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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면 증산리(甑山里)

태인면 증산리(甑山里) 평지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증산리천이 흐르며 삼증제가 있다. 본래(本來) 태인군의 인곡면(仁谷面) 지역으로서 시루봉(甑山) 밑이 되므로, 시루뫼 또는 증산이라 하였는데, 증산(甑山)의 명호(名號)는 '시루매' 유래된 이름이니 동쪽을 '웃시루매' 서남쪽을 '아랫시루매'라 일컫는다. '시루매'란 지명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히 보는 이름이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증리(上甑里), 하증리(下甑里)를 병합하여, 이 구역에 있는 산 시루봉(시루봉)에서 따서 증산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 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상증리(上甑里), 하증리(下甑里)로 되어있다.1) 현재의 분리는 상증(上甑)마을, 하증(下甑)마을, 점촌(店村)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특..

태인면 태남리(泰南里)

태인면 태남리(泰南里) 오류들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상유천이 흐른다. 본래(本來) 태인군 남촌이변면(南村二邊面)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덕두리(德斗里), 장재동(壯才洞)의 각 일부(一部)와 서촌면(西村面) 과학리(過鶴里) 일부(一部) 및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이리(二里), 삼리(三里) 각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이 지역 태인 읍내의 남쪽이므로 태남리라 하고, 정읍군 보림면에 편입 했다가, 1935년 3월에 보림면을 폐지하여 다시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태남리(泰南里)는 태남리(泰南里), 장재동(壯才洞), 덕두리(德斗里)로 되어있다.1) 현재의 분리는 덕두마을과 장재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특산물로는 사과가 있다. 인구현황 기준 호수(戶數) 남자..

태인면 태서리(泰西里)

태인면 태서리(泰西里) 하동들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동진강이 흐른다. 본래(本來) 태인군의 서촌면(西村面)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사리(舊四里), 복호동(伏虎洞)과 성재동(聖才洞), 주산리(舟山里), 서재리(西才里), 분동(粉洞)의 각 일부(一部)(一部)와 고부군(古阜郡) 벌말면(伐末面) 덕촌리(德村里, 또는 德里) 일부(一部)와 고부군(古阜郡) 장순면(長順面) 상학리(上學里)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이 지역이 태인 서촌(西村)지역이기에 태서리라 하였고, 태서란 명호(名號)는 태인의 서촌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정읍군 보림면(寶林面)에 속 했다가 1935년 3월 보림면이 폐합되면서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태서리(泰西里)는..

태인면 태성리(泰成里)

태인면 태성리(泰成里) 태인면의 중심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본래(本來) 태인군 군내면(郡內面) 지역인데, 태인현(泰仁縣)의 관아(官牙)와 향교(鄕校)가 자리 잡고 있었던 군내면(郡內面)의 중심지였다. 1911년 태인국민학교가 설치되고 현재는 태인 동헌(泰仁東軒 : 地方文化財 有形 第75號)과 입구의 유각교(留脚橋)가 남아 있을 뿐이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내면(郡內面)의 사창리(社倉里), 사리(四里), 육리(六里), 칠리(七里), 십리(十里), 십일리(十一里, 郡內面)를 병합하여, 이곳에 태인향교 대성전(大成殿)이 있기 때문에 태성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태성리(泰成里)는 상일리(上一里), 하일리(下一里), 사창리(社..

태인면 태창리(泰昌里)

태인면 태창리(泰昌里) 태창리들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동진강이 흐른다. 본래(本來) 태인군 군내면(郡內面)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내면(郡內面)의 신기리(新基里), 용정리(龍井里), 청석리(靑石里), 오리(五里), 육리(六里), 십리(十里), 십일리(十一里), 거산리(居山里), 내이리(內二里)와 고부군(古阜郡) 벌말면(伐末面)의 덕촌(德村), 화천리(花川里), 회룡리(回龍里) 각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더 번창하라는 뜻으로 태창리라 하여,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태창리(泰昌里)는 신기(新基), 용정(龍井), 육리(六里)로 되어있다.1) 현재의 분리는 태산(泰山)마을, 기지내(基地內)마을, 샘들내마을, 시기(市基)마을, 용신(龍新)마..

태인면 태흥리(泰興里)

태인면 태흥리(泰興里) 평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동쪽에 동진강이 흐른다. 본래(本來) 태인군 군내면 지역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홍문리(弘門里), 쌍갈리(雙喝理), 사리(四里), 오리(五里), 칠리(七里), 거산리(居山里)의 각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태인이 흥왕하라’는 뜻으로 태흥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되었다. 『정읍군지(1936)』에 따르면 태흥리(泰興里)는 홍문리(弘門里), 쌍갈리(雙喝理), 사리(四里), 오리(五里), 삼리(三里)로 되어있다.1) 태인현의 고을터로 이곳에는 문화 유적으로 읍원정(挹遠亭)과 관제묘(關帝廟)가 있으며 한때 조천자(趙天子)로 일컫던 조철제(趙哲濟)의 태극교(泰極敎)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분리는 독양(犢..

잊혀진 옛 태인 마을

태인면 백산리(栢山里) 백산리 는 백제시대 빈굴현(賓窟縣), 고려시대 인의현(仁義縣)의 고을터로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지금은 인의현 고성지(仁義縣 古城址, 栢山城址)와 향교지(鄕校址, 향교골).옥지(獄址, 옥터)가 남아있다. 「백산」이란 명호(名號)의 유래는 대개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속칭 잔매(盃山) 잣매(栢山) 잣매로 불리우니 전 자는 산의 모양이 평야지에 위치하여 잔을 엎어놓은 형이다 하여 잔매((盃山) 라 칭하여 후자는 산에 잣나무(栢)가 많이 있어 불리워진것이라 하는데 오히려 전자의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말하자면 잔매(盃山)가 잣매(栢山)로 변전(變轉)하여 한자음(漢字音)으로 백산(栢山)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본래(本來) 태인군 군내면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태인 경씨(泰仁 景氏)

태인 경씨(泰仁 景氏), 해주 경씨 (海州 景氏) 태인 경씨(泰仁 景氏)는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경차(景磋)는 고려 때 문과에 올라 추밀원부사(樞密院府事)를 지내고 동남도병마사(東南道兵馬使)로 외직(外職)에 나갔고 뒤에 태산부원군(泰山府院君)에 봉해졌다. '癸卯譜'세록(世錄)에 보면, 그는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고 문목(文穆)이라 시호되었다고 하였다. 《태인경씨계묘족보(泰仁景氏癸卯族譜)》에 의하면, 경씨(景氏)는 고대 중국 진양(晉陽)의 초나라 공족(公族)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그 공족 중의 한 명인 경여송(景汝松)이 기자(箕子)를 호종(扈從)하여 조선에 들어와 평양에 정착함으로써 일문의 문호가 열렸다고 한다. 그런데 '丙寅譜' 등 여러 문헌을 ..

카테고리 없음 2018.03.23

태인 김씨(泰仁 金氏)

태인 김씨(泰仁 金氏) 시조(始祖) 김언경(金彦京)은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적(事蹟)이 없어서 확실한 세계(世系)를 상고(詳考)할 길이 없다. 그는 김수룡(金守龍)의 아들로서 대호군(大護軍)을 지냈으며 그의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태인(泰仁)이라 하였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하면 태인 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1가구 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1) ------------------------------ 1) 뿌리를 찾아서(http://www.rootsinfo.co.kr/info/roots/view_roots.php?Bid=669&page_type=2&pages=) 부천족보도서관(ht..

카테고리 없음 2018.03.23

태인 박씨(泰仁 朴氏)

태인 박씨(泰仁 朴氏) 태인박씨(泰仁朴氏) 시조 박거인(朴居仁)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朴赫居世의 29세손)의 장남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의 16세손으로서 박찬행(朴讚行)의 중자(仲子)로 고려 문종(文宗)때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지내고 밀직군(密直君)에 봉해진 박언상(朴彦祥)의 8세손이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 때 소감(少監)을 역임한 후 화(禍)을 입고 인의현(仁義縣: 태인의 당시 명칭)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살게 되면서 후손들이 그를 1세조(一世祖)로 하고 태산(泰山. 현재의 태인)을 관향(貫鄕)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박거인(朴居仁)의 증손 돈재(遯齋) 박연생(朴衍生)이 조선 단종때 충무시위사(忠武侍衛司)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는데, 1455년 ..

카테고리 없음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