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미륵불교(彌勒佛敎 )
미륵불교는 증산교 분파의 하나이다. 정인표(鄭寅杓)는 전라북도 완주 출신으로 미륵불이 출세한다는 믿음과 함께 도통입명(道通立名)에 뜻을 두게 되어 틈틈이 수양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태양이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얼마 뒤 다시 선관(仙官)이 나타나 미륵산(완주 母岳山)으로 가라는 계시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의 미륵산 산제당에서 오주문(五呪文)으로 치성을 드린 결과, 사흘 뒤인 1934년 1월 천신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정인표는 미륵불의 성령이 자기에게 접응되었으므로 자신은 곧 인불(人佛)이라 자처하면서 그 길로 하산하여 과거 김형렬(金亨烈)이 이끌었던 신도들을 규합하여 미륵불교의 재기를 꾀하며 포교활동을 하였다.
1938년 태인(泰仁)에 교단을 창설한다.
1933년 7월 15일 교도(敎徒) 이진호(李鎭浩, 신태인읍 백산리) 집에서 신도공사(神道公事, 미륵불교의 행사)를 강론하는 자리에서 일본(日本)에 ‘死’자(字)를, 조선에 ‘生’자(字)를, 소화(昭和, 일본 천황의 연호)에 ‘落’자(字)를 각각 붙이고 일망무지(日亡無地, 일본이 망한다.)라고 하였다. 즉, 일본은 죽고 조선은 살고 소화는 떨어지고 일본은 망한다는 뜻이었다. 천지(天地)는 선(善)한 자에 복(福)을 주고 악한 자에 화(禍)를 주나니 일본은 결국 망하게 되므로 우리는 조국광복을 위하여 성심껏 기도를 계속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일본 경찰의 첩자로 김병환(金炳煥, 김제 금산면 용화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김제경찰서 양재홍(楊載弘)에 밀고하여 전북도 경찰부(警察部)에서는 각 경찰서로 지시하여 1940년 12월 15일 오전 5시를 기하여 미륵교에 체포령이 내렸다. 이때 김제, 정읍, 부안, 고창, 진안, 장수, 영광 등지의 교도 42명이 구속되었는데 이 가운데 재판소의 형을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1)
<표 7-9> 일망무지론 사건 재판결과2) | |||
성명 |
재판결과 |
성명 |
재판결과 |
정인표(鄭寅杓) |
황실불경죄, 육해군형법․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8년, 애족장(1997) |
정봉진(鄭奉辰)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서보인(徐輔仁)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6월, 애족장(2004) |
오귀룡(吳貴龍)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6월, 애족장(2005) |
정공일(鄭公一)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5년 |
정재관(鄭在寬) |
치안 유지법위반, 무죄 |
장득원(張得遠)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3년, 애족장(1997) |
권성옥(權城玉)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이진호(李鎭浩)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5년, 애족장(2008) |
박병원(朴炳元)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병보석 |
이종후(李宗厚)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정갑석(鄭甲錫)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6월 |
권중기(權重琦)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6월 |
박재춘(朴在春)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3년 |
강복수(姜福秀) |
치안 유지법위반, 병보석 사망 |
곽조흥(郭組興) |
치안 유지법위반, 병보석 사망 |
이정수(李貞守)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박내현(朴乃賢)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여성백(余性白)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3년, 복역중 사망, 애족장(1997) |
정동훈(鄭東勳)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사망 |
이창구(李昌九)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3년 |
정인명(鄭寅明)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4년 |
류경홍(柳慶洪)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6월 |
김덕재(金德載)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
한동환(韓東煥)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
변성찬(卞城贊)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임영생(林永生)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김기부(金基孚)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김성학(金聖學)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좌우찬(左右贊)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김형경(金炯鏡) |
치안 유지법위반, 병보석 사망 |
양군오(梁君五)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1년 |
황인수(黃仁秀) |
치안 유지법위반, 병보석 사망 |
고상희(高尙熙)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김영신(金永信)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
이경표(李京杓)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김재덕(金在德)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6월 |
장경도(張敬道) |
치안 유지법위반, 무죄 |
김영희金永禧)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2년, 병보석 사망 |
김대홍(金大洪) |
치안 유지법위반, 기소유예 |
정휴철鄭休哲) |
치안 유지법위반, 징역 4년 |
박종상(朴鐘常) |
치안 유지법위반, 병보석 |
이후 이들은 ‘일망무지(日亡無地)’라는 깃발을 들고, 일본이 망하고 곧 밝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포교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도 포교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1950년 2월에 정읍군 태인면 태성리에 교당(敎堂)을 짓고 미륵불영원회(彌勒佛永園會)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는 포교활동과 더불어 아동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1951년에는 명륜 고등공민학교(明倫 高等公民學校)를 인수하는 등 교화교육도 병행하였다.
또 1952년에는 미륵불을 주불로 하고 석가와 공자를 모시는 신앙의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본부를 태인면 태흥리로 옮겨 대성미륵대장전, 명부전, 칠성전을 건립하는 등 교화의 터전을 굳게 하였다.
1954년 3월 25일 태인기술학교(泰仁技術學校)로 교명(校名)을 바꾸었다.
1955년 교조 정인표가 사망하면서 정공일(鄭公一)―한동환(韓東煥)―정휴규(鄭休圭)―김연봉(金連奉)―이원장(李沅璋)으로 교조가 이어지고 있다. 정공일 생존당시 김흥수(金興洙)가 미륵불교라는 이름으로 분파하기도 하였으나, 뒤에 두 파는 다시 합쳐져 미륵불교로 문교부에 등록하였다.
현 대표는 1984년에 제5대 대표로 취임한 이종도 대종법사이며, 1997년 현재 전국 16개 지부에 1만 8,750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彌勒佛: 姜一淳)이고 석가상(釋迦像)과 공자상(孔子像)을 받들고 있다.
또, 삼계도솔신장(三界兜率神將)·용화불토왕대신(龍華佛土王大神)·아미불상(阿彌佛像: 교조정인표)도 봉안하며 그 밖에 휴정(休靜)·유정(惟政)·이순신(李舜臣)·송구봉(宋龜峰)·김일부(金一夫)·전명숙(全明淑: 全琫準)·최제우(崔濟愚, 호는 水雲) 등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숭배한다.
미륵불은 대도의 근원인 선기(仙氣)로서 천계탑(天階塔)에 내려와 인간의 대도를 창설한 강일순이며, 정인표는 바로 이 미륵불의 자식으로 후천을 담당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수련의 목표는 대인대의수정(大人大義守正)·오상선행(五常善行)·지은보은(知恩報恩)이며 중요 의례로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지내는 사대절후(四大節候) 치성(致誠)과 칠성(七星) 치성, 명부(冥府) 치성 등이 있다. 주요 경전은 『교리정전 敎理正典』·『삼강대전 三綱大全』·『명관대전 明觀大全』등이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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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편 정읍시사(井邑市史)』상 (개편 정읍시사 발간추진위원회, 2010), 336.
2) 『井邑 抗日運動史)』(정읍문화원, 1994), 188~189.
3)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미륵불교」(이현택, 『한국종교』 1,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71) 재인용.
『미륵불교관』(박병재, 미륵불교총본부, 1974) 재인용.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외,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재인용.
『한국종교연감』(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저, 고려한림원, 1997)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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