안세(洪安世)가 세웠으나 지금은 없다.10)

 

 

 

   삼락정(三樂亭)

 

   태인면(泰仁面) 태성리(泰成里)에 거주(居住)하는 태인(泰仁) 거사( 居士) 박영오(朴泳午)1916(距今 20年 前, 1936년 기준)에 성황산(城隍山) 중턱(中腹) 선초동(仙樵洞)에 지은 건물(建物)이다. 어지럽고 소란스런 속세(囂塵)를 떠나 산수풍월금서(山水風月琴書)에 낙()을 붙이면서 살아간다는 의미로 삼락정(三樂亭)이라 하였다.11)

 

 

 

   송석정(松石亭)

 

   태인면(泰仁面) 태창리(泰昌里)에 살고(住居)있는 태인(泰仁) 거사(居士) 김용곤(金湧坤)1930(距今 6年 前, 1936년 기준)에 거산리(居山里) 뒤쪽 산기슭에 세운 정자이다. 정신(精神)에 고통(苦痛)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塵世)의 풍조(風潮)에 물들여지는 것(俗染)과 도시(城市)의 번화(繁華)함을 떠나() 유시등기(有時登其)하여 시()를 짓고 음주(飮酒)를 즐긴다는(詩樽으로 做樂한다.)의미이다. 김용곤(金湧坤)은 천성(天性)이 온화하고(溫容, 따뜻한 얼굴) 현실(現世)의 번화(繁華)와 성시(城市, 人家가 많은 번화한 곳)의 진애(塵埃, 띠끌과 먼지)를 떠나 산수(山水)를 즐기는 취미(趣味)를 가졌고 시를 읊고(詩律) 세고(世慮, 세상 생각)를 소일(消遣,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하는 속세를 떠나 숨어서 지내는 자(隱逸家)이다.

 

   푸른 소나무(靑松)가 우거진 돌담(石壁)으로 사방으로 둘러싸인 곳(四圍)에서 소나무()는 어떠한 난관이나 어려움에 처해도 결코 굽히지 않는 높은 절개(凌霜高節)를 나타매고, ()은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음(靜而不動)을 의미(意味)하는 송석정(松石亭)이라 하였다.

   이 정자는 지금은 없다.12)

 

 

 

   청현루(聽絃樓)

 

   현감 최재흥(崔載興)이 처음 세우고 지은 창건기(創建記)가 있다.13)

   주: 1753(英祖 29, 癸酉) 1211754(英祖 30, 甲戌) 4陞拜持平(선생안 참조)

 

   『대동지지(大東地志)누정(樓亭)에 기록되어 있다.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지금은 없으나 현감(縣監) 최재흥(崔載興)이 세웠다.14)

 

 

 

   파향정(坡香亭)

 

   『대동지지(大東地志)누정(樓亭)에 기록되어 있다.

 

 

 

-----------------------------정읍군지에 나오지 않은 곳

 

   관풍정(觀風亭)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井邑市 泰仁面)

   송암(松菴) 송남면(宋南勉)이 소요(逍遙)하면서 조용히 살던 곳이다.

 

 

   일성정(日成亭)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井邑市 泰仁面)

   현감(縣監) 이익저(李益箸)가 세운 것으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대원정(大願亭)

   소재지 :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건축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정자로 읍원정(邑遠亭)과 이웃하고 항가산 입구로 다천사(茶泉寺)가 바로 보인다.

창녕(昌寧) 조씨(曺氏) 대원행(大願行) 보살은 아버지 손섭과 어머니 김덕인 사이에 음력 1900(庚子年)229일에 출생하여 남편 은귀겸(殷貴兼) 사이에 옥순(玉順) 방우(方雨) 수복(守福) 두표(斗杓)를 두고 음력 1986(丙寅年) 518일에 돌아 가셨다. 이 정자는 그 자손들이 어머님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199451

다천사 신벽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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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주승(),여지도서(輿地圖書)46 전라도 (디자인 흐름, 1757 1765, 2009. 5. 1.), 105.

2)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71.

3) 변주승(),여지도서(輿地圖書)46 전라도 (디자인 흐름, 1757 1765, 2009. 5. 1.), 105.

4)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71.

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6)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71

7) 앞의 책.

8) 앞의 책.

9) 앞의 책, 72.

10) 앞의 책, 74.

11) 앞의책, 68. 347.

     최현식편, 增補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74. 3.), 320.

12)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69. 347.

13) 변주승(),여지도서(輿地圖書)46 전라도 (디자인 흐름, 1757 1765, 2009. 5. 1.), 105.

14) 張奉善, 井邑郡誌(정읍문화원, 1936. 11. 20.), 70.

15) 임남곤, 井邑文化財誌(井邑文化院, 1999. 12. 30), 6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