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지리(삶의터전) 23

제 2절 지질(地質)

제 2절 지질(地質) 우리나라의 지질이 최초로 세계에 알려진 것은 1886년에 발간된 '한국 지질 개요'라는 책자에 의해서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 지질학자들은 한반도의 지질을 본격적으로 조사하여 한반도 전체의 지질 분포를 밝혀냈다. 우리나라의 지질도는 19세기 말 독일 학자가 최초로 작성하였으며 그 후 1950년대에 와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힘으로 한반도에 관한 여러 종류의 지질도(地質圖)가 완성되었다. 우리나라의 지체구조는 몇 개의 육괴와 퇴적분지 및 지구대로 구성되어 있다. 육괴는 지형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특정한 방향성을 나타내지 않는 암석덩어리를 말하는데, 주로 선캄브리아대의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생대 이후에 육지로 노출된 것도 있다. 육괴로는 평안북도-함경도 육괴, 경기육괴, 연남..

제 3절 하천(河川

제 3절 하천(河川) 물에서 온갖 생명이 잉태되었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물가에 깃들어 살았다. 강가에는 크고 화려한 문명이 꽃을 피웠고, 물길을 따라서 다채로운 문화가 출렁였다. 강물이 흘러 세월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역사가 켜켜이 엮여 이야기되었다. 강을 모르고 생명을 알 수 없다. 강을 말하지 않고 문명과 문화를 입에 올릴 수도 없다.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강을 언급해야 한다. 태인의 하천은 산내면의 섬진강계 하천을 제외하면 모두 서류(西流)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은 크게 태인 읍치의 남쪽을 흐르는 동진강과 상두산에서 발원하여 태인의 북쪽을 지나 신태인읍과 태인면의 경계에서 동진강과 합류하는 용호천(龍虎川), 원평천과 만나 김제와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빠지는 감곡천 ..

제 4절 평야(平野)

제 4절 평야(平野) 평야는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작거나 거의 없는 넓은 땅을 말한다. 이러한 땅은 기반암의 특성, 즉 지질구조에 의하여 형성될 수도 있고, 산지가 침식을 받아 낮아져서 형성될 수도 있으며, 낮은 곳에 토사가 쌓여 형성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산지가 많아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야는 없다. 척량산맥인 태백산맥이 동쪽에 치우쳐 있는 관계로 넓은 평야는 서쪽과 남쪽에 주로 분포한다. 호남·나주·김해·논산·내포·평택·김포·평양·재령·안주·용천 등의 주요 평야는 모두 큰 강을 끼고 그 하류에 발달되어 있다. 평야는 농경에 중요한 지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논농사에 이용되고 있다. 논은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양안(兩岸)에 거의 연속적으로 분포하지만, 중류와 상류에서는 골짜..

제 5절 기후(氣候)

제 5절 기후(氣候) 기후라는 말은 일정한 지역의 여러 해에 걸쳐 나타나는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평균 대기(大氣) 상태로, 단기간 동안에 나타나는 기상요소와 그들의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모아놓은 것이다. 기후의 구성요소로는 태양의 복사, 기온, 습도, 운량, 강수(형태·빈도·양), 기압, 풍속, 풍향 등이 있다. 1. 기후 특색(氣候特色) 다른 지방에 비해 한서(寒暑)의 차가 적은 편이며,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여름에는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으로 남동내지 남서 계절풍이 불며,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북서계절풍이 우세하다. 또한 여름철에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6월 하순부터 8월 초순에 걸쳐 비오는 날이 많다. 정읍의 기후는 서해안형과 내륙형의 중간형으..

제 7절 태인군의 행정구역(行政區域) 변천(變遷) 과정(過程)

제 7절 태인군의 행정구역(行政區域) 변천(變遷) 과정(過程) 태인 지역 행정구역의 변천 과정1) 시대 구분 태 인 고 부 정 읍 마 한 지반국(支半國), 일리국(一離國), 불미국(不彌國) 고비리국(古卑離國) 초산도비리국 楚山塗卑離國 백 제 대시산군(大尸山郡) 빈굴현(賓屈縣)부성현(賦城縣)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고사주(古四州) 정촌현(井村縣) 남북국시대 대산군(大山郡) 757(경덕왕 16) 빈성현(斌城縣)무성현(武城縣) 757(경덕왕 16) 고부군(古阜郡) 757(경덕왕 16) 정읍현(井邑縣) 태산군의 영현 757(경덕왕 16) 초산군(楚山郡) 태산현(泰山縣) 인의현(仁義縣) 영주관찰사의 영현(領縣) 936년(태조 19) 영주(瀛州) 영주관찰사 939(태조 19) 고부군(古阜郡) 영주관찰사 감무(監務..

제 6절 일제강점기시대(日帝强占期時代)와 태인

제 6절 일제강점기시대(日帝强占期時代)와 태인 1910년 9월 30일에「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소속관서 관제(所屬官署官制)」가 소위 칙령 제354호로 공포되어 10월 1일부터 실시되었다. 아울러「조선총독부 지방관제(朝鮮總督府 地方官制」가 공포되었고, 1913년에는「부제(府制)」·「학교조합령(學校組合令)」, 1915년에는「도제(道制)」, 1917년에는「면제(面制)」가 제령(制令)으로 공포되어 일제강점기 행정의 기틀이 완성되었다. 그런 후에, 3·1운동 뒤인 1920년에 1차 개정이 있었고, 1930년에 2차 개정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일제강점기 행정의 지방조직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의 3단계로 개정되어 그 체계가 완비되었다. 즉 전국을 13도로 나누었으며, 도(道)에는 지사(知事)..

제 5절 조선시대(朝鮮時代)와 태인

제 5절 조선시대(朝鮮時代)와 태인 조선의 중앙행정조직은 의정부와 6조(六曹)의 체제로 편제되었다. 의정부는 그 우두머리인 3정승, 즉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합좌기관(合坐機關)이다. 3정승은 국가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하고 그 합의사항을 국왕에게 품의하며, 왕의 재가는 역시 의정부를 거쳐 해당관부에 전달되었다.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6조가 각기 맡은 임무는 고려의 6부와 별 차이가 없으나, 그 기능이 보다 강화되었다. 장관을 판서(判書), 차관을 참판(參判)이라 하는데, 이들 고급 행정관원은 정책결정에 참여하여 기능적 분화와 통일성을 조화시켰다. 이 밖에 왕명의 출납을 맡은 승정원(承政院)이 있어 그에 소속된 도승지(都承旨) 이하 6승지는 각기 6조의 행정업무를 분담하여..

제 4절 고려시대(高麗時代)와 태인

제 4절 고려시대(高麗時代)와 태인 고려시대의 중앙관제는 후삼국 통일 후 태봉(泰封)과 신라의 관제를 병용하였는데, 당(唐)·송(宋)나라와 고려의 독자적인 제도도 섞여 있었다. 이러한 관제는 6대 성종 때에 정비되기 시작하여 문종(文宗)에 이르러 일단 완성되었다. 체제의 특징을 보면 2성(省) 6부(部)는 당제(唐制)에 가깝고, 중추원(中樞院)과 삼사(三司)는 송제(宋制)를 채용한 것이며, 도병마사(都兵馬使)와 식목도감(式目都監)은 고려 자체의 필요성에서 생긴 것이다. 또한 고려의 정치체제가 귀족중심이었다. 고려시대의 지방관제에서 기구 개편의 연혁을 보면 983년(성종 2) 12목(牧), 995년에 10도(道)·3경(京)·5도호부(都護府)·8목(牧)·양계(兩界)가 설치되고, 1018년(현종 9) 전국을 ..

제 2절 백제시대(百濟時代)와 태인

제 2절 백제시대(百濟時代)와 태인 백제는 4세기의 중엽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때 크게 발전을 보았다. 이어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였는데 어떤 지방조직을 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백제의 지방통치에 대해서는 웅진(현재 충남 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고 난 후의 내용을 중국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도를 고마성(固麻城, 웅진)1) 이라 하고 읍을 담로라 하였는데 마치 중국의 군현과 같은 것으로서 전국에 22담로(擔魯)가 있었고 여기에 왕가의 자제와 종족을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 26대 성왕 때 정비된 것으로 보이는 지방통치 제도를 보면 왕도인 사비성(현 충남 부여) 내에는 오부(五部)로 구획하여 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라 하였으며, 다시 각부에 오항(五巷)으로 구분하였다. 상부는..

제 1절 마한시대(馬韓時代)와 태인

제 2장 태인(泰仁)의 행정구역(行政區域) 변천(變遷) 제 1절 마한시대(馬韓時代)와 태인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서 초기 철기 시절인 기원전 2~3세기경 위만(衛滿)이 고조선의 지배권을 장악할 무렵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진국(辰國)이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의 군현세력에 저항하면서 점차 부족연맹 세력을 형성하여 갔다. 그 결과 삼한(三韓)이라고 통칭하는 연맹왕국인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세 그룹의 부족 사회가 생겨, 기원후 3세기경에는 대방군에 공격을 가하기도 하고 직접 진(晉)과 교섭하기도 했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百濟)로, 변한의 구야국(狗邪國)이 가야(伽倻)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新羅)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삼한으로 통칭되는 78개의 ‘국’(國..