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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백씨(泰仁 白氏)

태인 백씨(泰仁 白氏)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백씨대동보(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중국 고대의 전설 속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16세손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선덕여왕 1) 신라에 건너와 자옥산(紫玉山 : 지금 경주시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후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보급에 진력하였다고 한다. 태인백씨(泰仁白氏) 시조 백석순(白碩淳)은 조선시대에 사과(司果)를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전하지 않아 세계를 알 수 없다. 태인 백씨(泰仁白氏)의 시조 백석순(白碩淳, 石淳)은 조선시대 초기에 사과(司果)를 지냈다고 한다. 귀시(貴時)의 아들로 간미..

태인 송씨(泰仁 宋氏)

태인 송씨(泰仁 宋氏) 태인 송씨(泰仁 宋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高麗) 시대의 송수(宋守)라는 인물이다. 태인(泰仁)이라는 지명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뜻한다. 태인송씨(泰仁宋氏)의 시조는 고려 때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송수(宋守)라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문헌이 없어 유래나 세계는 알 수 없으며, 정랑(正郞)을 지낸 송호지(宋瑚之)를 시조로 삼은 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태인송씨(泰仁宋氏)의 과거 및 취재 합격자] 문과 – 송상주(宋尙周, 1630 丙午生): 문과(文科) 1663년(현종 4) 식년시 병과(丙科), 송우룡(宋遇龍), 송우성(宋遇聖), 송호(宋瑚, 1373 癸丑生): 문과(文科) 1393년(태조 2)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무과 – 송계일(宋戒一, 1603..

태인 시씨 (泰仁 柴氏), 능향 시씨 (陵鄕 柴氏)

태인 시씨 (泰仁 柴氏), 능향 시씨 (陵鄕 柴氏) 시씨는 중국 평양(平陽: 절강성 구해도 임분현의 당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고대 고신씨의 후예로 전하며 고시의 후손이 이름자인 시를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씨는 고려 현종(顯宗: 제8대 임금, 재위기간: 1009 ∼ 1031) 초에 흥화진두(興化鎭頭)인 시신운(柴臣雲)이 사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물이며, 선계에 대한 소목은 고증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상고하지 못한다. 시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등의 문헌에 능향(綾鄕: 태인지방)·태인(泰仁)·김화(金化) 등 3본이 있는 것으로 전하며, 능향은 태인의 지방 이름이므로 능향과 태인은 본관은 다르지만 같은 뿌리의 혈족으로 짐작된..

태인 은씨 (泰仁 柴氏)

태인 은씨 (泰仁 柴氏) 태인은씨(泰仁殷氏) 본관은 행주(幸州)·태인(泰仁) 등이 있다. 행주은씨는 중국 당(唐)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온 사람으로 신라 문성왕 때 8학사(學士)의 한 사람이었던 은홍열(殷洪悅)을 시조로 삼고 있다. 벼슬이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른 그가 행주에 정착한 연유로 후손들이 행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한다. 그러나 그뒤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고종 때 문림랑(文林郞)을 지낸 은윤보(殷允保)를 기세조(起世祖)로 삼아 대를 이어오고 있다. 이후 윤보의 8세손으로 조선 초기에 이조판서를 지낸 여림(汝霖)의 아들 대에 이르러 3파로 분파되었는데, 맏아들 현(顯)은 인동·군위로, 둘째 아들 보(輔)는 고부·태인으로, 셋째 아들 익(翊)은 대구·경산으로 각기 분파했다. 시조 은홍순(殷弘淳..

카테고리 없음 2018.03.23

태인 최씨(泰仁 崔氏)

태인 최씨(泰仁 崔氏) 태인(泰仁) 최씨(崔氏)의 시조(始祖)는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고, 태산(太山)으로 낙향(落鄕)하여 동인지교(東人之交)를 편수한 최 해(崔 瀣)의 6세손 최용전(崔勇田)이다. 용전은 조선(朝鮮) 연산군(燕山君)조에 예빈사판사(禮賓寺判事)에 올라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환향(還鄕)한 후 1530년(중종 25) 안릉(安陵)으로 이주(移住), 정착(定着) 세거(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휘(諱) 용전(勇田)의 고향인 태인(泰仁)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계대(繼代)를 알 수 없는 최인길(崔仁吉)을 시조(始祖)로 기록하고 있으나 문헌..

태인 허씨(泰仁 許氏)

태인 허씨(泰仁 許氏) 태인 허씨(泰仁 許氏)는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허사문(許士文)은 고려 태조 때 시산군(詩山君)에 봉해졌다. 관향 태인의 옛 이름인 시산을 그대로 본관으로 쓰는 후손들도 있으나 역시 허사문을 시조로 하는 일족이다.시산 허씨(時山 許氏)라고도 한다. 태인 허씨(泰仁 許氏)의 시조 허사문(許士文:또는 師文)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비(金首露王妃: 보후태후) 허황옥(許黃玉)의 30세손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부마(駙馬)였으며 시산군(詩山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태인허씨족보(泰仁許氏族譜)에 의하면 그의 6세손 허포(許褒)가 고려 때 기천현령(奇川縣令)ㆍ풍해도 관찰사(豊海道觀察使) 등을 지낸 후 태산군(泰山君)에 봉해졌으며, 병부 시..

근대종교 문화재 - 태인 미륵불교(彌勒佛敎 )

태인 미륵불교(彌勒佛敎 ) 미륵불교는 증산교 분파의 하나이다. 정인표(鄭寅杓)는 전라북도 완주 출신으로 미륵불이 출세한다는 믿음과 함께 도통입명(道通立名)에 뜻을 두게 되어 틈틈이 수양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태양이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얼마 뒤 다시 선관(仙官)이 나타나 미륵산(완주 母岳山)으로 가라는 계시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의 미륵산 산제당에서 오주문(五呪文)으로 치성을 드린 결과, 사흘 뒤인 1934년 1월 천신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정인표는 미륵불의 성령이 자기에게 접응되었으므로 자신은 곧 인불(人佛)이라 자처하면서 그 길로 하산하여 과거 김형렬(金亨烈)이 이끌었던 신도들을 규합하여 미륵불교의 재기를 꾀하며 포교활동을 하였다. 1938년 태..

근대종교 문화재 - 태인 무극대도 본부(無極大道 本部) 터

태인 무극대도(無極大道) 본부(本部) 터 소재지: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인로 108 무극도본사(無極道本司) 태인면 태흥리 1번 국도변(1等道路邊)에 2, 3층 규모의 주란화각(朱欄畵閣)이 반공(半空)에 흘립(屹立)하였으니 이것이 무량도본사(無極道本司)이다. 그 웅장(雄壯)함은 보천교본사(普天敎本司)와 조금 차이는 있으나 구조(構造)의 정교(精巧)함은 그에 별(別)로 손색(遜色)이 없다하겠다. 그런데 그 건축은 1924년 3월에 시공(始工)하여 1926년 4월 까지 만 2년에 준공(竣工)하였으니 총 공비(工費)는 약 칠만원(七萬圓)에 달하였다 한다. 건물의 명칭은 중앙 3층은 도율궁(兜率宮), 2층은 영대(靈臺)라 하고 부속건물 10동(棟)이 있으니 그 장치(裝置)의 찬란(燦爛)함이야말로 참으로 장관(壯觀..

근대종교 문화재 - 매계교회

매계교회(梅溪敎會) 소재지: 정읍시 태인면 북태길 204 호남지역 개신교는 맨 처음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전주에 선교부가 개설됨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전주선교부를 중심으로 전북지역 각처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복음은 봉동, 고산, 진안, 무주 등 동북부 지역과 김제, 부안 등 서부지역 그리고 남서부 지역인 임실, 남원 및 정읍, 고창 등에 이르기 까지 빠르게 전파 되어갔다. 정읍지역의 교회 태동의 배경을 살펴보자면 우선 전주선교부의 정식 개설 이전 레이놀즈 선교사의 답사 여행일지(일지 사본 참조)에 태인, 정읍, 고창 등이 한글로 기록된 것이 보인다. 물론 이때 복음 전도가 목적은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답사여행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후일 선교지역이 되었음은 ..

조선시대 태인지역의 출판 인쇄문화 - 태인 방각본(泰仁 坊刻本)

조선시대 태인지역의 출판 인쇄문화 문화의 전파와 발달은 서적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져 왔으며, 초기에는 필사(筆寫)에 의하여 서적의 전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본(寫本)에는 오자(誤字)와 탈자(脫字), 탈문(脫文) 등이 생기게 되어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고 다량 출판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쇄가 발명되었다. 조선시대에 전국 군(郡) 단위 이상의 각 고을마다 대부분 책판이 소장되어 있었고 태인지역도 목활자나 서책을 간행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를 지역의 문화유산이나 전통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실제 간행된 서책의 규모, 종류, 실존여부 등을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다. 1. 태인지역의 고인쇄 문화 조선 시대에는 태인지역이 동진강 지류인 대각천(태인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호남평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