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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인 현감 신잠 선정비(泰仁 縣監 申潛 善政碑)

태인 현감 신잠 선정비(泰仁 縣監 申潛 善政碑)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05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92번지 1549년(명종 4)에 건립된 신잠의 비석이다. 비는 높은 자연석 받침돌 위에 비몸돌을 세웠는데, 비몸돌의 윗변 양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처리하였다. 크기는 가로 81㎝, 세로 189㎝, 두께 19㎝이며, 비의 좌대(座臺)는 가로 150㎝, 세로 92㎝, 높이 90㎝로 되어 있다. 영천심잠이 1543년(중종 38)에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여 동, 서, 남, 북의 사학당을 세우는 등 선정을 베풀고 1549년(명종 4) 간성군수로 이임하자 그 유덕을 추모하여 진사 김완(관 도강), 백삼귀(관 수원) 등 유림들의 발의로, 비문(碑文)은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5)이 해서로 썼으..

7. 일재 이선생 신도비명(一齊 李先生 神道碑銘)와 유허비

일재 이선생 신도비명(一齊 李先生 神道碑銘) 문경공 일재 이선생 강마소(文敬公 一齊 李先生 講磨所) 일재(一齊) 이항(李恒)선생을 기리기 위한 비이다. 이항(李恒, 1499~1576)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기대승(奇大升)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5학(五學)의 한 사람으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했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항지(恒之), 호는 일재(一齋). 아버지는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 자영(自英)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박영(朴英)의 문인이다. 일찍이 무과에 뜻을 두어 무예를 익혔으나, 30세부터 학문을 시작하여 도봉산 망월암(望月庵)에서 수년 간 독학한 뒤 태인(泰仁)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봉양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1566년(명종 21) 학행(學行)으로 추천되어 의영고령(義盈..

1. 피향정(披香亭, Pihyangjeong)

피향정(披香亭, Pihyangjeong)1)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泰仁面)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정(樓亭). 지정번호: 보물 제289호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소 재 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1-2 시 대: 조선시대 중기 규모양식: 정면 5칸, 측면 4칸, 누정 익공계 팔작지붕 종 류: 누정(樓亭) 소 유 자: 국유 1. 창건 886년에서 887년경에 최치원에 의해 최초로 창건되었다는 구전이 있으나2) 증거가 미약하고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전국적으로 20여개의 누정이 기록되어 있으나 피향정의 기록은 없다. 1480년(成宗 11)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1530년(中宗 25)에 증보(增補)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 조선시대 피향정 연혁

2. 조선시대 피향정 연혁 피향정의 창건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몇 차례에 걸쳐 중수했던 기록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중수 기록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임진왜란 직 후인 광해군 때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이지굉(李志宏)이 광해군 때인 1615~1618년 사이에 태인 현감을 지내는 동한 초라한 피향정을 크게 확장하는데 현재의 모습은 이 때 중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지굉의 중수 근거는 유근(柳近)이 철종 때 쓴 피향정 중수기에 아주 미약하게 근거가 나타나고 있다. 즉 「…이첨추의 계속된 수리…(…李僉樞之繼修 …)」가 그것이다. 그 후 현종 대에 들어와 현감 박숭고(朴崇古)가 다시 중건을 하게 된다. 박숭고는 현종 때 태인 현감을 하게 되는데 이때..

3. 해방이후 피향정의 연혁과 보수

3. 해방이후 피향정의 연혁과 보수 한국전쟁은 전국을 폐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태인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1957년 면사무소를 새로 지을 때까지 피향정은 약 4년간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었던 것도 전쟁의 피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59년~1960년 경 찍은 피향정 사진을 보면 기둥 사이에 문틀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진에 의하면 합각부분도 지금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합각부분이 지금처럼 판자로 막은 것이 아니라 표면을 흙으로 바른 것으로 보인다. 면사무소를 이전한 다음해인 1958년에는 피향정이 국가지정 국보43호로 지정되었으나 1963년 국보지정을 취소하고 보물 제289호로 재지정하였다. 건조물에 대한 문화재지정이 이처럼 국보에서 보물로 하..

4. 태인팔경과 피향정 관련 고시 (古詩 )

4. 태인팔경(八景)과 피향정 관련 고시 (古詩) 태인팔경 중 제5경이 ‘피향연화 (披香蓮花)’이다. 피향정의 상하연지에 핀 연화가 아름다워 팔경 중 하나로 꼽은 것이다. 피향정의 연화는 반드시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으로 말할 수는 없다. 연화가 필 때면 그 향이 그윽하게 정자 주변을 감싸기 때문에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향기에 취하는 즐거움도 경관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따라서 피향정은 연화를 제외하고 경관의 가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향정과 연화를 하나의 틀 속에 넣어 함께 생각할 때 정자의 아름다움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태인에는 피향정 경관 외에 7 개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태인팔경은 다음과 같다. 태인은 예로부터 산수가 좋을뿐 아니라 선현들의 유적이 많아 시인묵..

사우(祠宇) - 태흥사(泰興祠)

태흥사(泰興祠)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591번지 1926년에 발간된 조선명현초상화사진첩에 실린 김유신의 초상화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에 향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태인면에 거주하는 김해김씨 문중에서 창건한 가묘(家廟)로 1930년 음력 3월 3일 건립하였고, 1954년 신라태대각간 흥무왕 김유신(新羅太大角干 興武王 金庾信)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춘추(春秋)로 향사(享祠)한다. 정면 4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면과 측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김유신에게 향사를 올리는 사당은 태흥사 외에도 경주 서악서원, 진천 길상사, 강릉 화부사, 광주 장렬사, 고창 백양사, 무안 연계사 등 전국에 걸쳐 약 20곳이 있다.1) 태흥사 중수기공비(泰興祠 重修紀功碑..

도챙이고개(돌챙이고개)

도챙이고개(도창현)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태인군 군내면 지역) 지명의 유래와 역사 태인면은 본래 태인군 군내면, 인곡면, 흥천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 3면을 병합하여 태인면이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하였다. 그 뒤 1935년 4월 지방 행정구역 재조정 때에, 이웃 보림면을 없애고, 4개리인 태서, 매계, 태남, 오류가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태흥리는 본래 태인군 군내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홍문리, 쌍갈리, 사리, 오리, 칠리, 거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태인이 흥왕하라는 뜻으로 태흥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하였다. 도창현은 도챙이 고개, 돌챙이 고개라고도 하며 삼리 마을에서 동북쪽에서 독양 마을로 넘어가는 항가산 중턱의 고..

하마거리(일명 하마청거리)

하마거리[下馬街] 현재 위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향교마을(전라북도 태인군 군내면 지역) 지명의 유래와 역사 태인향교가 있는 태성리는 본래 태인군 군내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사창리, 사리, 육리, 칠리, 십리, 십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태인향교 대성전이 있기 때문에 태성리라 하고 정읍군 태인면에 편입하였다. 향교마을의 이름도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태인향교를 마주보면 왼편에 태인사거리가 있는데 예전에는 하마가(하마거리)라고 했다. 사거리는 예전에는 삼거리였는데 향교 앞으로 새 길을 만들어 사거리가 되었다. 태인사거리에서 1번 국도를 타고 태인면사무소 방향으로 전북동화중학교를 지나 200m 정도 가다보면 왼편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예전에 모든 사람들이 ..

각종 정자(亭子)와 루(樓)

진남루(鎭南樓) 객관(客舘)의 문루이다. 현감 유근이 다시 고치고 지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1) 주: 유근 - 1713년(肅宗 39, 癸巳) 9월 – 1715년(肅宗 41, 乙未) 12월 貶下(선생안 참조) 1713년(肅宗 42) 탁지부(度支部: 현 財務部)의 보조를 받아 현재의 피향정를 중건하였음. 태인현(泰仁縣) 원태인현(元泰仁縣) 객사(客舍)의 문루(門樓)이었으니 현감(縣監) 유근(柳近)이 중건(重建)하였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진남루는 태인현지(泰仁縣誌, 1786년 간(刊))에 기록되어 있는 누각(樓閣)이다.2) 관덕정(觀德亭) 객관의 서쪽에 있다. 현감 이익저(李益著)가 세우고, 현감 조정(趙晸)이 다시 고쳤다.3) 주: 이익저(李益著) - 1685년(肅宗 11, 乙丑) 12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