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챙이고개(도창현)
위치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태인군 군내면 지역)
지명의 유래와 역사
태인면은 본래 태인군 군내면, 인곡면, 흥천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 3면을 병합하여 태인면이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하였다. 그 뒤 1935년 4월 지방 행정구역 재조정 때에, 이웃 보림면을 없애고, 4개리인 태서, 매계, 태남, 오류가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태흥리는 본래 태인군 군내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홍문리, 쌍갈리, 사리, 오리, 칠리, 거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태인이 흥왕하라는 뜻으로 태흥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하였다.
도창현은 도챙이 고개, 돌챙이 고개라고도 하며 삼리 마을에서 동북쪽에서 독양 마을로 넘어가는 항가산 중턱의 고개를 가리킨다.
대순진리회 성적(聖蹟) - 성지 관련 행적
상제님, 도주님 행적
<전경>에서는 상제님께서 태인에 자주 가신 까닭이 도창현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되어 있다. 그만큼 도창현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이다.
상제님께서 도창현의 우물을 젖샘이라 하시고, 이곳에서 현무경을 불사르신 것은 장차 도주님께서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하실 것을 예시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주님께서는 1925(을축)년에 도창현에 도장을 이룩하시며 강증산 성사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셨으니 종단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담고 있다.
구태인이라는 지명은 1940년 용북면을 신태인읍으로 승격하면서 기존의 태인면 지역을 구태인으로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도주님께서 태인도장을 건립하실 당시의 지명이 아니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4-6. 상제께서 무신년 초에 본댁에서 태인에 가셨도다. 상제께서 자주 태인에 머물고 계신 것은 도창현(道昌峴)이 있기 때문이었나니라. 그곳에 신 경원(辛敬元 )최 내경(崔乃敬)・최 창조(崔昌祚)・김 경학(金京學) 등의 종도들이 살고 있었도다.
교운 1-66. 상제께서 기유(己酉)년 정월 一일 사시(巳時)에 현무경(玄武經) 세 벌을 종필하고 한 벌은 친히 품속에 지니고 한 벌은 도창현(道昌峴)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한 벌은 경석의 집에 맡기셨도다.
교운 2-32. 을축년에 구태인 도창현(舊泰仁道昌峴)에 도장이 이룩되니 이 때 도주께서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고 상제를 구천 응원 뇌성 보화 천존 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고 종지(宗旨) 및 신조(信條)와 목적(目的)을 정하셨도다.
종지(宗旨)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陰陽合德 神人調化 解冤相生 道通眞境)
신조(信條)
사강령(四綱領) … 안심(安心)・안신(安身)・경천(敬天)・수도(修道)
삼요체(三要諦) … 성(誠)・경(敬)・신(信)
목적(目的)
무자기(無自欺) 정신 개벽(精神開闢)
지상 신선 실현(地上神仙實現) 인간 개조(人間改造)
지상 천국 건설(地上天國建設) 세계 개벽(世界開闢)
예시 45. 상제께서 태인 도창현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 샘이라.』고 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응기하여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 하시고 『상유 도창 중유 태인 하유 대각(上有道昌中有泰仁下有大覺)』 이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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